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소년은 1950년 처음 부산 땅을 밟았다. 중학교 새 학기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터진 6.25 전쟁의 피난처에서, 소년은 행상을 하며 4년을 보냈다. 그 시절 부산이라는 도시는 햇살이 눈부신 모래사장이나 시원한 파도소리가 아닌 치열한 생존의 터전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이하, PIFF) 김동호 집행위원장과 부산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는 공직 생활을 하면서 부산과는 무관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1995년, 김동호 위원장은 영화제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그것도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국제영화제를 만들겠다고 나선 무리를 이끄는 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문화부 관료 생활과 영화진흥공사 사장, 공륜 위원장을 지내며 늘 곁에 있었던 영화라는 일의 덩치가 상상을 초월하게 커졌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백이면 백,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말리는데다 자신의 사재까지 털어 넣어야 했던 PIFF는 어느덧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영화제가 되었다. 직접 게스트 초청에 나서는 위원장의 기운 센 입김은 세계적인 감독들이 부산을 찾게 만들었고, 그의 임기를 1년 남겨둔 올해 기무라 타쿠야, 조쉬 하트넷, 틸다 스윈튼 등의 스타들도 기꺼이 부산을 방문했다. 부산에서 15년을 보내며 “제2의 고향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부산 사람이 다 됐다”는 김동호 위원장은 사실 직접 영화를 만들고 싶은 꿈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영화에 대한 공부를 더 해야 돼요. 그래서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단편을 먼저 만들고 장편을 시작할 겁니다.”

해외의 영화제들을 돌며 무수히 많은 영화인들을 만나고, 매일같이 PIFF를 생각해온 김동호 위원장의 머리와 가슴은 아직도 영화로 가득하다. 그렇게 1년 365일 영화의 바다에 빠져있는 그가 자신의 깊은 심연 속에서 건저 올린 영화들은 무엇일까? 다음은 PIFF의 공동 집행위원장이기 이전에, 오랫동안 영화를 사랑해온 한 노신사가 고르고 고른 영화들이다.

1.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Why Has Bodhi-Dharma Left For The East?)
1989년 │ 배용균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배용균 감독은 원래 미술을 전공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 장면, 한 장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처리되어 있어요. 영화를 이루는 모든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원래 불교철학에 관심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수도승들이 수행하는 과정에 더 마음이 끌렸다고 할까요? 불교영화지만 삶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어서 좋아합니다.”

남인도의 왕자였던 달마는 부귀영화를 버리고 갖은 고생 끝에 당도한 중국의 동쪽에서 선에 통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노스님과 동자승, 젊은 스님이 각기 도에 이르는 과정을 담은 영화에는 영상을 도에 이르는 고행으로 여긴 감독의 집념이 발견된다. 각본, 제작, 미술, 촬영, 조명, 편집 등의 전 과정을 해내며 면벽수행에 가까우리만치 홀로 완성해낸 영화는 그 해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인 황금표범상을 받았다.

2. <만다라>
1981년 │ 임권택

“안성기 씨가 법운 스님으로, 전무송 씨가 지산 스님으로 나와서 득도에 이르는 것을 일종의 구원을 받는 과정으로 그려냈어요. 저는 이 영화를 임권택 감독의 대표작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서편제>나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취화선>, 최근작인 <천년학>까지 좋은 작품들이 참 많지만 득도하는 과정이 진솔하게 그려져 있어서 임 감독의 <만다라>를 특히 좋아합니다.”

<만다라>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처럼 구도에 이르는 길을 붙잡고 있지만 두 영화는 무척 다르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가 해탈의 경지를 경건하게 따라간다면, <만다라>는 파계와 참선을 넘나드는 두 스님의 모습으로 진정한 선이란 무엇인가 되묻는다. 술과 기행을 일삼는 지산과 결벽에 가까운 법운의 모습은 대조적이나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두 사람의 욕망 아닌 욕망의 무게는 경중을 가릴 수 없다.

