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가 소위 ‘속옷 패션’을 선보이며 ‘컴 투 미’를 부른 개국 축하쇼부터 tvN은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었다. 모두가 보지만 모두가 안 보는 척 하는 채널, 그것이 와 <스캔들>로 대표되던 초기 tvN이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이 채널은 케이블의 영역을 확장해왔고, 그것은 tvN 2.0을 표방한 작년부터 <롤러코스터>라는 대박 프로그램을 비롯한 자체 제작물을 통해 종합오락채널로 변신한 현재에도 마찬가지다. 그 중심에는 과거나 지금이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송창의 대표가 있다. 개국부터 지금까지 tvN의 정체성을 설계해온 그에게서 이 파란만장한 채널의 성장기를 들어보았다.

<롤러코스터>가 가구시청률 4.2%를 기록했다. 공중파 예능 중 부진한 프로그램이 3%대를 기록하는 걸 생각하면 이젠 케이블치고 대박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할 단계를 넘은 것 같다.
송창의:
내가 3년 전에 처음 케이블 쪽에 왔을 때 시청률 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0.3, 0.4%인 거다. 그때만 해도 공중파에서 10% 나오면 망했다고 했었다. 그런 곳에서 25년 정도 잔뼈가 굵은 놈이 여기 와서 0.2를 보니 이상할 수밖에 없지. 그런데 여기 있는 분들은 그 0.1의 포인트에 되게 일희일비 하는 거다. 그런데 tvN 개국하고 몇 개월 만에 <리얼스토리 묘>가 1%를 넘겼다. 경사가 났지.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가령 <스캔들>이 3%를 기록하면 그건 4%도 나올 수 있다는 거고, 4%가 나오면 역시 5%도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니까. 케이블에서 10%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는 거다.

“남이 하던 걸 따라 해서 어느 세월에 논란을 일으키겠나”

하지만 분명 tvN 이전에는 케이블에서 그런 대박이 나질 않았다. 과거와 어떤 차이가 있었다고 보나.
송창의:
처음에 경영자가 내게 케이블의 문제점이 무엇이냐고 묻기에 축소지향과 자기비하, 두 가지만 고치면 된다고 했다. 어떻게 살림 잘 꾸려서 500만 원 들여 만들던 게 0.2% 나오다가 0.4% 나오면 우리 100% 시청률 올랐다면서 굉장히 만족하고 그걸 효율성이란 단어로 얼버무리더라.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다. <막돼먹은 영애 씨>와 <택시>, <롤러코스터>가 돈이 많이 들어가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문제는 패러다임 전환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오물조물 만들어서 그걸로 성적을 요만큼 더 올리려는 그런 마인드다. 또 케이블에 오래 있던 전문가들은 케이블에서 시청률 1%가 나오면 자기 손에 장을 지진다고까지 했다더라. 그런 자기비하를 벗어나야 케이블이 발전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런 종사자들의 마인드 변화를 비롯해 여러 가지 요소가 겹쳐져서 현재의 케이블이 가능하다고 본다.

대부분의 가구가 케이블망을 통해 TV를 보는 환경 역시 중요할 거 같다.
송창의:
그렇다. 지금 사실 공중파와 케이블 분류가 무의미하다. MBC와 KBS를 안테나로 보는 사람은 없지 않나. 다 케이블로 보니까 송수신 방식의 구분은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그쪽이나 우리나 원 오브 채널이다. 시청자가 접할 환경은 동등해지고 커버리지도 비슷해지고. 다만 그쪽은 역사가 깊으니 인프라도 있고 수익도 높아서 제작비와 인력도 많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편성에 있어서도 대부분의 시청자가 공중파에선 몇 시에 뭘 하는지 알지만 아직 케이블은 재핑(광고를 피하기 위해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꾸는 행위)에 의존하는 면이 다르고. 하지만 공중파와 일 대 일로 붙어도 괜찮을 프로그램들이 나오는 걸 보면 언제까지 못 넘을 산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 프로그램들이 유독 tvN에서 많이 나왔다. 예능 PD 출신 경영자로서 무엇을 강조했나.
송창의:
흔히 화제의 중심이 되자는 말을 하는데 나는 PD들에게 논란의 중심이 되자고 말한다. 논란 마인드는 창의성과 에너지의 원천이다. 논란을 일으키려면 내가 지금 하는 프로그램의 포맷이 논란의 여지가 있느냐, 오늘 출연자가 논란의 여지가 있느냐, 연출 기법이 논란의 여지가 있느냐를 생각해야 한다. 결국 평범하지 않은 걸 택하는 거다. 과거 남이 하던 걸 따라 해서 어느 세월에 화제가 되고 논란을 일으키겠나. 다른 채널에서 시도하지 않은 걸 하려고 무진 애를 썼고 그 중 잘 된 것도 있었던 것 같다.

