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연아신은 이번에도 또 우승했더라? 그런데 이번에는 넘어지는 실수를 저질렀다며?
응, 프리스케이팅에서 트리플 플립을 뛰다가 실수로 넘어졌어. 사실 실수라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거지만 기본적으로 김연아가 워낙 완벽한 연기를 했었기 때문에 현지 해설자도 의아해할 정도였지. 결국 김연아도 인간이라는 얘기도 있고.

네 입장에선 신성모독이겠다?
아무리 내가 연아신을 추종하더라도 종교의 자유는 인정해야지. 다만 2위와 13점 차로 우승했는데도 김연아가 위기니 정신 무장을 새로이 해야 한다느니 하는 얘기는 좀 안 했으면 좋겠어. 단순히 이번에도 우승을 해서가 아니라 정말 스포츠를 즐기고 스포츠 스타를 좋아한다면 진득하게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봐. 나는 그래서 사실 김연아의 점프 실수나 우승보다 그 소식에 묻힌 미셸 위 우승 소식이 더 반가워.

미셸 위! 야,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그렇지? 지금이야 대체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관심 없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3년 전만 해도 미셸 위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무한도전>, <일요일이 좋다>의 ‘X맨’에서 앞 다퉈 섭외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어. 그건 기억하지? 그냥 게스트 수준이 아니라 지금의 김연아처럼 ‘미셸 위 스페셜’로 프로그램이 꾸며질 정도였잖아.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 그런데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지 미셸 위가 왜 그렇게 인기가 높았는지 기억이 안 나.
물론 가장 큰 이유는 하인스 워드나 데니스 강처럼 한국계이면서 핏줄에 대한 자의식이 있는 외국 선수에 대한 관심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것도 자기 종목 안에서 스타가 됐을 때의 얘긴데 미셸 위는 당시 나이키를 비롯한 세계적 브랜드들이 주목하는 상품성 높은 스타였어. 우선 골프를 아주 잘했어. 미셸 위가 한국에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던 2006년은 최초로 여자골프 세계랭킹 시스템이 도입됐던 해이기도 해. 흔히 롤렉스 랭킹이라고 하는데 처음으로 공개된 이 세계랭킹에서 미셸 위는 3위를 기록했어. 1위는 당시 여자골프의 절대적 존재였던 아니카 소렌스탐이 차지했고, 2위는 포스트 소렌스탐의 선두 주자로 꼽히던 폴라 크리머였지. 물론 그 랭킹 자체가 최근 2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렌스탐이 몇 년 동안 쌓아온 업적과 미셸 위의 성적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 심지어 박세리 같은 경우엔 당시 2년 동안 성적이 부진해서 랭킹 90위를 기록했으니 그 랭킹이 선수의 클래스 모두를 보여준다고 할 수는 없었어. 하지만 확실한 건 롤렉스 랭킹이 생기는 시점에 이미 미셸 위는 2년 동안 미국 LPGA 투어 15개 대회에서 단 한 차례의 컷오프, 그러니까 탈락 없이 2번 준우승에 4회 ‘탑10’ 안에 들었다는 거야. 비록 우승은 없었지만 신예 중 가장 탁월한 성적을 거뒀던 거지. 또 다른 이유로는…

그건 나도 알겠다. 결국 키 크고 예뻐서 그런 거 아니야?
그게 아주 중요하지. 하지만 그것 역시 부족해. 미셸 위의 또 다른 강점은 드라이버 샷의 비거리야. 이렇게 말하면 잘 모르겠지? 지난번에 신지애 얘기할 때 말했지만 골프는 결국 홀에 공을 넣기까지 가장 적게 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야. 그런데 그토록 넓은 필드에서 치는 횟수를 줄이려면 당연히 처음에 멀리 보내는 게 중요할 거 아니야. 만약 홀까지 거리가 500m라면 100m씩 다섯 번 치는 것보다는 200m씩 두 번 치고 100m 한 번 치는 게 낫겠지? 이 때 멀리 보내기 위해서 쓰는 골프채가 드라이버라고 해서 헤드가 두꺼운 녀석이고, 나중에 정교하게 보낼 때 쓰는 골프채가 아이언이야. 그리고 비거리라는 건 날 비(飛) 자를 써서 말 그대로 공이 날아가는 거리야. 이제 대충 알겠지? 가장 멀리 칠 수 있는 골프채인 드라이버를 써서 최대한 공을 멀리 쳤을 때의 거리를 흔히 최대 비거리라고 해. 쉽게 말해 풀파워로 쳤을 때 얼마나 공을 얼마나 멀리 보낼 수 있는지 보는 거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경우 최대 비거리가 370야드 정도인데 미셸 위의 최대 비거리는 300야드 정도였어. 타이거 우즈 같은 남자 장타자만큼은 아니지만 웬만한 남자 선수들을 연상시킬 정도의 거리였지. 큰 키와 유연성을 이용해 아주 폭발적인 샷을 날렸던 거야. 소렌스탐도 잘 쳐야 260야드를 약간 상회할 정도였으니까 미셸 위가 얼마나 멀리 쳤는지 알겠지? 물론 시속 150㎞의 공을 던진다고 모두 뛰어난 투수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멀리 친다고 뛰어난 골퍼가 되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런 호쾌한 스윙과 엄청난 비거리는 골퍼로서의 큰 가능성인 동시에 그 자체로서도 매력을 끌만한 거였어.

