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탐나는도다>는 2008년 8월 11일 첫 촬영에 들어갔다. 한여름 제주의 뜨거운 햇볕 아래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화상과 모기에 시달리면서도 혹은 밤바다의 싸늘한 물속에서도 공들여 한 장면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2009년 8월 19일, <탐나는도다>의 마지막 제주 촬영을 <10 아시아>가 하루 동안 따라갔다. 아침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진 촬영에도, 몰아치는 바닷바람에도 <탐나는도다>의 현장은 끝까지 훈훈했다.

아직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 한산한 표선 민속촌에 한 무리의 제주 아즈망들이 바삐 오간다. 아침 일찍 과수원과 당근 밭에서 촬영을 마치고 건너온 산방골 처자들이다. ‘버진이’ 서우와 ‘끝분이’ 정주리가 끝분 아방과 함께 있건 윌리엄과 함께 있건 “언니, 둘이 사귀어요?” “언니, 데이트해요?”라며 놀려대는 ‘버설이’ 김유정은 열한 살, 현장의 최연소 배우도 한복 치마 아래 스니커즈를 신고 뛰어다닌다. 막바지 촬영인 만큼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떼샷’이 종일 이어지지만 아무리 바빠도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든 출연진을 모니터 앞으로 불러들여 대사와 동선, 단역들의 리액션 타이밍까지 일일이 지도하는 윤상호 감독은 촬영을 시작한지 1년이 지나도 에너지가 넘친다. “야아~ 이거 잘 살았다. 좋았어!”에 모처럼 OK가 나는가 싶지만 따라붙는 말은 “한번만 다시!”인 걸 보면 촬영이 끝나는 걸 가장 아쉬워하는 이는 사실 윤상호 감독이 아닐까.

숨차게 이어지는 일정 때문에 모두들 마당에 앉아 햄버거로 점심식사를 마친 뒤 오후 촬영이 재개된다. 의상을 갈아입은 서우를 보고 김유정은 “다 새 옷 입었는데 나만…”이라며 아쉬워하고,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아빠!”하고 반기는 서우에게 ‘버진 아방’ 변우민은 조기종영 얘기를 꺼내며 “속상해 죽겠어~”라며 아쉬워한다. 하지만 촬영을 위해 몰려든 마을 사람들을 향해 “아유, 이렇게 다가오니까 좀비 같아!”라거나 “여긴 우리 집이잖아? 디스 이즈 마이 하우스!” 같은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모습은 역시 ‘애드리브의 제왕’으로 불릴 만하다. 하지만 단역으로 출연하는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는 “이방이 제일 멋있어~”라는 수군거림이 흘러나오는 걸 보면 ‘이방의 유혹’ 또한 만만치 않은 듯하다. 곧 후광 같은 금발을 한 ‘윌리엄’ 황찬빈이 “밥 묵었수꽈” 대신 “형, 밥 먹었어요?”라는 인사를 하며 등장하고, 인근에서 SBS <태양을 삼켜라>를 촬영하다 시간이 난 유오성과 여호민은 음료수를 잔뜩 사들고 놀러왔다. ‘버진 어멍’ 김미경과 유오성은 86년부터 친하게 지낸 선후배 사이다. ‘끝분 어멍’ 방은희와 ‘홍구락 대감’ 송귀현도 마지막 촬영을 맞아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가래떡과 감귤을 돌려 현장에는 온갖 진상품이 가득하다.

오후부터 저녁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민속촌에서의 촬영이 이어진다. 열성팬이 많은 현장답게 촬영장을 벗어나자마자 황찬빈은 교복을 입은 소녀 떼에게 붙들려 수십 장의 사인을 해 주고, 한 남학생은 정주리를 향해 흰 셔츠 등판을 내밀며 사인을 부탁한다. 김미경은 아예 길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팬들과 일일이 대화를 나누며 사인은 물론 버진 어멍의 캐리커처까지 그려주는 팬 서비스를 발휘한다.

코앞의 숟가락도 구분하기 힘든 어둠 속에서 밥 차가 날라 온 식사를 마친 뒤 월정리 해변으로 이동한 것은 저녁 8시 반. “좋은 영상이 나오기 위해서는 좋은 로케이션이 있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윤상호 감독은 <탐나는도다>에서 제주의 바다를 제주 사람들이 더 좋아하게 될 만큼 아름답게 보여주고 싶어 미리 CG 사용을 염두에 두고 거기에 맞는 장소들을 찾아냈다. 극 초반부터 동화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던 달빛 가득한 밤바다 역시 건너편 곶에 크레인을 설치하고 조명을 올려 촬영한 뒤 CG를 통해 조명을 구름에 가려진 달로 바꾼 결과다.

밤 촬영을 위한 세팅을 마치고 나니 밤 10시. 옆 사람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세찬 바닷바람과 발 앞까지 밀려드는 파도 앞에 서우와 황찬빈이 앉았다. 줄줄이 늘어선 스태프들이 커다란 비닐을 들고 카메라를 향해 몰아치는 파도를 막아서는 사이, 감정을 몰입하기는 좀처럼 어려운 환경임에도 두 배우의 눈에 금세 눈물이 고인다. 자정 무렵 시작된 서우와 임주환의 감정신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물에 빠졌다 나온 모습을 위해 생수통에 물을 가득 담아 머리부터 몇 번이나 쏟아 붓는 두 배우에게는 쌀쌀해진 바람이 몰아친다. 동선이 복잡한데다 격한 감정 연기가 요구되는 장면이지만 배우들은 침착하다. NG도 없다. 커다란 수건을 뒤집어쓰고 떨던 것이 언제냐 싶게 카메라가 돌아가자 바로 울음을 터뜨리며 끝까지 신을 소화한 서우는 감독의 OK가 떨어질 분위기임에도 여전히 울먹이는 채 “저 한번만 다시 해볼게요”를 외친다. 그리고 비교적 순조롭게 이어진 이 날 촬영이 끝난 것은 새벽 한 시 반이었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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