3. <샤인>(Shine)
1996년 │ 스콧 힉스

“<샤인>은 데이빗 헬프갓이라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엄청난 음악적 재능을 지녔지만, 이를테면 고독한 천재이지요. 그래서 피아노를 연주할 때와는 다르게 현실에선 좌절하고 헤맵니다. 그러나 그런 방황을 거쳐 다시 천재로 되돌아가는 장면을 상당히 리얼하게 그려내면서 보는 이를 감동시키죠.”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의외로 혹은 대부분 힘든 삶을 산다. 특히 그 천재성이 예술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라흐마니노프의 연주에 있어서 그를 따를 연주자가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제프리 러쉬)은 성공가도를 달리다 정신분열로 십 년간 무대에서 사라진다. 대체 무엇이 이 천재를 절망의 심연으로 몰아넣었고, 또 다시 그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했을까? 영화 속에서 실제 헬프갓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듣는다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4. <피아니스트>(The Pianist)
2002년 │ 로만 폴란스키

“이 영화도 역시 스필만이라는 폴란드의 피아니스트가 등장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라디오 해설가인 스필만이 겪는 전쟁의 참화가 잘 묘사되어 있어요. 다소 길긴 하지만 (웃음)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아무래도 요즘 같은 때에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를 추천하는 것이 고민이 됐지만 칸 영화제에서 처음 본 순간부처 마음에 와 닿은 영화이기에 조심스럽게 추천해봅니다.”

전쟁으로 완전히 몰락한 바르샤바의 폐허들 틈에서 먹을 것만을 찾아 헤매는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애드리언 브로디). 비참한 그의 몰골은 인간의 빛을 잃어가지만 피아노를 앞에 둔 마지막 순간 고귀하게 빛난다. 영화는 실제 아우슈비츠에서 유년기를 보낸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게 2002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2003년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안겨줬다. 그러나 이후 최근까지 이어진 그의 도피생활을 보면 아름다운 영화를 만든 사람이라 해서 반드시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현실에 입맛이 쓰다.

5. <천국의 아이들>(The Children Of Heaven, Bacheha-Ye aseman)
1997년 │ 마지드 마지디

“<천국의 아이들>을 보면 돈을 많이 들여야만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다니요. 가난한 남매가 서로 번갈아가며 신는 신발을 냇가에 빠뜨렸다가, 마라톤에서 신발을 타내기 위해 3등을 하려고 애쓰게 되죠. 아이들의 그 노력의 과정이 참 감동적이었어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하얀 풍선> 등 국내에 소개된 대부분의 이란 영화들이 그러하듯 <천국의 아이들>도 착한 아이들과 못된 어른, 팍팍한 현실이 등장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고운 마음씨를 가진 아이들이 우리를 울리고, 웃긴다. 너무 착해서 뻔할 수도, 다른 이란 영화들과 확연히 드러나는 차별점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착해서 뻔하지만 진심이 담긴 그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전 세계적인 인기에 힘입어 이란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두 번째 시리즈까지 만들어졌다.

“가능하면 대학에서 미술사 수업을 받아보고 싶다”

여전히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또렷한 김동호 위원장은 사실 10회 때부터 PIFF의 집행위원장직 사퇴 의사를 밝혀왔다. 그러나 주변의 만류로 계속 임기를 이어오다, 내년 15회 PIFF를 끝으로 사퇴를 결정했다. 15년 동안 1년을 한 달 같이 치열하게 보내온 일과의 중심인 PIFF를 이제 한 해만 남겨두고 있는 그의 심정은 남다를 것 같다.

그러나 들뜬 목소리로 “일을 그만두게 되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밝히는 김동호 위원장에게 얼핏 소년의 모습이 비췄다고 하면 과장일까? “평소에 미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그림도 그려볼까 생각중입니다. 원래 서예를 하기도 했구요. 서예로 63년인가 62년에 국전에 입선도 했는데. (웃음) 가능하다면 대학에 다시 입학해서 미술사 수업을 받고 싶어요. 물론 학사편입으로요. (웃음)” 그가 없는 PIFF는 잘 그려지지 않지만 그림을 그리고 손자 같은 대학생들 틈에서 공부하고 있을 김동호 위원장의 모습도 전혀 낯설지 않다. 한 살배기 갓난아기 같던 영화제를 튼튼한 소년으로 키워낸 15년이라는 시간의 활력이 그에겐 아직도 넘치고 있기에.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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