그런데 왜 갑자기 그렇게 인기가 확 식었던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 물론 가장 큰 건 성적 부진이겠지.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야. 당시 미셸 위가 엄청난 인기를 얻은 배경에는 그 비거리 능력을 바탕으로 남자대회인 PGA 투어에 도전한다는 거였어. 우승에 도전한다는 게 아니라 마지막 4라운드까지 컷오프하지 않고 통과하겠다는 거야. 이게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1945년 베이브 자하리스 이후엔 소렌스탐을 비롯해서 아직까지 어떤 여자 선수도 PGA 투어 컷 통과를 하지 못했어. 그런데 미셸 위는 2004년 소니오픈이라는 남자 대회에서 겨우 1타차로 2라운드 컷오프를 당하면서 여자도 남자 대회를 통과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어. 그러면서 계속 도전했지. 그리고 그게 일종의 독이 됐어. 비판 여론이 생긴 거지. 스포츠 채널 ESPN에선 “미셀 위는 PGA 투어에 참여해선 안 된다”는 칼럼을 냈고, 가장 유명한 골프잡지인 골프다이제스트의 제이미 디아스라는 칼럼니스트는 “잠재력이나 상품성에만 초점을 맞춰선 안 된다”면서 “소렌스탐보다 장타를 치긴 했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고 평가했지. 쉽게 말해서 ‘거품론’이 나온 거야. 그러면서 LPGA 투어 성적 역시 신통치 않게 나오니 ‘옳다구나’하며 씹는 여론이 생겼어. 그리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녀의 한국 방문을 그토록 반가워하던 한국의 매스컴과 대중 역시 그녀에게 관심을 끊었고.

하지만 결국 프로 스포츠에서 성적이 안 나오면 비난을 받을 수 있는 거잖아.
맞는 말이야. 다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그토록 사람들이 비판하던 PGA 투어 도전은 미셸 위를 스타덤에 올려놓으며 사람들이 극찬하던 이유이기도 했다는 거야. 물론 개인적으로는 무리한 남자 대회 도전이 그녀의 성장을 더 방해했다고 봐. 하지만 단 몇 달 전만 해도 자신의 도전에 박수를 치던 사람들이 몇 번의 실패만으로 냉대하고 비판하는 걸 보면서 아직 십대였던 소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엇보다 마음의 평정이 중요한 골프라는 종목에 있어서 그런 마음고생이 그녀의 부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번 김연아의 실수에 있어서는 다행히 별다른 말이 없지만 지난 번 박태환의 부진에 대해서 CF가 어쩌고 방송 출연이 어쩌고 하는 걸 들으며 좀 속이 상했어. 그가 잘했기 때문에 누렸던 영광을 너무 쉽게 폄하하는 거 같아서. 물론 성적 부진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도 팬의 권리이자 의무야. 하지만 이기는 경기에 대해서만 응원하는 건 응원이 아니라고 봐. 어쨌든 이제 미셸 위도 첫 우승을 경험했으니 마음의 부담을 조금은 덜었겠지. 그렇다고 ‘미셸 위 짱’을 외치며 설레발치자는 건 아니야. 그냥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지켜봐주자는 거지.

너, 진짜 미셸 위에게 관심과 애정이 많구나. 원래 그렇게 주목하는 선수였어?
당연하지, 종씨잖아.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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