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석 : 힙합을 좋아하는 댄서였다. 1990년대 최고의 스타 중 한 사람이었다. 회사의 가수들에는 좋은 형이다. 소속 가수의 팬들에게는 직접 회사 상황을 설명하는 ‘양싸’다. 그래서 언제나 든든한 ‘패밀리’ 안에서 행복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더 이상 ‘큰 형’일수만은 없게 됐다.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빅 3’중 한 곳의 수장이 된 YG 패밀리의 맏형. 새로운 위치와 더 많은 사건 속에서, 양현석은 무엇을 보여주게 될까.

박남정과 친구들 : 양현석이 가수 데뷔 전 몸담았던 댄스팀. 학교 소풍에서 친구가 추는 로보트 춤과 허비 행콕의 ‘Rock it’ 무대를 본 뒤 10대 시절 춤과 흑인 음악에 빠진 그는 신림동의 헬스클럽에서 춤추는 아이들의 모임이 있다는 걸 알고 합류, 댄서를 하기 시작한다. 당시 양현석은 “다른 사람들이 열 시간 추는 동안 나는 한 시간을 추는 스타일이었는데, 대신 정말 즐기고 느끼면서 춤을 췄다. 한 동작을 해도 좀 더 끈적끈적한 느낌을 내려고 노력했다”고. 또한 그는 그 때부터 힙합을 하고 싶어 해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back home’의 안무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선보인다. 양현석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당시 ‘Comeback home’을 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서태지와 아이들 : 서태지, 양현석, 이주노의 세 사람이 결성한 그룹. 잘 알려진 대로 서태지에게 150만원을 받고 춤을 가르쳐 주기로 했던 양현석이 ‘난 알아요’를 듣고 함께 하자고 제안해 결성됐다. ‘난 알아요’의 “요요!”는 양현석이 카세트 레코더로 리믹스한 부분. 양현석은 그룹에서 안무와 ‘이 밤이 깊어가지만’, ‘널 지우려 해’의 작사를 비롯, 스타일리스트의 역할을 겸했다. ‘난 알아요’ 시절의 옷은 서태지와 함께 이태원에서 구입한 옷들을 리폼한 것으로, 음악, 춤, 패션이 함께 하는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의 특성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 양현석은 “내가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는 것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다. 내가 최고의 제작자가 됐을 때 사람들이 왜 예전의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단했었는가라는 것만 느껴줄 수 있다면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페리 : YG의 프로듀서. 테디G-드래곤이 프로듀서로 부상하기 전까지 YG의 음반 대부분을 프로듀싱했다. 양현석은 자신이 지누션의 ‘가솔린’을 작곡하는데 7개월이 걸린데 반해 페리가 2-3일 사이에 더 좋은 곡을 만드는 걸 보고 작곡을 포기했다. 이후 그는 음반 제작 과정을 알기 위해 사운드 엔지니어링 공부를 했고, 지금도 소속 가수의 음반을 직접 믹싱한다. 그만큼 양현석은 본인의 생각을 패션, 음악, 뮤직비디오 등에 모두 제대로 관철시킨다. 또한 양현석은 페리 이후 프로듀싱을 회사의 전속 프로듀서에게 맡기고, 반면 지누션의 앨범에 맙 딥의 헤이벅, 빅뱅의 앨범에 일본의 다이시 댄스를 참여시키는 등 소속 뮤지션들이 해외 뮤지션들과 직접 교류하도록 지원한다.

양민석 : YG의 부사장이자 양현석의 동생. 양민석과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백댄서였던 션 을 비롯, 양현석과 일하는 스태프들은 상당수 YG 초기부터 함께 일한 ‘패밀리’다. 또한 양민석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하이텔에 ‘MANTUL’이라는 아이디로 양현석의 동향을 전달하기도 했다. 양현석은 그 때부터 팬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한 셈. 현재 양현석이 쓰는 ‘From YG’도 2000년 서태지의 콘서트에 참여한 한 밴드가 서태지를 공격한 것에 대응한 것에 그 연원이 있다. 또한 YG의 팬들은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빅뱅까지 ‘내리 사랑’을 주는 경우가 많았고, 양현석은 자신의 오랜 팬인 ‘양군후원회’ 회원들에게 YG의 합동 콘서트 티켓 100장을 선물했다. YG는 양현석을 중심으로 스태프와 팬들까지 뭉친 패밀리였던 것. 양현석은 “뮤지션들과 내 생각이 동일하고 공유할 수 있어야만 대중들도 거기에 동의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홍렬 : 개그맨. 양현석이 건물주인 건물에서 햄버거 가게를 운영 중이다. 양현석이 홍대의 클럽 운영 등으로 농담 삼아 ‘홍대 유지’로 불리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하지만 양현석은 처음에는 클럽 NB를 만들기 위해 홍대에 터를 잡았고, 그 후에는 힙합 패션 매장 운영과 힙합 전문 잡지 를 창간했다. 자신의 취향이 곧 사업이 된 셈.


