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 중심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현재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의 대세다. MBC <무한도전>, KBS <해피선데이>의 ‘1박 2일’과 ‘남자의 자격’, KBS <천하무적 토요일>의 ‘천하무적 야구단’은 모두 남자들이 주축이 된 리얼 버라이어티 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왜 남자들은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시대에 강세를 보이고 있을까. 남성 중심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 나타나는 법칙들, 말 그대로 ‘남자의 자격’ 다섯 가지를 짚어봤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흔히 캐릭터가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캐릭터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서 나오고, 그 관계는 출연자들의 공통된 정서를 건드릴 때 훨씬 빠르게 형성된다. 남자들 중심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서는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 혹은 서열 관계가 된다. <무한도전>, ‘1박 2일’, ‘남자의 자격’에는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 등 확실한 ‘1인자’ 역할을 하는 MC들이 있고, ‘천하무적 야구단’에는 감독 역할을 하는 김C가 있다. 또한 그 주변에는 1인자의 자리를 노리거나, 1인자 못지않은 영향력을 가진 에이스가 있고, 못 웃긴다고 구박 받는 캐릭터도 있다. 셋만 모여도 생기는 남자들의 역학관계를 몇 명의 출연자 안에 반영,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만들어내면서 시청자의 공감을 사는 작업이 첫째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오빠밴드’가 신동엽, 김구라, 탁재훈, 유영석 중 누구도 주도권을 명확히 쥐지 못하면서 이야기의 구심점이 사라진 것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밴드, 야구, 극단적인 벌칙들이 기다리고 있는 복불복 등 ‘남자의 놀이’를 한다.

‘1박 2일’은 남자들이 여행을 떠난다는 단순한 콘셉트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1박 2일’은 여행 과정에서 복불복을 비롯한 다양한 놀이를 집어넣는다. 이는 출연자들이 ‘웃기면서 여행’해야 하는 예능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놀이를 하고 내기가 붙으면 미친 듯이 달라붙는 남자들의 특성을 살린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단순한 놀이라 해도 그것으로 서열이 갈리거나 남들보다 좋은 특혜라도 부여되면 자발적으로 뛰어노는 것이 남자들이다. ‘1박 2일’의 추석 특집에서 출연자들이 연평도 게잡이를 면제 받을 수 있는 윷놀이를 하자 “윷놀이가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면서 열중한 것은 단순한 놀이라도 경쟁만 붙으면 환장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천하무적 야구단’의 몇몇 선수들은 곧 있을 사회인 야구 전국대회 준비에 열중하느라 웃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정도. 그 목적 있는 놀이에 대한 열중에서 빚어내는 에너지가 시청자까지 몰입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그깟 공놀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월드컵 4강도, WBC 결승도 그깟 공놀이에 매달린 남자들의 놀이에서 시작됐다.

유재석과 강호동은 명실상부한 예능계의 ‘1인자’다. 하지만 그들이 <무한도전>과 ‘1박 2일’의 1인자 역할을 하는 건 그들이 프로그램 내에서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상황을 정리하는 유재석의 진행능력이나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솔선수범하는 강호동의 역량은 모든 제작진들이 인정한다. 심지어 그들도 방송에서 ‘1인자 투표’나 ‘출연자들의 배신’같은 에피소드로 자리를 위협받기도 한다. 설정이든 실제든 프로그램 내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언제든지 역전의 위험에 노출된다.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애초에 ‘A급’은 오지호나 김준처럼 잘생긴 배우이거나, 김창렬과 임창정처럼 방송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천하무적 야구단’ 안에서만큼은, 그들은 야구 실력에 따라 위상이 변한다. 마리오는 야구 실력이 늘어나는 것 하나만으로 그의 실제 위상과 상관없이 프로그램에서 주목 받는다. 실제 연예계에서 1인자인지, 아니면 ‘쩌리’인지는 상관없다. 일단 남자들의 버라이어티 안에 들어왔으면 그 안의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캐릭터지만, 그 캐릭터를 보게 만드는 것은 그 주변 인물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공통된 분위기다. <무한도전>에는 <무한도전>만의 분위기가 있고, ‘1박 2일’에는 ‘1박 2일’만의 분위기가 있다. 이 고유의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웃음의 코드가 생기고, 시청자들이 빠르게 거기에 동화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새 멤버의 영입은 지극히 신중해야할 필요가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 중 가장 충실한 고정 팬을 가진 <무한도전>이 전진, 길 등의 새 멤버를 영입할 때마다 논란에 부딪친 건 우연이 아니다. 팬들은 새 멤버가 들어올 때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의 분위기가 깨질 것을 걱정한다. 길은 <무한도전>에서 게스트, 반고정, 고정의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무한도전>에 흡수될 수 있었고, ‘천하무적 야구단’은 정상적인 시합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멤버 보강이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나서야 김성수와 조빈 등이 들어왔다. ‘오빠밴드’의 실패는 남자들이 주축인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좋은 반면교사다. ‘오빠밴드’는 팀워크가 제대로 생기기 전에 실력 있는 새 멤버의 영입과 게스트의 초대로 쇼의 분위기 자체가 애매해졌다.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끈끈한 팀워크의 남자들이 열심히 하면서 조금씩 발전하는 거지, 실력 좋은 멤버들을 영입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남자들의 버라이어티는 못난이들의 모임에서 시작된다. <무한도전>과 ‘천하무적 야구단’은 물론, ‘1박 2일’도 출연자들의 어수룩한 모습을 강조하며 그들이 ‘평균 이하’라는 것을 강조한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모습으로 갖은 놀이에 열중하는 모습들은 시청자에게 걱정 없이 그들의 놀이에 동참하게 만드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유치해 보일 만큼 해맑은 그들의 모습은 곧 그들이 보통의 어른들은 갖지 못할 꿈을 가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처음에는 유치하게만 놀던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놀이를 ‘꿈’으로 바꾸고, 세상으로 나아간다. 소와 줄다리기를 하던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은 봅슬레이 국가대표에 도전했고, ‘1박 2일’은 시청자와의 전국투어, 외국인과의 여행 등을 기획하며 전국을 자신들의 세트장으로 만들고 있다. ‘남자의 자격’도 최근 공군 조종사에 도전했고, ‘천하무적 야구단’은 어느새 오합지졸에서 “진짜 야구를 하는” 선수들로 변신 중이다. 그저 웃기기만 할 줄 알았던 루저들이 어느 순간 세상에 꿈을 주는 슈퍼 히어로로 변신하는 것은 남자들의 오랜 꿈이다. 꿈꾸는 남자, 그것이야말로 ‘남자 버라이어티’의 열쇠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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