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의 세계에서 정작 크리스마스에 올 눈의 유무는 중요치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강진(고수)과 지완(한예슬)의 늘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는 사랑 또한 고심해서 그린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드라마는 강진의 다양하지만 멋진 모습을 담는데 골몰한다. 일하는 강진, 키스하는 강진, 잠든 강진 등 그 어느 때보다 멋진 고수의 외모는 강진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물론 이경희 작가의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은 언제나 여느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못지않게 멋졌다. KBS 의 무혁(소지섭)도, KBS 의 복구(비)도 늘 한 여자를 열렬히 사랑하고 죽음까지 감내했다. 그러나 의 강진처럼 홀로 빛나는 경우는 없었다. 다른 이야기들이 빛나는 주인공을 받쳐 주지 못한 채,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하는 드라마에서 단 하나의 점만이 빛나는 것. 그것은 한 편의 드라마에게 득일까, 독일까? 그리고 우리들의 크리스마스에 내린 눈처럼 여전히 건조하기만한 강진과 지완의 사랑에도 과연 눈이 올 수 있을까? 다음은 강명석 기자와 조지영 TV 평론가가 내린 예보다. /편집자주

평생 1등을 놓쳐본 적 없다. 잘생기고 싸움도 잘한다. 10대 시절 좋아했던 여자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회사 오너의 딸에게 직언을 날릴 만큼 강직하다. SBS 의 강진(고수)은 남자가 아니다. 그는 여자를 위한 신화고, 이 드라마는 그 신화를 위한 제단이다. 강진이 지완(한예슬)의 방을 고치려고 팔의 잔근육을 드러내며 못질을 하는 기적을 행하면, 주변 사람들은 그에 대해 간증한다. 범서 그룹 최고의 엘리트 태준(송종호)은 강진만큼은 두려워하다 비리를 저지르고, 그룹 오너의 딸 우선(선우선)은 강진이 “정직하고 바르다”며 극찬하며, 지완이 일하는 카페 주인은 그를 조카사위 삼고 싶다고 한다. 모든 자료가 준비된 이우정의 PT내용이 어떻게 강진의 말 한마디로 바뀔 수 있는지, 태준에게 목메던 이우정은 언제 강진에게 반했는지 궁금해 하지 마라.

드라마는 사라지고 강진만 남았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vs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크리스마스에 눈은 왔지만


vs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크리스마스에 눈은 왔지만" />는 강진이 눈이 오라면 눈이 올 것 같고, 지완부터 강진의 고향 처녀까지 모두 그에게 반하는 세계다. 지완은 강진과 만난 뒤 ‘사랑하지만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되풀이하는 것이 역할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태준은 강진과 경쟁하는 순간 비열한 남자로 전락한다. 캐릭터의 균형은 깨지고, 강진이 회면에서 사라지면 캐릭터들은 그들끼리 에피소드를 전개하는 대신 강진에 대한 감정을 털어놓기 바쁘다.

는 이경희 작가의 처럼 보인다. 개연성있는 사건 대신 “꿈에서 난 지완이에게 약속했었다. 다신 널 놓치지 않을 거라고”같은 ‘오글거리는’ 대사들이 가득한 이 드라마에 누군가는 유치하다고 비명을 지르고, 누군가는 강진에게 비명을 지른다. 그래서 는 이경희 작가의 퇴행처럼 보인다. 그는 MBC 에서 도시 남자가 인정이 사라져가는 현재의 시골로 들어가 모두 따뜻한 마음을 되찾는 이야기를 그렸다. 하지만 은 순수한 로맨스가 남아있던 과거의 시골로 돌아가 그 때의 기억을 끊임없이 재현하는데 몰두한다. 이경희 작가는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자신이 만든 완벽한 남자 강진에 열광하고, 그를 통해 자신이 꿈꾸는 모든 로맨스를 실현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도망치는 것 뿐입니까?
강진의 어머니 춘희(조민수)는 의 감수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이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아내 앞에서 “나 한준수(천호진) 앞에서 안 웃을게”같은 말을 하는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가졌다. 이 퇴행에는 어른과 도시에 대한 피로와 부정이 스며들어 있다. 이 드라마에서 도시는 태준 같은 남자들이 비정한 경쟁을 벌이는 곳이다. 반면 시골에서 자란 강진은 언제나 정정당당한 남자고, 강진과 지완은 여전히 고급 레스토랑보다 포장마차가 어울린다. 지완의 꿈도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경희 작가는 도시와 어른의 사랑을 부정한 채, 완벽한 남자 강진의 완전한 사랑에만 몰두한다. 물론 그 결과로 강진은 매 회 그에게 빠지는 여성 팬의 숫자를 늘려간다. 회의 중 넥타이를 풀거나, 일 때문에 고뇌하는 강진의 모습은 이런 로맨스물의 남자 주인공에 열광하는 여성의 심리를 정확하게 찌르는 부분이 있다. 강진을 어깨에 힘주며 멋진 척 연기하는 대신 매일 그런 인생을 사는 남자처럼 자연스럽고 담백하게 묘사하는 고수의 연기는 캐릭터의 매력을 폭발시킨다.

