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며 스페인으로 입양된 인도인 저자가 친어머니에 대해 느끼는 애틋한 마음, 그리고 양어머니가 저자에게 쏟는 깊은 사랑, 그리고 이 모든 걸 읽으며 따뜻해진 제 마음 모두를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요즘처럼 힘든 사람이 많을 때 힘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올해 초 <엄마에게 가는 길>이란 제목으로 스페인 작가 아샤 미로의 자전적 에세이를 번역한 손미나는 번역이라는 까다로운 작업을, 그것도 굳이 국내 출판사들이 퇴짜를 놓을 정도로 ‘돈 될 것 같지 않은’ 책을 위해 매달린 이유에 대해 그렇게 대답했다. 물론 서반어학과 출신에 출판시장에서 성공한 여행 작가가 자신의 저서 목록에 한 줄을 더 추가하는 게 신기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번역 실력을 갖춘 모든 유능한 작가가 눈물 흘리며 밤 새워 읽은 책의 출판사를 무작정 찾아가 자신이 번역을 해 한국에 소개하겠노라고 말하진 않는다.

돌이켜 보면 손미나는 언제나 그랬다. <도전! 골든벨>과 <뮤직타워>를 통해 인기 아나운서로 발돋움하고, KBS <9시 뉴스> 주말 앵커라는 정점의 자리에 올랐던 그녀는 재충전이 필요하다며 스페인으로 훌쩍 떠났다. 그리고 어느 날 <스페인, 너는 자유다>라는 여행에세이와 함께 여행 작가로 돌아왔다. 아나운서 시절의 인기에 편승한 그저 그런 포토에세이란 편견도 있었지만, 이방인이기에 더 날카로운 눈으로 자칫 빤할 수 있는 도쿄 여행에 깊이를 부여한 <태양의 여행자>를 내자 ‘아나운서 출신’이라는 수식어는 사라졌다. 자신의 변화를 변명하기보단 그냥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고 어느 날 문득 예상치 못한 성과물을 가져오는 것, 그게 손미나의 방식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그녀는, 그래서 자신의 글처럼 보는 이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한 줄 글귀 같은 느낌이다. 다음은 자신의 활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는 그녀가 추천하는, 듣는 이에게 위로를 주는 음악들이다.




1. Jack Johnson의
손미나가 고른 첫 번째 앨범은 잭 존슨의 이다. 평소 잭 존슨이나 제이슨 므라즈처럼 최근 인기를 끄는 감성적 싱어송라이터의 곡을 즐겨듣는다는 그녀는 이 앨범에서 ‘Better Together’를 추천했다. “연인의 사랑에 대한 노래지만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노래인 것 같아요. ‘우리가 항상 좋은 건 아니지만,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함께 있는 게 좋다’는 내용의 가사인데 정말 사람은 함께인 게 좋다고 생각해요. 예전 외환위기 때 우리 국민들이 집에 있는 금을 모아 팔았잖아요. 그런데 얼마 전 머물렀던 아르헨티나의 경우 비슷한 경제위기가 닥쳐도 그렇게 힘을 합칠 생각 자체를 못하더라고요. 금 모으기라는 방법이 올바르고 말고는 나중 문제고 우선 그렇게 서로 힘을 모아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아요.”




2. John Lennon의
‘너무 클래식한 곡이지만’이라고 뜸을 들이며 그녀가 추천한 두 번째 곡은 존 레논의 ‘Imagine’이다. 존 레논의 유약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피아노의 서정적 반주를 타고 흐르는 이 곡은 그녀의 말대로 명곡의 전당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놓여있을 것 같은 곡이다. 그럼에도 이 곡을 추천한 건 그녀 역시 상상의 힘을 믿는 능동적 몽상가이기 때문이다. “국경이 없어서 전쟁이 없는 세상, 소유가 없어서 탐욕이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모두가 바란다면 그런 세상이 오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위로는 혼자만 있을 땐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손을 잡고, 또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며 위로를 받죠. 그러려면 먼저 우리 사이를 가르는 모든 한계가 사라지는 걸 상상해봐야 하겠죠.”



