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신인 때 일찍부터 주목받았고 꾸준한 성공을 거뒀다.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는 무슨 생각이었나.
현빈: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했다. 대학교에서도 연극 잘 하고 있다가 누가 영화 오디션을 보러 가자고 해서 갔다가 캐스팅이 됐고, 휴학하고 영화를 찍었다. 그 때는 그냥, 이제 연극 무대가 아닌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구나 생각했다. 연기를 하는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정도. 영화가 잘 됐으면 그냥 그렇게 생각했을 텐데 작품이 60% 정도 진행되다 엎어지니까 오기가 생겼다. 학교까지 쉬면서 나와 고생을 했는데 그대로 다시 돌아가는 게 싫었다. 그래서 이쪽 일에 대해 준비를 했다. 내가 휴학했던 만큼 보상을 받겠다 싶은 것도 있었고. (웃음) 솔직히 무대와는 또 다른 재미도 있었다.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성을 따라가고 싶진 않다”

물러나는 시기도 내가 정하겠다, 하는 성격인 것 같다.
현빈:
내가 원하지 않았다면 그냥 깨갱, 하고 들어왔을 거다. (웃음) 그 때 좋은 분들을 잘 만나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인복이 많은 게 늘 감사하다.

인복이 많으려면 결국 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줘야 하는 건데.
현빈:
그 분들이 내가 좋아하게끔 만들어줬던 거다. 그렇다고 “사랑합니다” 그런 표현을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웃음) 가끔씩이라도 안부 전화를 한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어떤 모임을 갖거나 하는 성격이 아니라 작품을 같이 했던 분들과 주로 계속 교류를 한다.

작품이 끝나고 쉬는 동안에는 어떻게 지내나.
현빈:
그 전의 것들을 모두 버린다. 배역에 관련된 것들을 버리고, 다음 작품 들어온 것에 대해서도 그때 돼서야 본다. 성격상 며칠만이라도 다른 쪽에 신경을 쓰면 괜히 제 일을 다 안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한 작품 하는 동안에는 다른 작품을 안 보고, 광고 촬영도 잘 안 하려고 한다. 그래서 문제가 좀 생기기도 하고. (웃음) 작품이 끝나면 그렇게 못 했던 것들을 하고, 다음 작품이 결정되면 그 준비를 한다. 운동이 필요하면 운동을, 피아노가 필요하면 피아노를.

‘버린다’는 면에서 기존에 쌓았던, 혹은 타고난 것들을 굳이 활용하지 않는다는 느낌도 있다. 외모적인 장점이 있는데 그걸 굳이 망가뜨리려고 하지는 않지만 드러내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다.
현빈:
사실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외모에 대해 신경을 쓴다면 미묘하게 체중조절을 하는 정도다. 안 믿기겠지만, <내 이름은 김삼순> 같은 경우는 1회 때 80kg이었다. 한 작품 끝나면 보통 4,5kg이 빠져 있기 때문에 미리 찌워놓고 시작했던 거다. 빠져도 76kg이 되게. (웃음) 그런 것 말고는 상황에 맞춰 근육 량 조절을 한다. 운동이 필요한 신이 있으면 체지방을 없애고 근육 량으로 무게를 채워놓고, <그들이 사는 세상> 같은 경우는 드라마 감독이란 직업상 운동을 챙겨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아예 운동을 하지 않았다.

본인의 얼굴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현빈:
다른 건 몰라도 옷이나 헤어스타일, 메이크업에 따라 많이 바뀌는 얼굴이다. 그건 좋다. 그리고 잘 생겼다던가 꽃미남이라던가 하는 말은, 들으면 감사하긴 한데 사실 별로 신경은 안 쓴다. 나보다 내 주변에 많지 않나. (웃음)

그러나 여전히 현빈이라는 배우의 스타성을 활용할 만한 기획이나 작품들도 들어올 텐데 굳이 그런 것들을 선택하려 하지 않는 것 같다.
현빈:
그런 작품들이 들어오긴 하는데 지금까지는 그냥 내 생각과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작품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거다. 물론 스타성이라는 걸 버릴 수는 없지만 그걸 따라가고 싶지도 않다.

“결과는 상관없이 마음에 드는 작품은 무조건 하고 본다”

그런 면에서 <친구, 우리들의 전설>(<친구>)은 욕먹을 줄 알면서도 시작하겠다고 했던 작품이다.
현빈:
그렇다. 그건 시작하기 전에 욕부터 들었다. (웃음) 발도 안 담갔는데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다. 주위에서는 다들 안 하면 좋겠다고 했다. 영화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고 선배들의 연기가 뛰어났기 때문에 내가 동수라는 인물을 잘 해내더라도 힘들 거라며 많이들 만류했는데 내가 그냥 고(Go)한 거다.

하지만 결국 후반으로 갈수록 영화에서 장동건이 연기한 동수와 다른 캐릭터를 구축했던 것 같다. 어떤 동수를 표현하고 싶었나.
현빈:
영화에는 없던 진숙이와의 멜로가 많이 추가되면서 좀 더 감성적인 동수를 만들었다. 싸우는 신에서도, 영화와 똑같은 앵글로 찍더라도 그 앞뒤 상황들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진숙이와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분위기가 완화됐다. 제일 큰 차별점은 동수만의 멜로였던 것 같다.

