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집단에 의해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첩보요원도 복수를 하고, 불쌍한 언니를 위해 쌍둥이 동생이 복수를 하기 위해 돌아오기도 한다. 그렇게 복수나 원한, 그리고 증오는 누군가에게 살아가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 어떤 드라마에게는 유일한 이야기이자 존재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두를 능가할 복수하는 기계들의 싸움은 김순옥 작가의 유혹 2부작, 을 잇는 에 등장한다. 여자는 원수의 집안에 복수를 하기 위해 결혼을 하고, 그 사실을 안 남편 또한 복수하기 위해 변신한다. 복수에 대항한 복수, 복수의 중첩구조는 상상 이상의 속도를 가졌고 지켜보는 이들을 숨차게 한다. 이 복수의 고리를 끊을 천사는 대체 언제 유혹을 시작하는 것일까? 아니 이 복수의 수레바퀴에 천사가 있기나 한 것일까? 최지은 기자와 김교석 TV 평론가가 말하는 이다. /편집자주

어린 시절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의 사장 우섭(한진희)에 의해 부모를 잃은 아란(이소연)은 복수를 위해 우섭의 아들 현우(한상진)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해 결혼한다. 아란의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해 우섭의 가정은 분열되고 회사도 아란의 손에 넘어오던 중 진실을 알아챈 현우는 아란이 일으킨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다. 아란은 가스폭발사고를 일으켜 현우를 죽이려 하지만 불길 속에서 도망친 현우는 전신 성형수술을 거쳐 매력적인 투자자 재성(배수빈)으로 변신해 아란에게 접근해 ‘복수에 대한 복수’를 노린다. 수많은 음모가 빠르게 겹쳐지는 와중에 1인 2역도 아닌 2인 1역까지 등장하는 설정, 그러나 언뜻 복잡해 보이는 SBS <천사의 유혹>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번에는, 남편이 돌아왔다.

‘막장’을 넘어 돌아온 천사는 대체 어떤 모습인가

<천사의 유혹>은 모든 면에서 김순옥 작가의 전작이었던 <아내의 유혹>의 연장선상에 있는 드라마다. <아내의 유혹>이 은재(장서희)의 남편, 남편의 애인, 시댁을 향한 복수를 원동력으로 전개되었다면 <천사의 유혹>은 아란의 복수로 시작되어 현우의 복수로 이야기의 추진력을 얻는다. 은재는 눈 밑에 점 하나를 찍는 것으로 완벽한 변신에 성공했지만 일일 드라마로서는 가히 파괴적인 화제성을 기록했던 전작을 등에 업고 미니시리즈로 제작된 <천사의 유혹>은 아예 배우를 바꾸어 가며 보다 스펙터클한 변신의 효과를 노린다. 수십억의 사업 자금이 구멍가게에서 물건 사듯 쉽게 오가고, 소생불가 진단이 내려졌던 현우가 강한 의지만으로 격렬한 운동까지 할 수 있게 되는 식의 비약 또한 <아내의 유혹>을 거친 시청자들에게는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복수의 뿌리를 부모님 대의 악연으로 가져가고 배경을 가구 회사로 옮기며 아란이 움직이는 돈의 규모를 약간 키웠다는 것 외에 <천사의 유혹>은 <아내의 유혹>으로부터 거의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역시 우섭의 가족에게 원한을 품은 아란의 정부 주승(김태현)이나 현우를 ‘키다리 아저씨’라 부르며 헌신적인 애정을 바치는 재희(홍수현)가 각자의 러닝메이트로 함께 뛰지만 이야기는 <아내의 유혹>의 전개를 고스란히 반복한다. 모든 등장인물은 기막힌 타이밍에 서로의 대화나 통화를 엿듣고 의심하며, 이들이 꾸미는 음모는 꼭 한 발씩 꼬리를 밟고 밟힌다. 휴대폰 문자 메시지 협박이나 사진 촬영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순간마다 등장하고, 재성으로 변신한 현우는 은재가 그랬듯 단시간 내에 외국어와 미술에 대한 지식을 쌓고 드럼을 배운 뒤 치명적인 매력으로 아란을 유혹한다.

