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의 여배우가 제 얼굴을 갖는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열네 살, 중학교 1학년 때 데뷔를 했다면 더욱 그렇다. 수많은 소녀들은 연예인이 됨과 동시에 터지는 플래시 세례와 ‘카메라 마사지’, 쏟아지는 기사와 댓글 사이에서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말해도 되는 것과 말하면 안 되는 것이 나뉘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솔직해지기를 두려워하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리거나 인형이 되고 마는 세계. 박신혜는 그 곳에서 7년을 보냈다. 그리고 여전히 박신혜는 7년 전의 얼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제 얼굴을 잃지 않고 자라난 아이

다니던 공부방의 선생님이 오디션에 보낸 사진을 인연으로 2003년 이승환의 뮤직비디오 ‘사랑하나요’와 ‘꽃’에 출연했을 때 박신혜는 연기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신인이었지만 눈 밝은 감독들은 곧 이 흔치 않은 분위기의 소녀를 알아보았다. SBS <천국의 계단>에서 최지우의 아역으로 박신혜를 발탁했던 이장수 감독은 <천국의 나무>의 여주인공으로 고등학생이었던 박신혜를 또다시 선택했고, 황인뢰 감독은 SBS <비천무>의 현장에서 눈여겨보았던 박신혜에게 MBC <궁S>의 귀족 소녀 신세령 역을 맡겼다. <베스트극장> ‘어느 멋진 날’의 시각 장애인 소녀와 주말 드라마 <깍두기>의 사연 많은 주인공 역시 아직 십대였던 박신혜를 거쳐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제 나이를 훌쩍 뛰어넘어 순수하면서도 성숙한 구원의 여인막?거칠고 외로운 남자들의 안식처가 되었던 드라마에서와 달리 카메라 밖에서의 박신혜는 오로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런 성장의 과정을 거쳤다. 이승환이 대표로 있는 드림 팩토리에서 데뷔 초부터 올 봄까지 대부분의 활동기를 보낸 박신혜는 거대 기획사의 경쟁 시스템에 치이거나 수익에 대한 부담을 갖는 대신 콘서트 무대에서 자유롭게 노래하고 춤추며 ‘드림 팩토리의 아이’로 자랐다. 나무가 제대로 자라기 위해서는 적당한 양의 물과 거름과 빛이 필요하듯 찬찬히 좋은 작품을 고르고 연기를 하면서 학교에 다니고 기다림이 길어지는 촬영장에서는 매니저나 스태프 ‘오빠’들과 캐치볼을 하며 보낸 시간들은 조금씩 쌓여 밝고 건강한 스물한 살의 박신혜를 길러냈다.

네버랜드를 떠나온 그 이후

그래서 <깍두기> 이후 1년 반 만에 돌아온 박신혜가 ‘성인’ 연기에 대한 강박 대신 지금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인 SBS <미남이시네요>의 고미남 역을 선택했다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90년대의 <학교> 시리즈 이후 주연 배우들의 평균 연령이 가장 낮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이십대 초반의 배우들을 과감히 전면배치한 <미남이시네요>에서 박신혜는 장근석과 함께 어리지만 미숙하지 않은 연기로 작품의 중심을 잡는다.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으로 눈밭 위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던 커다란 눈망울은 <미남이시네요>에서 ‘태경이 형님’과 ‘신우 형’을 강아지처럼 따르는 남장 소녀 고미남의 해맑은 표정에도 그대로 살아나고, “군대 간 사촌오빠들로부터 떠올린” 군대식 말투는 남장 여자 캐릭터에 대한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고미남이라는 ‘인간’을 완성시킨다. <미남이시네요>의 미녀가 속세와 차단된 수녀원을 나와 쌍둥이 오빠 고미남을 대신해 비밀과 가십, 계산과 계약으로 움직이는 연예계에서 살아 나가는 바탕에 진심과 성실함이 있다면 네버랜드와도 같았던 ‘드림’ 팩토리를 나와 본격적인 시장에 뛰어든 박신혜 역시 같은 열쇠를 지니고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 같지만 어떤 세계에서는 좀처럼 유지하기 힘든 태도라면 그것은 또다른 매력이 된다. 그래서 앞으로 이 햇살 같은 소녀가 갈 길이 더욱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전에 미리 말해두자면, 잘 자라줘서 정말 고맙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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