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민│My name is...
이일민│My name is...
My name is 이일민(李一玟). 어떤 화가 분께서 지어주신 이름인데 상당히 복잡한 한자 풀이를 갖고 있다. 이(李)는 나무 목(木)에 아들 자(子)로 풀어서 가문의 뿌리에서 나온 아들, 그리고 한 일(一)은 한 명, 옥돌 민(玟)은 임금 왕(王)에 글월 문(文)으로 공부의 왕이다. 말하자면 우리 가문에서 나온 한 명의 공부 왕인 거다.
1992년 8월 31일에 태어났다. 현재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호박이와 같은 열여덟 청소년이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정말 좋아했다. 그리고 지금 봐도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동차 그림을 잘 그렸다. 그래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디자인을 전공하러 어머니와 미국으로 건너갔다.
철들기 전 기억 속 아버지는 항상 내가 학교 갈 때마다 일 때문에 피곤해 침대에서 잠든 모습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왜 아빠는 항상 침대에서 죽어있어?”라고 물어봤다더라. 사실 그 모든 게 가족을 위한 것이었는데도 많이 못 놀아주고 같이 시간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미안해하신다. 그래선지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며 가끔 미국에 올 때마다 1:1 농구를 비롯해 내가 원하는 모든 걸 해주셨다.
한인 교회를 다닐 때 어머니께서 굳이 나를 영어부에 넣으셨다. 나는 영어도 안 되니까 어머니 따라 성인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영어부에 들어간 덕에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고 좀 더 자신감 있게 영어를 할 수 있게 됐다.
디자인의 관점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동차는 역시 벤츠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마다 한 번도 ‘저 모델의 디자인은 왜 저러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 브랜드다.
중국어도 배우고 아버지도 오가시기 편하게 미국에서 중국 상해로 다시 유학 장소를 옮겼다. 사실 나는 되게 가기 싫었다. 내가 살던 캘리포니아 파사디나에 디자인 과정으로 유명한 아트센터가 있어서 그곳에 진학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해로 옮기니 가끔 한국에 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연예인의 끼가 원래부터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머니 말로는 부모님이 외출하고 돌아오면 부모님 옷을 잔뜩 꺼내놓고 하나하나 입어보며 나 혼자 패션쇼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임성한 작가님의 SBS 를 정말 재밌게 봤다. 미국에 있을 때 방영했기 때문에 한인 비디오 대여점에서 테이프로 항상 빌려봤다. 그러니 그 작가님의 작품 안에서 한혜숙 선생님, 이태곤 선배님과 함께 한다는 게 너무 꿈같은 일이다.
태권도 3단이다. 한국에서 일 품을 땄고 미국에 건너가서 2단, 3단을 땄다. 그렇다고 태권도를 되게 좋아했던 건 아니다. 어렸을 때 배우는 건 내 뜻이 아니라 부모님의 뜻이지 않나. 처음으로 부모님께 내 뜻을 드러내고 관철시켰던 건 연기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다.
첫 회 라면 먹는 신에서 맛있게 먹었다고 칭찬을 들었다. 사실 그 앞에 미숫가루를 물에 타는 장면을 찍다가 너무 못 타서 한 번 혼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것만큼은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입 안이 뜨거워도 아랑곳하지 않고 후루룩 들이켰다. 그 덕분인지 몇 회 뒤에 비취 누나가 내게 “너는 어쩜 라면을 그렇게 맛있게 먹니”라고 말해주는 장면이 나왔다.
오일 페인팅을 가끔 시간이 나면 그린다. 미국에서 디자인과 함께 오일 페인팅도 배웠는데 취미생활로 즐기기엔 좋은 것 같다.
끝순이로 나오는 최아진 누나는 실제로는 나보다 한 살이 많다. 굉장히 동안이고 드라마에선 여자친구지만 현장에선 꼬박꼬박 끝순이 누나라고 부른다. 그러다 슛 들어가면 다시 당당한 남자친구 역할로 변하고.
엄마로 나오는 한혜숙 선생님께서 정말 엄마처럼 잘 챙겨주신다. 사실 처음에는 후배들에게 쓴소리도 많이 하시는 분이라도 들어서 많이 긴장했다. 그런데 내 연기의 문제에 대해서도 “요즘 손동작이 많아졌더라”는 식으로 자상하면서도 세심하게 지적해주신다.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에 휴대전화용 캐롤 벨소리를 선물해드렸다.
포경수술에 대한 대사를 끝순이와 나눌 때는 나도 많이 당황했다. 꼭 민망한 주제라서가 아니라 어떤 맥락인지 쉽게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나중에 찬찬히 생각해보니 전에 누나들과 대화하며 수술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는 대사가 있었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일이라도 여자친구 앞에서는 당당하게 드러내겠다는 호박이의 어린 마음이 아닌가 싶다.
나를 보고 “호박이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길거리를 걷다보면 가끔 있다. “따라 가볼까?” 이러면서. 사실 그럴 때 으쓱할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원하는 건 배우라는 직업이지 스타가 아니니까.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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