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해를 정리하고 오는 해를 맞이할 때 제일 먼저 하는 것, “알고 싶진 않지만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 바로 점(占)이다. 뮤지컬 <스페셜 레터>를 통해 군대를 조커로 내세워 제 15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극본상을 받았던 작가 박인선이 이번엔 점을 소재로 한 뮤지컬 <점점>을 선보인다. 지난 24일 충무아트홀 블랙에서 프레스콜을 가진 뮤지컬 <점점>은 ‘웃으면 복이 온다’는 모토를 그대로 실천하는 작품이다.

공연은 거울이 깨졌다고, 이 빠지는 꿈을 꿨다고, 면접 보는 날 미역국을 먹었다고 불길해 하는 사람들의 징크스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징크스의 중심엔 이름 그대로 미신을 ‘맹신’하는 맹신비가 있다. 뮤지컬 <점점>은 날씨를 예측해야 하는 기상캐스터이지만, 스스로의 인생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서른 살 맹신비의 일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점을 소재로 한 만큼, 뮤지컬 <점점>의 재미는 바로 그 ‘점’에 있다. 맹신비의 소울메이트 격인 김보살은 ‘무릎팍 송’을 개사한 ‘인생 쫙쫙’이라는 ‘보살 송’을 만들어내고, 3만 원짜리 부적을 3개월 할부로 긁은 신비에게 “할부 수수료만큼 효험이 찔끔찔끔 빠져나간다”라는 대사들로 웃음을 자아낸다. 웃음 속에서 맹신비는 과연 진정한 사랑을 찾아낼 수 있을까.

‘기상캐스터계의 펠레’ 맹신비, 오나라-박민정
미모를 겸비한 행운의 기상캐스터로 시작했으나, 현실은 ‘기상캐스터계의 펠레’로 불리고 있다. 기상예보와 운명의 짝을 위해 김보살의 조언을 맹신하며, 머리에 해바라기를 달고 방송을 하고 왼쪽 가슴에 부적을 넣고 다녀도 그녀의 인생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 그녀에게 매번 틀린 예보 때문에 우주와의 교신에 실패했다며 버럭대는 오묘한과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고민수 PD가 나타나 나이 서른에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 <싱글즈> 등 다수의 로맨틱 코미디를 섭렵해 온 오나라와 박민정이 맹신비 역에 더블캐스팅 되었다.

“운명을 이기는 건 사랑” 고민수, 성두섭
남자 직장동료라고 해봤자 발가락 양말을 신은 발을 수시로 만지는 부장뿐인 신비의 직장에 훤칠한 키와 젠틀한 매너를 지닌 고민수 PD가 입사한다. 술에 취한 신비를 부축하고, 덤으로 토사물을 손으로 받아줄 준비까지 되어 있는 남자. 하지만 미신을 맹신하는 신비에 비해, 민수는 미신 따위 절대 믿지 않는 인물이다. 결국 오묘한과 고민수 사이에서 고민하던 신비를 위해 차도에 뛰어들어 운명을 시험해 본다는 비현실적 로맨틱남 고민수는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내 마음의 풍금>, <싱글즈> 등에서 로맨틱한 면을 주로 선보였던 성두섭이 맡는다.

“응답해라, 안드로메다!” 오묘한, 정상훈
오묘한을 설명하는 직함엔 2012년 지구종말 결사 저지, 지구를 지키는 정의의 사나이, 사단법인 유니버스 커뮤니케이션 한국 지부장, 낙뢰체험 동호회장, 프리랜서 UFO 연구가가 있다. 홀로 외계인과 교신하며 “12시 정각, 모든 게 비정상”이라는 말을 일삼는 인물로, 매번 예보를 틀리는 신비에게 항의하지만 그녀를 선 자리에서 만난 후 사랑에 빠져버린다. 현실에서 한참 떨어진 오묘한 역은 정상훈이 맡으면서 오히려 캐릭터에 생기가 더해졌다. 올해 <기발한 자살여행>에서 선보인 우상준과 일맥상통하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지만, 능청스럽게 이 역을 해낼 사람은 역시 정상훈뿐이다.

“네 인생 대박 팍팍” 김보살, 진선규-성종완
장군신령님이 좋아하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노래를 부르며 등장하는 보살님. 김보살은 나이도, 성별도 다른 신령님들을 모시고 있다고 하지만, 매일 아침 벼룩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를 살펴보며 금전운이 없다고 툴툴대는 인물이다. 사기성이 다분해 보이는 인물이고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에게서 ‘정성’만을 원하지만, 신비에게 일과 사랑 모두를 상담해주는 유일한 카운슬러이기도 하다. 보살 외에도 맹신비와 오묘한이 선을 보는 곱창집 주인으로도 등장하는 등 <김종욱 찾기>의 ‘멀티맨’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김보살 역에는 진선규와 성종완이 캐스팅되었다.

관전 포인트
박인선 작가가 <스페셜 레터>에서 보여주었던 섬세한 디테일과 코믹한 캐릭터는 <점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맹신비, 오묘한이라는 캐릭터들의 이름은 마치 문영남 작가의 작명법을 보듯 그대로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고, 맥아더 장군이 강림해 하룻밤 함께하자는 제안을 거절한 연보살 등 조연 캐릭터의 면면도 탄탄하다. 하지만 순규를 사이에 두고 김병장과 은희의 삼각관계가 도드라지면서 산만해진 <스페셜 레터> 후반부처럼, <점점>도 같은 전개를 진행한다면 1막과 2막이 전혀 다른 극이 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러한 점에서 <점점>은 로맨틱과 코미디의 배치에 가장 큰 무게중심을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 <점점>은 11월 25일부터 내년 2월 7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계속된다.

사진제공_악어컴퍼니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