공중파 시절부터 새로움을 강조했는데 그러면서 또한 인문학을 강조하는 걸로 안다. 사실 인문학은 언젠가부터 창작자보단 책상도령의 것으로 치부되는 면이 있다.
송창의:
꼰대적인 발상일지 모르겠는데 결국 기초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정보의 양은 많아지는데 그 중 한 부분에 대해 얼마나 사유를 하는지는 좀 의문이다. 트렌드 세팅이란 결국 창조를 하는 건데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유행하는 옷을 입고 강남에 가서 브런치를 먹는 걸 트렌드 세팅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그건 남이 만든 트렌드에 가서 노는 거지 자기가 만든 트렌드가 아니지 않나. 결국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건데 그 때 필요한 건 결국 사물을 보는 거시적이면서도 미시적인 시각인 것 같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전시를 보는 게 쓸데없어 보이는데 결국 스스로를 말하게 하는 건 그런 것들이다. 유행을 쫓는 게 아니라.

“한때 선정적인 이미지는 솔직히 억울한 부분이 있다”

케이블이기에 더 유니크하게 접근할 수 있는 면도 있었을까?
송창의:
케이블이란 새로운 필드에 오니 공중파보단 자유로우니 뭐가 막 나오더라. 아직 시도되지 않은 게 많은 상태에서 자체 제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니 깃발만 꼽으면 다 내 땅 같은 거다. 마치 서부 개척 시대에 온 것 같았다. (웃음) <막돼먹은 영애 씨>도 그냥 내가 다큐드라마라고 하면 첫 시도가 되는 거고, <스캔들>도 페이크 다큐라고 하면 우리 영역인 거고. 만약 내가 그 나이에 계속 공중파에 남아있었으면 25년 동안 하며 짜인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 자신할 수 없다. 아마 주위사람들도 부정적인 얘기만 했을 거다. 자기가 해봤는데 그건 안 되느니, 아니면 그렇게 하면 심의에 걸릴 거라는 식으로.

그 자유로움 때문에 좋게 말하면 ‘핫’하고 나쁘게 말하면 선정적인 작품들이 등장해 말 그대로 논란의 중심이 됐다.
송창의:
지금은 사람들이 잊은 것 같은데 3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당시 케이블 콘텐츠는 굉장히 야했다. 대부분의 채널이 11시 쯤 보면 요즘 유료 성인 채널에서나 할 에로물이 나왔다. tvN 프로그램이 선정적 프로그램의 1위로 꼽혔는데 사실 당시 케이블 콘텐츠 중 가장 착했다. 다른 채널은 영화 채널이거나 너무 작은 채널이라고 터치를 안 했는데 tvN은 개국 때부터 자체 제작한다느니 쇼니 예능이니 하니까 공중파의 잣대를 들이대더라. 동시간대 다른 케이블에선 에로가 나오는데 우리는 <하이에나>에서 소이현 나체 뒷모습이 나왔다고 난리가 났다. 우리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조금 억울한 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tvN의 칼라는 색다른 TV다. 새로운 걸 하자는.

분명 그런 마인드 때문에 tvN은 케이블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였는데 작년부터 tvN 2.0이란 모토를 내걸고 종합오락채널로 변화했다. 지금이야 성공적으로 리빌딩되었다고 보지만 당시에는 tvN의 색이 희미해진다는 느낌도 들었다.
송창의:
색다른 TV를 만들자는 마음은 2.0이 되든 뭐든 간에 변함이 없다. 다만 tvN을 1년 반 정도 꾸려가다 보니 새로우면서도 충분히 여러 타깃에 고루 먹히는 게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나 <막돼먹은 영애 씨>처럼. 그렇게 좀 더 폭넓은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싶었다. 또 19금은 조금 비효율적인 면이 있다. 우선 편성에 있어 밤이나 새벽에만 트니까 재방송을 못 돌리고, 광고주 역시 부정적 이미지의 프로그램에는 안 들어오려 하니까. 케이블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까막눈이 시간이 지나며 많이 배우고 변한 면이 있다.

