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스타. 언젠가부터 비의 본명인 정지훈보다도 더 익숙해진 이 명칭에 대해 누군가는 인정할 수도, 누군가는 거품이라 말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에게 그런 수식이 따라다닌다는 것이고, 칭찬을 하던 비난을 하던 결국 그 기준치는 월드스타라는 저 높은 곳에 체크된 붉은 선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 기준이 그를 좇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가 그 기준을 좇지 않았더라면 2006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그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영광스러운 한 순간의 기억으로 박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월드스타라는 명칭을 기사 작위 같은 일종의 명예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이름에 어울리는 현재진행형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열렬한 인기와 부가 보장된 한국 활동을 뒤로 미뤘다. South Korea를 “전쟁 중이거나 핵을 가지고 있는 나라” 정도로 알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 그는 스타 비가 아닌 수없이 오디션에 낙방하는 신인 레인이었다. 월드스타와 무명의 신인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큰 것이었고, 이에 대해 한쪽에서는 신랄한 거품론을 펼쳤다. 하지만 그 간극은 결국 월드스타의 상징적 차원과 실재적 차원의 간극이다. 영화배우 강수연이나 배구선수 김세진에게 붙었던 이 명칭을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그에 어울리는 존재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뛰어든 건 비가 처음이다. 그것은 무모하거나 용감하기 이전에, 처음이기에 외로운 길이다.

월드스타라 불리는 이의 생존방식

돌이켜 보면 6인조 댄스그룹 팬클럽의 실패 이후 솔로 활동을 결심한 순간부터 비는 언제나 혼자서 투쟁해 왔다. 이것은 아무리 절실한 노력이라고 해도 결코 노력이라는 어휘로 대체할 수 없는 그만의 방식이다. MBC <황금어장>의 ‘무릎 팍 도사’에서 자신의 위치를 너무 잘 아는 여유만만한 모습을 보여주던 그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돈이 있으면 살렸다니까요?”라고 말할 때 그 격앙된 목소리에는 아직 숨길 수 없는 적개심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세상이 나에게 등을 돌렸다면 나도 보란 듯이 보여 주겠다”는 그에게 세상은 필연적으로 싸워 이겨야 할,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싸워야 할 대상이다. 미국 활동을 하면서 악플과 왜곡 기사를 보며 오히려 힘을 냈다는 것, 그것이 딱 비의 방식이다. 내가 이러이러해서 거품이라고? 오냐, 그렇다면 그 이상을 보여주마. 박진영에게 발탁되기 위해 “음악이랑 싸우는 기분”으로 5시간 동안 춤을 췄을 때나, 할리우드에서 주연으로 발탁되어 작품을 찍을 때나 그는 투쟁의 방식으로 산다. 아니 생존한다.

첫 할리우드 주연작 <닌자 어쌔신>에서 그가 연기한 라이조가 고독한 영웅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흥미롭다. 라이조에게 삶이란 외로운 투쟁의 연속이다. 어렸을 때는 고아로서 추위와 굶주림과 싸웠고, 부모 대신 그를 받아준 킬러 집단에서는 같이 생활하는 동료들과 목숨을 걸고 수련해야 했다.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친구가 조직을 떠나려 했다가 죽는 모습을 두 눈으로 봐야했고, 조직의 룰 대신 자신의 신념을 따르고자 하자 사방이 그의 적이 된다. 최고의 킬러이기에 그만큼 강한 킬러들과 싸워야 하고, 어둠 속에서 누구보다 강하기에 밝게 빛나는 세상에 얼굴을 내밀 수 없는 그에게 세상은 그 자체로 투쟁의 대상이다. 이러한 라이조의 상처 받고 굴곡진 정체성은 비의 육체를 통해 형상화된다.

유일무이한 퍼포머, 배고픈 호랑이, 고독한 킬러

사실, 영화의 프로모션 단계부터 모두들 그의 몸 이야기만을 했다. 시사 이후에 나온 몸과 액션은 수준급이되 연기는 부족하다는 평가도 마찬가지다. 냉정하게 말해 <닌자 어쌔신>은 제임스 맥티그 감독의 전작인 <브이 포 벤데타> 같은 작품에 비교하면 그다지 흥미로운 지점이 보이지 않는 범작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몸매만 남았다’고 말하는 그 몸은 단순히 그 정도로 평가될 수준의 것이 아니다. 아침에 아몬드 한 줌을 씹어 삼키면서 이를 악물고 인터벌 없이 각종 근력 운동을 소화해서 만든 그의 몸은 헬스 몇 개월로 펌핑한 근육질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약물 없이 동양인이 만들 수 있는 100% 혹은 110%의 결과물이자 킬러의 몸이다. 그리고 그것이 비가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월드스타라는 타이틀에서 살짝 벗어나 생각하면 한국인 배우가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연기하길 바라는 것은 일종의 난센스다. 하지만 몸은 언어적 핸디캡과는 상관없이 본인의 의지로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고, 비는 닌자로서 생존하기 위해 수련하는 라이조와 마찬가지로 할리우드에서 생존하기 위해 신체를 극한의 단계로 끌어올렸다. 그것은 연기 대신 남은 잉여 같은 것이 아니라 <내 사랑 내 곁에>에서 김명민이 보여준 살인적 감량처럼 육체적 리얼리티의 극단이다. 이 지점에서 라이조는 “굶어 죽기 직전의 호랑이” 같은 절박한 투쟁 본능의 비와 조우한다.

비가 공공연히 이야기한 것처럼 <닌자 어쌔신>의 흥행 여부는 여태 그가 그려온 상승 곡선에 또 한 번의 도약을 가능하게 할 중요한 분수령이다. 그 결과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가 자신의 이름을 주연으로 올린 할리우드 작품을 들고 왔다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투쟁의 공간으로서의 세상은 더욱 넓어졌다는 사실이다. 만약 월드스타라는 타이틀이 아니라면 한국인으로서는 유일무이한 성과를 거뒀노라 평가받겠지만 이제 사람들은 한국인 치고 얼마나 잘했나보다는 할리우드 주연으로서 얼마나 잘했는지를 따진다. 그것은 비에게만 적용되는 가혹한 기준인 동시에 그가 홀로 싸우며 확보한 자신만의 투쟁 영역이다. 제이튠이라는 둥지를 만들고 엠블랙이라는 새끼 새를 키우지만 그들의 춤을 후배들보다 우월하게 소화해내는 유일무이한 퍼포머. 할리우드를 통해 세계 정복의 꿈을 펼치고 싶어하는 여전히 배고픈 호랑이. 그것이 비, 이 남자가 생존하는 방식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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