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소중하다. 하루 하루를 사는 생활인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창작자에게는 텍스트의 보고다. 궁상맞다고 할지라도 그 안에는 공감 가는 에피소드가 있고 얼마든지 감동적인 상황극이 있다. 그리고 그 창작자가 김병욱 감독이라면 필시 치밀하리만치 우리와 닮은 이들이 에피소드마다 살아있을 것이다. 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캐릭터들로 가득 찼던 <순풍산부인과>를 지나 웃다가 짠해 지는 가족들이 줄줄이 등장했던 <똑바로 살아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까지, 비숫하다 생각했다 늘 다른 모습에 웃다가 울었던 가족들과 만나면서 김병욱 월드는 세워졌다. 그리고 이제는 김병욱 월드를 다 알았다고 말할 때쯤 그는 또 다른 가족들과 함께 돌아왔다. 분명 전처럼 웃는 대신 눈물 나는 순간들이 더 많아진 일상 소동극을 보고 있으면 김병욱 월드의 변화가 느껴진다. 우리의 일상을 그 어느 누구보다 치밀하게 재련해내는 김병욱의 변화를 조지영, 윤이나 TV평론가가 살펴보았다. /편집자주

MBC <지붕뚫고 하이킥>은 <거침없이 하이킥>과 한 핏줄임을 숨기지 않는다. 1화, 산 속의 세경(신세경)과 신애(서신애)를 세상으로 불러낸 것은 따지고 보면 <거침없이 하이킥>의 민호(김혜성)였다. (심지어 민호 옆에는 형욱(<똑바로 살아라> 의 노형욱)이도 있었다) 가족의 구도 역시, 유사하다. 미혼의 시동생 대신 미혼의 처남이 있다. 뭔가 덜 떨어지는 아들 대신 사위가 있고, 집안의 가장 무서운 사람이 며느리가 아니라 딸이라는 점이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의 권력 관계도 <거침없이 하이킥>처럼 서로 물고 물리고 있다. 학교가 주요 무대 중 하나로 등장하는 것도 비슷하고, 과도하지 않게 웃음을 빗어내는 솜씨도 여전하다. 다만,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부분은 현실 인식이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상황은, 그래서 더 깊어졌다. 가족 내부의 갈등과 역학 관계에 집중한 전작에 비해, <지붕 뚫고 하이킥>의 속내는 조금 복잡하다. 그 외연 역시 넓어졌다. 하이킥의 발차기는, ‘지금, 여기의 한국 사회’의 지붕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걸 가졌지만 모든 것이 아쉬운 사람들

세경과 신애 자매는,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소박한 관찰자이면서, 그 스스로 계층과 빈곤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들이 산 속에 숨어든 것도, 다시 내려온 것도 모두 아버지의 채무관계 때문이었고 세경이 어려움을 무릅 쓰고 식모살이를 감내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신애의 취학 문제 때문이었다. 양상은 조금 다르지만, 해리네 집도 교육문제가 큰 화두다. 공부에 관심없는 아들 준혁(윤시윤)과 과외선생 정음(황정음)은 앙숙이고, 성질 사나운 꼬마 해리(진지희)도 계산기 없이는 간단한 덧셈도 풀지 못한다. 집안의 경제권이 장인(이순재)에게 있기 때문에, 사위 보석(정보석)의 처가살이는 더욱 애처롭다. 그 정도와 양상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먹고 살고 가르치는 문제는 언제나 항상 <지붕뚫고 하이킥>을 관통하는 주제다.

노골적으로, 가진 것 없는 세경/신애 자매를 무시하고, 그들이 가진 하나를 뺏어 스스로 가진 아홉 개를 채우려는 해리의 욕심은, 거의 꿀밤(과 그로 인한 통곡)으로 진압되지만, 그녀의 조그마한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독설은 종종 섬뜩하다. 돈으로 결국 구분 되어지는 계급사회는, 기실 우리가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고, 그 현실을 콩알만한 꼬맹이도 금방 눈치챌 수 있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욕심을 채우는 해리는 늘 변비에 애를 태운다. 욕심의 속도에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이 작은 신체의 메타포도 예사롭지 않다.

하이킥 월드를 움직이는 힘

그러니, 집도 절도 없는 세경과 신애 자매는, 모자란 것이 하나도 없는 해리네 집안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TV도 콜라도 없는 세상에서 살다 온 신애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막상 이 집안 사람들도 하나 같이 결핍감에 시달리면서 살기는 마찬가지다. ‘갖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과 ‘남의 집 잔디가 더욱 푸르러 보이는’ 인지상정 때문이다. 번듯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순재는 어느 새 사라져버린 젊음이 아쉽고, 현경은 일찍 가버린 어머니가 아쉽고, 해리는 쾌변이 아쉽다. 거의 천재나 다름없는 지훈(최다니엘) 역시, 폐소공포증이 있다. 준혁의 과외선생인, 매력적인 여대생 정음은 학벌이 아쉽다. 졸지에 ‘서울대생 코스프레’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세상, 모순에 가득차서 돌아가는 이 세계의 원리 속에, <지붕뚫고 하이킥>은 작동한다. 정음은 쇼윈도우의 신상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고, 순재의 방귀도 멈추지 않을 것이며, 보석의 맹한 행동도 계속 되고, 세경의 빈곤도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극복할 수 없는 약점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거두기는 쉽지 않다. 이 캐릭터들의 사랑스러움은, 단단하게 땅을 딛고 서있는 현실성과 개연성을 통해서 비롯된다. 웃기기 위해, 울리기 위해 혹은 누가 누군가의 인생을 요약하거나 엿보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는 한 명도 없다. 스스로의 성격과 고집대로 타인과 세계에 부딪쳐서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이 여기 있다. 어느 새 준혁의 뚱한 표정에, 지훈의 부족한 EQ에도, 고단한 세경의 삶, 어수선한 정음의 일상에도 우연한, 사랑의 순간들이 찾아올 것 같은 기미가 보인다. 인생의 약점은 사라지지 않고, 사고는 반복되고, 볕들 날은 멀어 보이는 하루하루에, 바로 그런,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들이 섬광처럼 나타난다. 그리하여, 낙관을 품은 비관주의 혹은 비관적 낙관주의의 기묘한 매력이, 여전히 이 ‘하이킥 월드’에는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글 조지영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인생에 대한 찰리 채플린의 이 말은 MBC <지붕 뚫고 하이킥>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시트콤이라는 장르의 희극적인 특성에 감춰져 있었지만 지금까지의 ‘김병욱 월드’ 속 작품들이 보여주고자 한 삶의 진실은, 인생은 결국 비극이라는 것이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그 비극의 연원을 첫 회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세경(신세경), 신애(서신애) 자매를 아버지와 떨어뜨려 놓는 것, 이들이 거의 거지나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모든 것이 가득’한 서울에 던져지는 것, 그렇게 21세기 서울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를 ‘생존 투쟁’으로 만드는 ‘돈’이 바로 그것이다.