하지만 이경희 작가가 강진에 집중하면서 그의 성공작들에 담겼던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는 사라지고, 강진만 남았다. 그래서 는 지완보다 이경희 작가의 마음속이 더 궁금하다. 그는 왜 현실로부터 도피해 멋진 남자의 로맨스에만 집중하는가. 이는 마치 앞에 방영된 SBS 의 홍미란-홍정은 작가가 KBS 과 정반대로 주인공의 로맨스에 집중한 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이 도시에서 도망쳐 강진 같은 남자에게 가고 싶은 것은 아닐까.
글 강명석

사랑이 애절하거나 아름답기 위해서, 몇 가지 장애물을 견뎌야 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사랑하는데 사랑한다고 하지 못하는 가슴 아픈 정황이 겹쳐질수록, 그 사랑이 깊어지는 것도 알려진 공식이다. 여기서 쉬운 길은, 질투하고 방해하느라 자신의 인생을 소진시키는 드라마 전개용 악인을 등장시키는 방법이지만, 는 그런 뻔한 악인을 등장시키지는 않는다. 대신, 젊은이들에게 가족의 굴레를 씌운다. 살아있는 부모는 살아있어서(우정의 아버지), 죽은 아버지는 죽은 채로(강진의 아버지) 청춘의 사랑을 가로막는다. 살아서 사랑의 큐피드가 되어주던 오빠는(지완의 오빠), 죽어서 그 사랑의 절대적 방해자가 된다.

떠난 가족들이 번번이 좌절시키는 사랑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vs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크리스마스에 눈은 왔지만
vs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크리스마스에 눈은 왔지만" />지완(한예슬)이 산청을 떠난 이유는, 오빠(송중기)가 죽었기 때문이고, 그 오빠가 죽은 것은 강진(고수)의 팬던트를 찾아주다가 그만 물에 빠져 익사했기 때문이고, 강진이 팬던트에 극도의 애착을 보였던 것은 죽은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었기 때문이다. 태준(송종호)이 두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한 것은 아버지의 목숨이 왔다 갔다 했기 때문(결국 죽었다)이며 곧 준수(천호진)의 병세는 극 전개의 중요한 변수로 등장할 것이다. 중심인물의 부모들뿐만 아니라 태준의 오른팔 역시 어머니 수술비를 마련해준 태준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다. 애초에 부재하거나, 있다가 사라졌거나, 곧 없어질 가족들은 왜 이렇게 많을까? 떠난 가족들은 남아있는 사람에게 거대한 죄책감이라는 망령으로 떠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망령을 위로하려고, 스스로의 행복을 외면하고, 포기한다.

의 젊음이 안타까운 것은, 사랑이 너무 쉽게, 죄책감에 저당 잡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이른 죽음, 형제의 돌연한 죽음 같은, 갑작스러운 비극은, 슬프긴 하지만 다소 폭력적인 설정이다. 이 설정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이, 예정된 불행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도 ‘아버지가 죽었으니까…’ ‘오빠가 죽었으니…’ 라고 금방 시청자들도 수긍하게 만드는 단순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발라드 배경 음악 없이도 아픈 이야기가 올까요?
강진은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가서, 사랑을 외면하다 못해, 위악에 몸을 맡길 예정이다. 그의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이 드라마의 무게중심이 단연 강진에게 기울어있기 때문이다. 그가 산청에서, 지완을 만나,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을 열었던 짧은 순간 드라마는 빛이 났고, 8년을 봉인해둔 그 마음이 열리자마자 닫힐 때 드라마도 황폐한 길을 떠난다. 내면은 불같이 뜨겁지만, 아무것도 변명하지 않고, 원망도 하지 않는 강진의 캐릭터는 홀로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 외롭고 짠하기는 지완이나 태준도 비슷하다. 다만 개별 캐릭터들마다의 사연과 그로 인한 갈등이 지나치게 단조롭고 평면적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금방 사랑을 확인하고, 바로 그 사랑을 번복하고, 곧 만나자 했던 사람들이 늘 그 시각에 만나지 못하는 패턴이 반복될수록 시청자는 지쳐간다. 게다가 그 부모들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도 답답하다. 그게 젊은 청춘들의 삼각 사랑을 멀리서 비추는 거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개별 캐릭터의 눈물은 저마다 반짝이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멀찍이 떨어져서 볼 때만 아름다운, 박제된 세상 같다. 카메라가 인물에게 바짝 다가갈 때 잡고 싶은 것은, 슬픈 눈빛만이 아니라 개연성 있고 구체화된 삶의 움직임이다. 발라드 배경음악이 깔리지 않아도, 내면의 아픔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은가.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어딘지 늦게 도착한 연서 같은 이 드라마의 행로가 궁금해진다. 마음을 감추고 위악을 택한 강진의 진심이, 부디 너무 늦게 도착하지는 말기를, 지켜주기로 한 지완 뿐만 아니라 드라마도 구해줄 수 있기를.
글 조지영

글. 강명석 two@10asia.co.kr
글. 조지영(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