작년에 했던 <180분>이나 현재 준비 중인 <선데이 텐> 같은 대형 버라이어티의 시도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송창의:
이런 규모감 있는 프로그램이 우리 채널을 제4의 공중파처럼 끌어가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게 광고주에게 판촉하기도 쉽고. 다만 자칫 tvN의 색깔을 잃어버릴 가능성에 대해선 조심하려고 한다. 혹여 공중파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나 <해피선데이>를 흉내 내는 게 될까봐 걱정도 되고. <선데이 텐> 안에 있는 개별 프로그램들이 tvN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 규모가 커져야지 그렇지 않으면 외화내빈이라고 본다. 다행히 <선데이 텐> 중 먼저 런칭한 ‘80일 만에 서울대 가기’는 우리 스타일로 나온 것 같은데 다른 프로그램들도 그러길 바란다.

사실 예능이라는 분야는 유독 부침이 심한데 요즘처럼 채널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런칭할 때마다 기대감만큼 부담도 크겠다.
송창의:
사실 프로그램은 잘 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리스크 관리다. 만약 외환위기가 왔다고, 공장에 불이 났다고 그냥 망했다고 말하면 기업하는 사람이 아니지. 망할 걸 대비하고 뭔가를 준비해야 하지 않나. 그걸 대체할 무언가를. 요즘 <롤러코스터>가 잘나간다고 하지만 언제나 상승만 하는 그래프는 없다. 이게 6, 7%까지 올라갈 수도 있지만 이미 이게 떨어질 걸 생각하고 그 다음 걸 준비해야 한다. 한 번 정점에 올랐을 때 죽어도 거기서 안 내려오려고 하면 거기서 망가지는 거다.

“PD들에게 선배를 똥으로 알라고 말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이 크리에이터의 입장인데 혹 크리에이터와 경영자의 역할 모델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킨 일은 없나.
송창의:
나는 그런 고민을 별로 안 했다. 나를 제작 전문가로 인정하고 내 입장에서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줬다. 나는 제작에 전념하고, 경영은 다른 대표가 도와줘서 그 부분에 있어 별다른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다.

그래도 이 모든 투자와 창작을 통한 선순환 모델에 대한 고민 혹은 큰 그림은 있을 텐데.
송창의:
최근 선순환 모델이 급속히 형성되고 있다. 작년에 비해 광고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예전에 한 달 광고비가 35억에서 40억이면 ‘똔똔’이라고 했다. 그 때 20~22억 정도 하다가 작년 말에 경기 안 좋아지면서 10억대로 떨어졌다. 그런데 요즘은 43억 정도다. 제작비가 많이 투입되어서 그렇지 이런 식으로 쭉 가면 tvN 자체만으로는 이익구조를 만들 거라고 본다.

그 부분에 있어 <롤러코스터> 같은 작품은 시청률만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인터넷에서의 화제성이라던가. 요즘 같은 시대에 시청률로 광고 가치를 따지는 게 맞는지 궁금하다.
송창의:
광고주는 가구 시청률을 보지도 않는다. CJ미디어의 경우 1, 2년 전부터 시청 연령에 따른 타깃 시청률을 따졌고, 사실 그조차 광고주들에겐 옛날이야기다. 그들은 광고 시청률을 본다. 다만 타깃 시청률과 광고 시청률이 비슷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정하는 거지. 그에 반해 가구 시청률과 광고 시청률은 차이가 엄청 난다.

CJ미디어가 tvN을 흡수 합병하면 대표직에서 물러난다. 그 이후에도 여태 말한 제작 철학이 tvN의 전통이 될 수 있을까.
송창의:
빨리 나가란 얘기인가. (웃음) 결국 문화와 전통이라는 것이 고리타분한 것 같지만 무시 못 할 브랜드 파워다. 그건 좋은 건 받아들이되 그렇지 못한 건 걸러내는 거다. 나는 PD들에게 선배를 똥으로 알라고 말한다. 선배를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건 좋지만 일에 있어서 ‘나는 언제 저 선배처럼 되나’라고 하는 건 만년 2등하겠다는 소리지. 크리에이티브에 존경이 어디 있나. 그보단 ‘나라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고 선배를 딛고, 송창의를 딛고 일어서야 하는 거다. 그런 걸 통해 항상 색다른 걸 시도하는 전통이 tvN에 남길 바란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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