익숙하게 시작되어, 식상하게 전개되는 복수

이처럼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기 위해 주인공들은 계속해서 숨거나 갇히거나 몰래 도망친다. 하지만 일일 드라마가 아닌 이상 이같은 소소한 사건사고만 가지고도 60분 미니시리즈를 채우는 것을 불가능하다. 결국 작가는 새로운 복수와 음모를 끊임없이 첨가한다. 아란에게 이용당하고 자살한 상모(이종혁)의 누나 상아(최지나)는 복수를 위해 재성과 손을 잡고, 아란이 재성에게 끌리는 것을 눈치 채고 분노한 주승 역시 아란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미리 깔려 있던 복선대로 곧 등장할 아란의 작은 아버지 부부, 아란이 어린 시절 잃어버린 여동생 역시 단순한 이야기의 실타래를 엉클어 놓기 위한 장치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아내의 유혹>에서 소희(채영인)가 했던 역할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면, <천사의 유혹>은 <아내의 유혹>으로부터 태어난 드라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신현우로부터 태어난 안재성 만큼도 변신에 성공하지 못했다.
글 최지은

SBS 은 김순옥 작가가 자신의 복수극을 자신만의 ‘작가주의’ 작품으로 인증하려는 작품처럼 보인다. 전작인 SBS 이 시청률 40%대의 고공행진을 하면서 지금까지 뭐라 정의하기 어려웠던 선정적이고 질 낮은 드라마들을 ‘막드’로 카테고리화 했다면, 은 그 ‘막드’들 사이에서 김순옥 작가만의 세계를 분명하게 보여주려 노력하는 것 같다. 성형, 복수, 팜므파탈 등 김순옥 작가의 키워드는 유효하고, 여기에 두 명의 배우가 현우(한상진/배수빈)를 연기하는 더블캐스팅으로 전작의 ‘점 하나 찍고 다른 사람인 척 하기’보다 업그레이드 된 설정으로 전작에서 지적된 부분을 메우려는 의지도 보인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결과는 김순옥 작가의 작품이 ‘막장’인 이유가 점 하나 찍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음이 밝혀졌을 뿐이다.

업그레이드 된 속도감, 그것이 전부다

김순옥 작가의 세계는 극단적인 과잉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랑했던 부인 아란에게 배신당한 현우(한상진)는 복수를 하기 위해 성형을 해 재성(배수빈)으로 변신하고, 진정한 변신을 위해 몇 개월 사이 운동, 드럼, 요리 등을 하루 종일 배우면서 주아란이 반할 수 있는 남자로 돌아온다. 복수는 이 비현실적인 설정을 가능케 하는 동인이다. ‘복수의, 복수를 위한, 복수에 의한’이라 해도 좋을 만큼 드라마에 흘러넘치는 복수심은 “인간은 복수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나름의 논리와 함께 등장인물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복수심은 감정 과잉의 대사들로 표현된다. “너는 내 울타리 안에 들어왔어, 날 미치도록 사랑하다 비참하게 버림받게 할 거야” 같은 대사들이 난무한다. 은 일말의 이성도 없이 오직 등장인물의 감정만으로 움직이고, 그 뜨거운 에너지로 시청자들이 그 과잉된 감정에 대해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전에 “그럴 만하다”며 수긍하게 하려는 것이 목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은 그 복수심이 만들어내는 현실적인 사건들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더 빠른 전개’를 내세우며 드라마 내적으로 균열을 일으킨다. 이 느려 보일 만큼 일일 드라마가 아닌 미니시리즈 은 미칠 듯한 속도를 보여준다. 모든 전화통화는 첫 번째 통화음이 끊기기 전에 연결되고, 대부분의 사건들은 클로즈업과 독백을 통해 직접적으로 설명된다. 그것도 모자라면 언제 어디서든 ‘엿보기’가 가능하고, 수신거리 제한 없는 도청까지 등장한다. 김순옥 작가가 햄릿과 자신의 작품을 자주 비유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은 영상물이라기보다 연극처럼 보이고, 배우들은 마치 변사처럼 보인다.

최소한의 타당성마저 지워낸 복수의 맨 얼굴

그래서 드라마가 경주마처럼 모두가 ‘복수’ 하나만 보고 달리는 사이, 작품의 모든 인과관계는 상식의 중력을 벗어난다. 현우가 깨어날 기미를 보이자 주승(김태현)은 병원 안내데스크로 뛰어가 “내과의사 남주승입니다. 면회를 제한해주세요”라고 부탁한다. 내과의사가, 그것도 다른 병원의 내과 의사가 왜 외상 입은 환자의 면회 문제를 결정하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그건 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은 은재(장서희)가 소희로 변하기 전까지의 수난기를 오랜 시간동안 보여주면서 은재의 복수라는 목적이 ‘막장’이란 ‘수단’에 최소한의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란의 복수의 원인마저 5분도 안 되는 회상으로 처리한 채 독백에 가까운 대사만 반복하는 에서는 그런 감정이입마저도 어렵다. 그래도 은 시청률이 나온다고 애써 자위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을 피해 SBS 에게 처참한 시청률을 안겨주고, 이 드라마를 놀려댈 젊은 시청자들을 피하면서 얻은 것이다. 이 쯤 되면 이 드라마에 해 줄 말은 하나뿐이다. 자꾸 그러면, 복수할 거야.
글 김교석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글. 김교석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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