스토리온은 35세 이상 여성을 메인 타깃으로 한 라이프 스토리 채널이다. 라이프 ‘스타일’이 아닌 라이프 ‘스토리’를 내세운 탓에 다른 채널과 비슷한 유형의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모양새는 좀 다르다. 스타일과 트렌드를 다루는 는 올리브 채널 나 온스타일 과 다르게 아줌마들의 수다가 중심이 된다. 토크쇼 나 (이하 ) 역시 메인 타깃에 최적화된 이야기들을 마련했다고 선전한다. 에서는 평범한 주부들은 엄두도 못내는 상위 1%의 ‘미선씨’들을 초대해 관음증을 충족시키고, 는 사우나에서나 늘어놓던 음담패설이나 수다를 그대로 옮겨왔다. 그러나 과연 35세 이상의 여성들이 원하는 토크는 그게 다 일까? 김교석, 윤이나 TV평론가가 두 프로그램을 얘기했다. /편집자주

스토리온 의 ‘미선씨’는 진행자 박미선이 아니다. 여기에서부터 는 프로그램의 이름을 보고 할 수 있는 예상들을 배반하기 시작한다. 줌마테이너의 시대를 열고, 여전히 맨 앞에서 진두지휘 중인 박미선과, 1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다시 연예 활동을 시작한 이성미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는 주부 대상 토크쇼. 하지만 이 MC들까지도 대한민국 1% ‘미선씨’들을 제외한 나머지 99% 중에 하나일 뿐이다. ‘미선씨’는 매 주 바뀌는 주제가 되는 분야에서 대한민국 1%인 3045, 곧 30세에서 45세까지의 여성들을 지칭한다. 이 ‘미선씨’들은 때로는 몸매 상위 1%이며, 연소득 상위 1% 이기도 하고, 자녀가 상위 0.1%의 성적을 갖고 있기도 하다. 는 바로 그 1%를 위한, 그 1%에 의한, 그 1%의 프로그램이다.

1%의 ‘미선씨’들만이 가진 것
<친절한 미선씨> vs <이사고>│친절한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
vs <이사고>│친절한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 />에 새로울 것은 없다. 20명 정도 되는 ‘미선씨’들이 직접 쓴 자기소개 판넬 옆에 앉아있는 구도는 SBS 을 떠올리게 하고, OX문제나 설문조사를 활용해 토크를 이어가는 방식 역시 낯설지 않다. 이렇게 익숙한 형식을 사용하되, 대신 는 그 시청층을 확실히 구분지음으로서 프로그램을 차별화한다. 의 출연자와 시청층의 나이대와 성별은 거의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는 여타 주부 대상의 프로그램들이 그러한 것처럼 ‘공감’을 코드로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 프로그램의 재미는 3045 여성이라는 거대한 모집단에서 ‘선택된 미선씨’와 나머지 여성들 간의 교집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1%의 ‘미선씨’들만이 가진 ‘어떤 것’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회에서 ‘성형외과 의사 부인들’이 출연했을 때, “만약에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다음 3045여성 전체를 모집단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와 ‘미선씨’들의 결과를 비교하는 식이다. 이러한 설문조사 내용의 비교는 TV속의 ‘미선씨’와 비슷한 나이대의 시청층을 대비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그래서 돈이 되었든, 외모가 되었든, 자녀의 학력이 되었든, “1%의 무엇”을 가진 ‘미선씨’들은 99%의 시청자들과 ‘다른’ 존재가 되어 ‘미선씨’라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는 이러한 방식으로 3045 나이대의 여성, 그들 중에서도 주부들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부추긴다. 아름다운 외모, 잘 빠진 몸매, 돈까지 잘 버는 능력은 노골적인 찬탄의 대상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원하는 것과 정확히 부합한다. 문제는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1%의 어떤 것’을 가지지 못한 99%의 시청자들은 이들과 공감하지 못하고 타자화된다는 것이다. ‘몸짱 미선씨’들이 “여자이기 때문에” 평생 다이어트를 하고 몸매 관리를 하며 살아간다고 말할 때, 평범한 몸매를 가진 주부들은 ‘미선씨’들이 말하는 ‘여자’에서 소외된다. 장영란을 제외하면 남자로 구성된 패널들은 자신들의 사고방식으로 ‘미선씨’들을 평가하고 규정하는 남성들의 표본 집단과 같다. 이들은 돈을 많이 벌거나, 외모를 꾸미거나, 아이의 성적이 좋은 ‘미선씨’들에게 칭찬을 보낸다. 하지만 ‘미선씨’들의 욕망이 보편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경우, 곧 ‘아이돌 이모팬 미선씨’들은 마치 ‘화성인’을 보는 것처럼 대하며, ‘슈어홀릭 미선씨’들은 ‘된장녀’로 몰아간다. 이들 중에서도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과 무례한 언동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김병준 변호사의 캐릭터는, 99%의 여성이 갖지 못한 1%를 향한 욕망을 드러내면서도, 남성의 시선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의 이중적인 굴레를 드러낸다.

