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아이리스>는 지금 드라마 시장에서 ‘거대한’ 무엇이다. 200억 제작비와 이병헌을 비롯한 호화 캐스팅으로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은 이 드라마는 오랜만에 TV에서 보는 ‘블록버스터 드라마’이고, 첫 회부터 20%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드라마 업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아이리스>가 잘 되지 않으면 한국 드라마에 더 이상 이런 식으로 투자되는 드라마는 없을 거라는 이야기마저 들린다. 과연 <아이리스>가 ‘한국형 블록버스터 드라마’로서 어떤 전략을 취하고 있을까. <10 아시아>가 <아이리스>와 블록버스터 드라마의 전제조건들, 이런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심리, 그리고 <아이리스>에 관한 또 다른 대규모 이야기까지 ‘블록버스터급’으로 준비했다.

KBS <아이리스>를 지배하는 건 핵무기다. 김현준(이병헌)의 아버지는 핵무기를 연구하다 죽었고, NSS의 부국장(김영철)은 남북의 핵무기 개발을 막으려는 조직과 연관 돼 있으며, 남북 수뇌부는 핵무기로 자주국방을 꿈꾼다. 그리고 <아이리스>는 스스로 이런 힘을 가진 핵무기가 되고 싶어 한다. 남북 분단을 소재로 한 작품은 차고 넘친다. 매일 매일이 힘겨운 첩보원의 인생은 ‘미드’에서 여러 번 봤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200억 제작비라는 원자로와 이병헌이라는 농축 우라늄으로 모든 기시감을 무력화 시키려는 ‘블록버스터 드라마’라는 이름의 핵무기다. “영화 같은 드라마”를 표방한 <아이리스>는 몇 차례의 제작발표회를 통해 카 체이서와 총격 신이 가득한 프로모션 필름을 보여줬고, 양윤호, 김규태 감독은 “시청자가 내용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하는데 노력하겠다”며 이 블록버스터 드라마의 지향점을 보여줬다. 200억이 든 드라마에서 어려운 스토리를 전개할 수는 없다. <아이리스>는 내용의 신선함 대신 볼거리의 신선함, 정확히 말해 ‘TV’에서 ‘영화’같은 영상을 보여주는 신선함으로 승부한다.

문제는 스토리가 아닌 더 끝내주는 볼거리

실제로 전국 시청률 24.5%(TNS미디어코리아기준)로 출발해 7회에 기어이 30.7%를 기록한 <아이리스>의 무기는 압도적인 볼거리다. 1회 첫 시퀀스부터 헝가리에서의 총격전을 보여주고, 그 뒤에는 김현준과 진사우(정준호)의 사격 연습, 클럽에서의 싸움 등으로 크고 작은 액션들이 이어진다. 2회에서는 아예 드라마 중반부터 끝까지 대선후보 저격을 막기 위한 추격전과 경호, 저격이 쉴 새 없이 나온다. SBS <로비스트>처럼, 그동안 실패한 블록버스터 드라마는 볼거리에 비해 스토리가 부실하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문제는 스토리가 아니라 ‘더 끝내주는’ 볼거리라고 말한다. 단순한 총격전이 식상하면 인공위성과 CCTV까지 가세한 추격전을 보여주고, 미국이 질리면 일본과 유럽까지 훑으면 된다. <아이리스>가 총격전 이상으로 추격전의 비중이 높은 것은 흥미롭다. <본 얼티메이텀>이 멋지게 연출한 추격전이 얼마나 재밌는 볼거리가 될 수 있는지 입증한 것처럼, <아이리스>는 긴박한 추격전으로 TV에 새로운 볼거리를 끌고 들어온다. 영화라면 <본 얼티메이텀>의 아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에서 이런 영상은 현재 <아이리스>만 보여줄 수 있다.

여기에 이병헌은 <아이리스>의 또 하나의 스펙터클이 된다. 스크린에서 이병헌은 좋은 배우다. 하지만 TV에서 이병헌은 보기 힘든 배우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흔치 않은 볼거리다. 이병헌은 끊임없이 뛰고, 총 쏘고, 벗고, 고문당한다. 2회에서 김현준과 최승희(김태희)의 키스는 다른 드라마에서는 맥락 없는 억지스러운 장면으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아이리스>에서 중요한 건 ‘이병헌’과 ‘김태희’가 키스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리고 총을 들 때도 확연히 보이는 이병헌의 팔 근육 같은 것들은 그 순간의 화면들을 ‘진짜’로 만든다. 작품성에 대한 평가를 배제한다면, <아이리스>는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무엇인지 명확히 생각하고 만든 것처럼 보인다. 더 많은 제작비, 더 새로운 액션, 더 대단한 스타. 그건 지금 시청자들은 ‘블록버스터 드라마’에서 독창성이 아닌 ‘영화 같은’ 무엇을 TV에서 보는 것을 원한다는 선언일 수도 있다.