21세기 서울, 돈이 만드는 풍경

김병욱 감독의 전작 <거침없이 하이킥>에 비해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는 식탁이나 거실로 가족이 모여드는 풍경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잠깐 밥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가족들이 모일 시간은 거의 없고, 이들은 각자 따로 ‘집 밖’에서 살아간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며느리 해미(박해미)의 도전을 받았지만 겉으로는 ‘권위 있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로서의 모습을 지켜가려는 노력을 보이기는 했던 순재(이순재)는,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는 무능력한 보석(정보석)에게 화를 낼 때를 제외하고는 가족들의 일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처럼 <지붕 뚫고 하이킥> 속 인물들의 관계는 가족 혹은 유사가족 형태로 얽혀 있기보다 돈을 매개로 해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중심 에피소드들은 자연스럽게 가족 간의 갈등이 아닌 돈이나 권력의 상하관계 속에서 진행된다. 가족을 중심으로 해 그 바깥으로 이야기가 확대되어 가던 과거와는 달리,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가진 개인들의 부딪힘이 극을 끌어가는 갈등을 만들어낸다.

이 개인과 개인이 만나고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지붕 뚫고 하이킥>의 이야기는 ‘상황’을 만드는 집, 학교, 병원이라는 공간 밖으로 나가 ‘21세기 서울’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으로 확대된다. 신애가 해리(진지희)의 꾐에 빠져 떡볶이를 먹은 뒤 그 돈을 갚지 못해 떡볶이 집에 잡혀 있는 에피소드와 카드빚을 갚지 못해 학벌을 속이게 되는 정음의 이야기 등 등장인물들이 맞닥뜨리는 불행은 모든 것이 가득하지만 그 풍요가 도리어 결핍과 차별을 만드는 ‘21세기 서울’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지붕 뚫고 하이킥>은 ‘바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되는 만큼 불편하다. 멀리서 보면 희극인 ‘남의 인생’을 끌어다 눈앞으로 가져다 놓는 순간, <지붕 뚫고 하이킥>이 보여주는 인생만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도 비극인 것을 인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중산층과 서민’을 말하지만 ‘중간’은 사라진 시대, 어린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돈과 권력에 지배당하는 시대 속에서, 세경과 신애 자매처럼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말이다.

21세기 서울, 인간이 만드는 풍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붕 뚫고 하이킥>에는 그런 비극의 인생을 조금은 아름다운 것으로 만드는 순간들이 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떠오르는 두 딸을 서울로 도망시키는 아버지의 거짓말이나, 미달이의 업그레이드 판을 넘어 ‘요즘 아이들’이 보여주는 잔인함의 화신 같던 해리가 신애 대신 멸치 똥을 따게 만드는 ‘애기똥 동화’, 처음으로 세경자매에게 손 내밀어준 줄리엔(줄리엔 강)이 서울의 한강을 배경으로 펼치는 ‘마법의 순간’은 <지붕 뚫고 하이킥>이 보여주는 ‘21세기 서울’이 ‘엎어지면 코 베어 가는’ 두려운 곳만이 아님을 알려준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는 ‘21세기 서울’의 두 가지 얼굴이 공존한다. 그것은 성북동 양옥 2층집의 가족과 가회동 한옥집의 청춘 공동체이며, 남산에서 내려다본 수많은 불빛 속에서 잠드는 사람들과, 어둠과 추위 속에 잠드는 사람들이다. 돈이 만드는 비극의 순간과 그 비극을 ‘인간의 마음’으로 감내하는 순간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어떤 에피소드도 그저 한바탕 크게 웃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끝 맛을 씁쓸하게 남기는 것은 그 두 가지 순간이 주는 극단의 감정이 함께 녹아있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만 부끄럽고, 귀찮지만 가엾고, 짜증나지만 신경 쓰이고, 고맙지만 미안한. 그리하여 희극이거나, 비극이거나. <지붕 뚫고 하이킥>에는 이 모두를 읽어낼 수 있는 ‘지금, 여기’ 현재형의 이야기가 있다. 가까이서 비극을 보든, 멀리서 희극을 보든, 인물들의 관계에서 권력관계를 읽든, 러브라인을 찾든, “모든 것이 가득해 결국 텅 비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 시대에 이런 시트콤이 ‘있다’는 것. 어쩌면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살아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있으므로 ‘볼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닐까.
글 윤이나

글. 조지영 (TV평론가)
글. 윤이나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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