99%의 시청자들은 무엇을 얻나
그래서 를 보는 것은 자신과는 크게 상관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이지만, 매일매일 쇼핑 리스트와 실내 인테리어 변화를 업데이트 하면서 자녀 교육, 다이어트, 화장법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는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들르는 것과 비슷하다. 안 보자니 궁금하긴 하고, 보고 나면 자신이 가진 것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 만약 시술 경험을 자연스럽게 털어놓고, 구두에 매혹되는 자신을 숨기지 않으며 출연자와 동화되면서도, 대개는 평범한 시청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역할을 바꾸며 토크를 이끌어가는 박미선의 진행 능력이 아니었다면, 의 노골적인 속물성은 훨씬 더 극단적으로 드러났을 것이다. 박미선은 1%와 99% 사이를 오고가면서도 기꺼이 1%가 아닌 시청자의 입장에 서 줌으로서 프로그램 제목 속 자신의 이름이 허명(虛名)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박미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타깝지만 지금까지의 는 99%의 익명의 여성들에게는 불친절할 뿐만 아니라 불편한 프로그램이다.
글 윤이나

아줌마들의 질퍽한 수다가 쇼가 됐다. 생활, 의식, 문화, 사랑, 우정, 돈, 여가 등 거대담론에서 시시콜콜한 일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설문으로 이 땅에 살고 있는 남녀의 모습을 보여준다던 스토리온 (이하 ). 그러나 주로 다루는 주제나 통계는 낯 뜨거운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른바 ‘어제 TV 봤어? 글쎄 말이지’로 시작되는 선정적인 수다를 확대 재생산하는 그렇고 그런 방송이다. 대한민국 리얼 앙케이트 보고서라는 거창한 부제를 달았지만 실상은 아줌마들을 타겟으로 한 성인 개그 혹은 음담패설이며, 이 설문 프로그램의 선정성은 관음증의 증상과 연결선 상에 있다.

아줌마들이 할 얘기가 이거밖에 없다고?
<친절한 미선씨> vs <이사고>│친절한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
vs <이사고>│친절한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 />‘이사고 박 터지는 날’, ‘무서운 통계’, ‘고민해결 속 시원한 이야기’ 등 다양한 꼭지가 마련돼 있지만 주제는 대부분 바람, 남자들의 음주문화, 부부관계, 스킨십, 속도위반, 오르가즘, 고부갈등이다. 시어머니 문제 정도만 빼면 모두 섹스로 수렴된다. 수위도 상당하다. 이 프로그램에서 말하는 통계자료라는 게 ‘부인이 임신 중일 때 남편의 48%가 다른 여자랑 섹스를 했다’거나 ‘감성이 높은 여자가 지능이 높은 여자보다 오르가즘을 더 잘 느낀다’ 이런 것들이다. 심지어 남성 패널들에게 ‘결혼 후 다른 여자랑 잔 적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데 권용운은 엉겁결에 ‘패스’를 외쳤다. 그렇다고 를 보면서 정말 우리 사회의 성 문화, 부부문제가 이리 복잡다난할까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몇 회만 봐도 이 프로그램이 대한민국 표본 통계가 아닌 선정성에 주안점을 둔 방송임을 알 수 있을 테니까.