끝나고 보니 <친구>를 통해 얻은 건 무엇인가.
현빈:
2001년, 내가 데뷔도 하기 전인 학생 때 꿈꾸었던 작품을 곽경택 감독님 및 같은 스태프들과 함께 했다는 게 가장 컸다. 대본 리딩하는 장면부터 촬영해 모니터를 하면서 표정을 만들고 캐릭터를 쌓아가던 과정, 함께 일한 사람들 등 많은 것을 얻었다.

시작 전에는 그렇게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불투명한 상태였을 텐데 그래도 일단 지르는 성격인가.
현빈:
원래 그렇다. 내가 마음에 들면 그냥 한다. 일단 이 작품은 해보고 싶다는 판단이 서면 주변상황 잘 안 본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건 이후의 상황이고 먼저 선택해서 찍는다.

하지만 시장 안에서 연기를 하는 만큼 배우에게는 본인의 노력 못지않게 작품 운도 중요하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잘 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로 인해 예기치 못했던 길로 갈 수도 있다. 다음에 무엇을 할지 선택하는 데 대한 두려움은 없나?
현빈:
없다. 한참 잘못 가면 한참 다시 돌아오면 된다. 어차피 어떤 작품이든 결과는 알 수 없으니까. 그리고 내가 작품을 선택하고 가는 동안 주변 사람들이 상황을 체크하게 마련인데 계속 진행이 되고 그들이 오케이 사인을 내는 건 괜찮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제나 시청률이나 관객 수에 대해 “저는 그것과 무관합니다”라고 말하는 건 정말 결과가 내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결과가 나오기 전 카메라 앞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내 몫이다.

“계속 캐릭터 이름으로 불리는 것, 그거면 된다”

<나는 행복합니다>에서 일부러 연기 변신을 노린 건 아니라고 말한 것처럼, 변신에 대한 강박보다 매번 심상하게 다른 작업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빈:
주위에서 <나는 행복합니다> 이후 찍은 작품들을 보고 그 전에 비해 훨씬 연기가 늘었다는 말을 한다. 이 작품을 통해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사실 내가 매번 전작들을 버린다 해도 몸에 배어 있는 것을 없애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다행히 그럴 수 있게 해주시는 감독님들을 순차적으로 만나고 있는 것 같다. 윤종찬, 표민수, 곽경택, 김태용 감독님 모두 새로운 걸 원하신다. 기존에 내가 했던,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는 현빈의 연기 패턴을 원치 않으신다. 그래서 버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게 다 내 몸에서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잠깐 뒤쪽으로 밀어 둔다. 언젠가 나이가 들고 연기를 계속하다 보면 그것들 또한 잘 조합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김태용 감독과 함께 준비하고 있는 영화 <만추>는 60년대 처음 만들어진 작품이다. 원작은 쫓기는 청년과 모범수 여인의 멜로였는데 새롭게 연기하는 입장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나.
현빈:
시나리오가 재미있었고, 이 기본적인 스토리가 60년대에 짜인 거라면 참 세련된 작품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추>는 이번이 네 번째 리메이크인데 사실 앞서 만들어진 작품들은 일부러 안 보고 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혼자 준비하다가 그 직전에 볼 생각이다.

<색, 계>로 알려진 탕 웨이와 파트너가 되면서 그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겠지만 작품을 앞두고 실질적으로 가장 고민되는 지점은 뭔가.
현빈:
아무래도 언어다. 글로벌 프로젝트라 100% 영어로 진행되는데 <친구> 때 언어의 벽을 한 번 느껴봐서 부담이 더 크다. <친구>의 부산 사투리는 우리나라 말임에도 불구하고 언어에 신경을 쓰다 보니 감정이 후퇴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영어라는 전혀 다른 언어로 내가 얼마나 감정을 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이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 탕 웨이와 리딩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좀 해 봤는데 파트너는 물론 스태프들도 대부분 외국인이니까 그 벽을 없애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촬영 전까지 회화 코치와 계속 얘기를 하면서 언어에 대한 거리감을 없애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그리고 감독님과 의논한 바로는, 작품 속 내 캐릭터가 미국에 온지 3년밖에 안 되는 친구라 아주 네이티브 발음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일단 감정을 최우선으로 하기로 해서 마음이 약간은 편해졌다.

현빈이라는 이름보다 캐릭터의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캐릭터를 잘 수행해냈을 때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현빈이라는 이름에 대한 믿음이다. 아이러니하지 않나.
현빈:
사실 옛날에는 싫어했다. <아일랜드>가 끝나고 사람들이 나를 내 이름이 아니라 ‘국이’라고 부를 때는 그게 싫었다. 현빈이라는 이름이 불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굉장히 미련한 생각이었지. (웃음) 그런데 <내 이름은 김삼순>이 끝나고서도 나는 내 이름 대신 ‘삼식이’로 불렸다. 계속 그렇게 지내다 보니 점점 그렇게 불리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이고 행운인지 알게 됐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내 이름이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작품 속 캐릭터의 이름으로 불리는 게 훨씬 더 행복해졌다. 그거면 된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정리. 장경진 (thre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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