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이 힘들죠? 세경(신세경) 씨가 워낙 속이 깊어 내색을 안 해 그렇지 이래저래 얼마나 고단할지, 살림 수십 년 해본 제가 누구보다 잘 압니다. 세경 씨 자매를 보태지 않아도 주인집 식구만 해도 여섯인데다가 무려 2층 단독 주택이잖아요. 방 여섯 칸에 마루가 둘, 아래 위 화장실도 둘 일 테니 그 많은 청소에, 식구 수대로 매일 내놓는 속옷이며 수건만 해도 장난이 아닐 걸요. 빨래야 세탁기가 한다고 쳐도 그거 널고 개는 것도 큰일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홀로되신 할아버지(이순재)부터 고등학생 손자(윤시윤)까지 남자가 넷씩이나 되니 오죽 뒷바라지 할 일이 많겠어요. 보나 안 보나 새벽부터 오밤중까지 엉덩이 한번 붙일 겨를 없이 동동거려야 할 걸요. 제 말이 맞죠? 또 끼니때마다 식사 준비는 물론 설거지는 얼마나 많겠어요. 그 치다꺼리 다 하느라 한 번도 제대로 앉아 밥을 먹지 못하는 세경 씨가 마음이 쓰여 자꾸 목이 메더라고요.

정말이지 무관심한 어른들에게 질려 버렸어요

그래서 저는 이집 어른들이 좀 얄밉습니다. 아니 솔직히 얄미운 정도가 아니라 경우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 정도 규모의 살림이라면 돈을 넉넉히 더 준다면 모를까, 일하러 오겠다고 나서는 도우미가 드물지 싶거든요. 세경 씨는 모르겠지만 전에 로또에 당첨되어 일을 그만두신 도우미 아주머니가 환호성을 지르며 떠나는 걸 봤어요. 로또 당첨이 기쁘기도 했겠지만 서운타는 말 한 마디 없이 당장 일을 내팽개치고 나가는 걸 보면 그만큼 지긋지긋 하셨던 거죠. 그러니 이 집 어른들이 오갈 데 없다는 세경 씨 자매를 인심 쓰는 양 받아줬지만 솔직히 말해 복덩이가 제 발로 굴러들어온 격 아니냐고요. 손 끝 야무지지요, 정직하지요, 영리해서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깨우치지요, 세경 씨 같은 도우미가 세상천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옛날, 밥 먹기 어렵던 시절 시골에서야 입 하나 줄일 심산에 딸아이를 도시로 식모살이를 보냈다지만 지금은 그런 시절이 아니잖아요. 기숙사에 야학까지 딸린 공장들이 생기면서 입주해서 살림 돕는 처자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근자에 이르러서는 금싸라기보다 더 귀한 존재가 세경 씨 같은 야무진 입주 도우미일 걸요. 동생 신애(서신애) 하나 데리고 있는 게 흠이긴 해도 신애 정도로 착한 아이면 그다지 흠이랄 것도 없잖아요.

그런데 그 가여운 신애에게 책가방 하나 사주지 않는 주인집 가족들의 무심함이 저는 속상합니다. 인색해서도 아니고 검소해서도 아니고, 그저 남의 일이기에 관심이 없는 거거든요. 이웃 청년 쥴리엔(쥴리엔강)은 단박에 알아 보드만 이 집 식구들은 왜 눈치조차 채지 못하는지 원. 한껏 차려 입은 해리(진지희)와 함께 학교에 가겠다며 나서는 신애의 초라한 검은 서류가방이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게 도대체 이해가 안 됩니다. 하기야 일일이 지적하려 들면 한도 끝도 없죠 뭐. 무심한 걸로 치면 명색이 선생이면서 학업 중단한 세경 씨를 아랑곳 않는 안주인 이 선생(오현경)이 최강이 아닐는지요. 일찌감치 퇴근해 들어와 저녁나절이나 주말에 인터넷 강의라도 듣게 배려해주면 좀 좋으냐고요. 철부지 준혁(윤시윤)이만 해도 세경 씨를 생각해 넌지시 참고서들을 내놓던데 알만한 어른이 왜 그리 무심할까요. 그러나 이 선생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무심해서일 뿐이니 언젠가 깨닫고 마음을 써줄 때까지 진득하니 기다려볼 밖에요.

지훈 씨도, 준혁이도 세경 씨 짝으로 환영입니다

그런데 요즘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슬슬 청춘남녀들 사이에 러브라인이 오가는 기색인지라 오지랖 넓은 저도 마음이 뒤숭숭하네요. 순전히 세경 씨만 생각하면 지훈(최다니엘) 씨와 세경 씨가 맺어지면 제일 좋겠어요. 분명 이 선생이 동생 짝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반대를 하고 나설 테지만, 그리고 겉으로는 툴툴거리며 반항하는 척 해도 누나 말 은근히 잘 듣는 지훈 씨인 터 파란이 예고되긴 하지만, 그래도 지훈 씨만큼 든든한 울타리도 드무니까요. 어떻게든 세경 씨가 사회가 원하는 인물로 성장하게끔 곁에서 도와주지 싶어서요. 세경 씨가 가정형편이 문제지 사람 자체로야 어디 부족할 게 없는 처자잖아요. 저로서는 지훈 씨 같은 사윗감도 반갑고, 세경 씨 같은 며느릿감은 더더욱 대환영인 걸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준혁이와 짝이 된다고 해도 나쁘지 않아요. 지금은 말썽꾸러기이지만 은근히 속 깊고 정 많은 아이이니 세경 씨가 잘 보듬고 이끌어주면 반듯한 인물로 잘 자라지 않을까요? 세경 씨의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만으로도 어째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제가 좀 주책이지요?

그러나 이 편지는 아마 부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린 아가씨 붙들고 집안 어른들 흠 잡는 건 점잖지 못한 일이라서 말이죠. 다만 세경 씨에게 이 말 한 마디만은 전하고 싶어요. 지금처럼만, 꼭 지금처럼 진실 되게, 열심히 살다보면 반드시 좋은 날들이 올 거라는 사실, 부디 잊지 말아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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