에 대한 윤리적, 통계학적 비판을 접어두면 줌마렐라 붐의 한 축을 형성하는 이경실 사단의 코미디가 눈에 들어온다. 줌마렐라들의 메이저 방송 무대가 MBC 라면 는 대학로 무대와 같다. 의 웃음 폭탄 이경실, 김지선, 김현철의 호흡은 여기서 다져지고 뭉쳐진 것이다. 케이블이기에 가능한 자극적인 소재들에다가 ‘아줌마’라는 면책권을 얹어 걸쭉한 수다를 떤다. 사실 선정적이긴 하지만 매번 웃음을 증폭시키는 것은 이경실 사단이 보유한 유려한 입담과 캐미스트리 덕이다. 본인 이야기를 먼저 오픈하면서 뭇 아주머니들의 공감을 사는 ‘다산’ 김지선이 이경실과 함께 드센 아줌마 역할을 맡고, 엉뚱한 말만 늘어놓는 ‘난봉’ 김현철, 정자를 닮은 표진인, 노총각 ‘연애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수세에 몰리는 남성 역할을 맡는다. 김현철은 이경실의 핍박이 있음으로서 개그를 만들 수 있고, 표진인과 김태훈도 정리 멘트만 하는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이경실 덕분이다. 그녀의 지휘에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토크는 주제의 선정성을 떠나 매력적이다.

프로그램의 허물을 덮는 아줌마 유머
그렇기에 이경실은 흥미롭다. 그녀가 빛을 발하는 무대는 모두 아줌마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아줌마란 단어를 가장 잘 이용하고 또 개척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경실이다. 박미선이 얌전하고 체념한 듯 남편 뒷바라지하는 아줌마 캐릭터라면, 이경실은 한 번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여성이다. 아줌마이기에 개인적인 시련을 극복하고 돌아올 수 있었던 그녀는 아줌마라는 무소불위의 면책권으로 캐릭터와 소재의 폭을 확장했다. 그 캐릭터가 바로 남자들을 쥐고 흔드는 대장부 이경실의 모습이다. 게다가 섹시하다. 다른 MC들을 아우르는 기와 카리스마, 그 화통한 리액션과 웃음을 보면 강호동이 떠오른다. 그런 동시에 김미화로부터 이어진 억척 아줌마 코미디의 최전선에 서 있다. 전형적인 아줌마와 줌마렐라의 복합이다.

는 시즌2를 거치며 자리 잡았다. 매주 비슷비슷한 주제들이 반복되는 가운데 이경실 사단의 원숙한 팀원들은 끊임없이 웃음을 만들어낸다. 케이블의 선정성이 무리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숙연하고 엄숙한 공중파 TV에서 볼 수 없는 나름 괜찮은 성인 코미디이다. 여기서 아줌마라는 단어는 선정적인 소재를 방송에 끌고 올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출연진들이 먼저 자극적인 질문과 통계 앞에서 쑥스러워하지 않고 바람을 잡는 것도 아줌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남자 MC들이 힘을 못 쓰는 것도, 음담패설이 저질 에로가 아닌 유머로 느껴지는 것도 아줌마들이 하는 아줌마들을 위한 수다이기 때문이다. 영미권 남자들에게 화장실 유머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이경실로 대표되는 아줌마 유머가 꿈틀대고 있다.
글 김교석

글. 김교석(TV평론가)
글. 윤이나(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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