빅뱅 : 양현석이 제작한 남성 아이돌 그룹. 빅뱅은 YG의 힙합, R&B 음악에 일렉트로니카와 가요적인 멜로디 등 다양한 요소를 음악에 섞었고, 여기에 프로듀서, 보컬, 래퍼 등으로 뚜렷한 캐릭터를 가져 대중에게 보다 쉽게 다가섰다. 결국 빅뱅은 한 해 매출 400억 원을 기록하며 YG 가수 중 처음으로 음악 시장을 석권했다. 소속사 선후배 가수들의 다양한 레퍼토리가 특정 팬 층을 만족시키던 회사가 빅뱅을 통해 ‘패밀리’ 바깥으로 시장을 확장시킨 것. 반면 휘성과 렉시, 빅마마 등은 이전의 소속 가수들과 달리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빅뱅을 분기점으로, YG ‘패밀리’는 ‘대형 기획사’로 커지면서 내외적인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2NE1 : 양현석이 제작한 여성 아이돌 그룹. 데뷔 전 테디가 프로듀싱하고 빅뱅과 함께 부른 ‘롤리팝’으로 음원 차트 1위를 했고, 데뷔 후 한동안 SBS <인기가요>만 출연했으며, 오락 프로그램대신 Mnet <2NE1 TV>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공개했다. 또한 2NE1의 스타일리스트는 G-드래곤의 친구고, YG에는 회사의 뮤직비디오만 편집하는 감독이 따로 있다. 2NE1의 모든 콘텐츠는 YG의 내부 인력과 전속에 가까운 그들의 파트너가 2NE1에 최적화된 상태로 만든 것이다. 그 점에서 2NE1은 양현석의 이상이 실현된 그룹이다. YG는 자체 인력으로 2NE1의 콘텐츠를 만들어 매스 미디어에 공급, 자신들의 의도하는 취향을 거의 그대로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양현석은 회사가 더욱 커진 뒤에도 자신의 방식을 밀어붙였고, 그것의 성공으로 YG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대중성을 함께 가질 수 있었다.

G-드래곤 : 빅뱅의 리더. 양현석이 자신의 노력으로 힙합 문화를 접했고, 페리와 테디가 미국에서 자란 것과 달리, G-드래곤은 YG의 지원 하에 어려서부터 해외를 오가며 다양한 음악과 트렌드를 흡수했고, YG의 ‘형들’에게 음악을 배웠다. 이는 빅뱅과 2NE1이 흑인 음악의 트렌드를 빠르게 수용하면서 대중성도 확보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활동하면서도 해외 힙합문화에 더 익숙하고, ‘패밀리’ 문화가 강한 YG는 그만큼 불안 요소를 갖는다. G-드래곤의 의상 논란처럼, YG는 대중이 싫어할 수 있는 그들 문화의 일부분을 자체적으로 여과하기 힘들다. 또한 G-드래곤의 표절 시비 당시 YG는 ‘순수 창작곡’, ‘단독 프로듀싱’, ‘공동 작곡’ 등의 개념을 대중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YG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G-드래곤의 곡은 표절, 리메이크, 샘플링 어느 것도 아니니 순수 창작곡이고, 여러 작곡가가 참여했으니 공동 작곡이며, 프로듀싱은 G-드래곤 혼자 했으니 단독 프로듀싱이다. 하지만 ‘패밀리’가 아닌 대중은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YG의 언어를 이해할 이유가 없다. 그건 마치 외국 물건을 한국어 설명서도 없이 한국인에게 파는 것과 비슷하다. YG가 ‘패밀리’ 바깥으로 나온 지금, 양현석은 어떻게 YG의 정체성을 대중의 감성과 공존시킬 수 있을까?

박진영 : JYP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서. 박진영과 양현석은 요즘 둘 다 회사 전체가 큰 논란에 휩싸였고, 이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글 내용에 대한 판단과 별개로 박진영은 최대한 공적인 언어로 예의 바르게 자신의 입장을 전달했다. 반면 양현석은 여전히 ‘From YG’의 형식을 유지한 채, 팬들과 대화하듯 글을 썼다. 그의 글은 맞춤법이 틀리기도 했고(홈페이지의 원문은 현재 수정됐다), 논란의 핵심만 추리는 대신 과거의 ‘From YG’와 마찬가지로 태양의 새 앨범 발매 소식까지 발표했다. 또한 G-드래곤의 표절시비에 대해 소니 ATV가 YG에 보낸 경고장이 원저작자의 입장이나 법적인 효력에 상관없이 보낼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표절시비에 대해 “대중을 속이려다 생긴 논란이 아니라 그 반대로 생각했다가 생긴 논란”이란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은 오히려 스스로 문제의 본질을 흐려 놓는다. 그는 ‘From YG’ 글 하나에 수백 개의 기사가 뜨는 지금도 여전히 예전처럼 글을 쓰고, 개인의 감정을 담는 그의 표현방식은 피할 수 있는 문제도 더 크게 만든다. 하지만, 양현석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을 거대한 공동체로 확장시킬 수 있었다. 자신의 성 안에서 살던 왕이 다른 세상의 사람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그는 벌거숭이 임금님이 될까, 아니면 천하를 제패할 제왕이 될까. 양현석의 인생에 새로운 막이 열렸다.

Who is next
양현석의 소속사 가수인 G-드래곤과 승리가 첫 회에 출연하는 SBS <강심장>의 MC 강호동

글. 강명석 (two@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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