블록버스터와 웰메이드의 상관관계

그러나 볼거리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역설적으로 스토리는 더욱 중요해진다. 스토리의 완성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리스>의 제작발표회에서 KBS 드라마국 관계자는 “이런 드라마가 안 되면 우린 다 죽는다”라고 말했다. SBS는 <로비스트> 실패 이후 블록버스터 드라마 편성을 좀처럼 꺼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래서 <아이리스>는 가장 안전한 스토리를 선택한다. 남북관계, 통일, 삼각관계, 심지어는 김현준의 출생과 연관된 이야기도 나온다. <본 얼티메이텀>의 스타일과 <알리아스>나 <24>와 같은 첩보조직의 분위기를 빌려왔지만, <아이리스>의 정서적 분위기는 ‘까치’와 ‘엄지’가 등장하는 이현세 만화의 그것과 비슷하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못할 것 없는 초인이자 모든 여자의 사랑을 받는 고독한 마초고, 여자는 일편단심 남자만을 바라본다.

물론 이건 진부하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아이리스>는 그들이 생각하는 2009년형 블록버스터 드라마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쉬리>에서 남북의 첩보원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그 자체로 관객들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아이리스>에서 김현준과 김선화(김소연)의 관계에는 이념 갈등이 배제돼 있다. 대신 그들은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다는 개인적인 상실감으로 괴로워한다. 또한 NSS는 스스로를 ‘회사’라 말하고, 사건의 배후에는 어떤 조직의 음모가 개입돼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이리스> 1회에서 최승희는 걸프전에 대해 음모론을 제기한다. 이미 남북 관계의 긴장감이 시청자의 시선을 모으기엔 식상한 소재가 된 시대에, <아이리스>는 그것을 약간 다른 방식으로 소화한다. 영화와 똑같지는 않지만 ‘영화만큼’의 볼거리, 익숙하지만, 너무 식상하지 않을 만큼의 설정. <아이리스>는 ‘블록버스터’가 ‘웰메이드’와는 다른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리스>의 전략, 어디까지 유효할까

하지만 철저하게 블록버스터에 걸맞은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아이리스>의 전략은 작품의 완성도에 문제를 일으킨다. 스토리 전개보다 10분 이상의 추격전이 더 중요한 이 드라마에서 스토리를 전개할 시간은 많지 않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복잡한 남북 정세와 그 뒤의 음모론까지 설명해야 한다. 따라서 설정상의 디테일이 대거 생략된다. 킬러 빅(탑)은 호텔에 있는 북측 요인을 죽일 때 다양한 방식으로 보디가드들을 해치우며 볼거리를 선사한다. 하지만 정작 <아이리스>는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최승희는 김현준에게 “이젠 그러고 싶어도(일을 관두고 싶어도) 안 된다”고 말하지만, 김현준이 죽은 뒤 회사를 관둔다. NSS가 왜 최승희를 쉽게 놔줬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래서 <아이리스>는 <알리아스>나 <본 얼티메이텀>보다 조성모를 필두로한 ‘블록버스터 뮤직비디오’와 비슷하다. 7회에서 노래와 함께 김현준이 최승희를 찾아 헤매는 장면은 ‘To heaven’의 한 장면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김현준과 최승희의 ‘일본 멜로’ 이후 곧바로 NSS에서 새로운 사건이 시작되는 것은 <아이리스>의 전개 방식을 보여준다. ‘TV에서 보지 못했던’ 볼거리가 드라마를 끌고 나가고, 스토리는 볼거리를 잇기 위한 실마리다. ‘블록버스터 뮤직비디오’가 당대에 TV에서 보기 힘든 액션과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것처럼, <아이리스>도 같은 방식으로 시청자들을 모은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좀 더 과감해도 좋았을지 모른다. <아이리스>의 시청률은 첫 회 이후 20% 중후반에 머무르다 7회에 30%를 넘겼다. 물론 이것도 높은 수치다. 그러나 더 이상 급격하게 치고 올라가지 않는 시청률은 이 드라마의 대중적인 ‘규모’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해외 로케이션과 톱스타 캐스팅, 그리고 영화의 다운그레이드 버전 같은 볼거리로만 잡을 수 있는 시청자의 수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드라마는 후반으로 갈수록 제작 일정이 촉박해져 완성도를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아이리스>도 시청자의 반응을 위해 13회까지만 사전제작을 했다. 시간은 점점 부족하고, 갈수록 스토리의 중요성은 커진다. <아이리스>가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이 모든 난관을 통과할 수 있을까. MBC <태왕사신기> 이후, 드라마의 내용 이상으로 드라마 자체의 운명이 궁금해지는 드라마가 등장했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