3. 봄여름가을겨울의
그녀가 “방송을 같이 하며 정말 친해지고 좋아하게 된 가수” 봄여름가을겨울의 곡에서 고른 ‘Bravo My Life!’는 이 땅의 수많은 지친 사람들에게 제목만으로도 정말 ‘위로’가 되는 곡이다. 지난 그랜드민트페스티벌 서브 스테이지의 마지막 공연은 봄여름가을겨울이, 그리고 마지막 곡은 이 곡 ‘Bravo My Life!’가 장식했는데 당시 환호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온 중년남성이었다. “봄여름가을겨울 두 분은 개인적으로 만나면 그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분들이에요. 정말 오랜 시간 실력으로 부침 많은 가요계에서 중년의 힘을 보여주고 계시잖아요. 그런 분들이 내 인생을 위해 브라보를 외쳐주니 힘이 날 수밖에요. 우리 모두 계속해서 그렇게 브라보라고, 스스로의 인생을 위해 외쳐주면 좋겠어요. 그러면 마치 주문처럼 정말 힘이 나고 삶도 잘 풀릴 거예요.”



4. 이소은의
어쩌면 이번 플레이리스트에게 가장 의외의 선곡일지도 모르겠다. 김동률과 부른 ‘기적’으로 서정적 가창력을 뽐낸 이소은이 발랄한 분위기를 시도해 주목을 받았던 곡 ‘키친’이 손미나의 네 번째 선곡이다. “사실 가사 내용에서 ‘힘내세요’ 이런 건 없죠. 하지만 뭐랄까 참 귀여운 얘기잖아요. 누군가에 대한 첫 사랑을 그 사람을 위한 첫 요리로 표현하면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화자의 모습이. 이소은 씨의 상큼한 목소리와 함께 그런 모습을 연상하면 기분 좋은 미소가 저절로 번져요. 어쩌면 우리가 위로를 느끼고 힘을 내는 건 이런 작은 일에서 생기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그 저녁식사를 대접받고, 또 함께 식사하는 그런 소소한 일상에서. 음악 자체도 보사노바풍이라 참 신나게 즐길 수 있어요. 우울하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이 곡을 듣고 저처럼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5. Yann Tiersen의
‘나는 음악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들을 기념하고자 한다. 나는 그것을 잃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를 향수한다.’ 손미나가 유일하게 곡이 아닌 앨범 단위로 추천한 영화 <아멜리에> OST를 작곡한 얀 티에르상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이 OST에는 천진하고 엉뚱한 주인공 아멜리에가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성격 나쁜 야채장수를 골려주는 사건 하나하나의 기억이 ‘L`autre Valse D`amelie’처럼 짧지만 인상적인 소품을 통해 기록되어 있다. “영화 속 아멜리에는 남들을 행복하게 해주려 노력하지만 정작 자신은 누군가를 사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행복해지지 못하잖아요. 그러다가 마음의 문을 열고 니노를 받아들이면서 행복을 얻죠. 행복에 대한 깨달음을 주기도 하지만 그냥 보고만 있어도 귀엽고 행복한 영화예요. 그 모든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OST인 것 같아요.”


“글을 통해 실천하는 일을 하고 싶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 또 글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았어요. NGO나 인권단체 같은 곳에서 실천하며 그걸 글로도 옮기고, 반대로 글을 통해 실천하기도 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우리가 손미나에게서 정말 위로와 희망을 얻는다면 그건 그녀가 단순히 성공적인 인생의 2막을 살아서가 아니라 언제든 3막, 4막을 향해 걸음을 옮길 수 있을 것 같은 태도 때문일 것이다. 3막이 기대된다는 말에 그녀 역시 웃으며 “저도 연극 <19 그리고 80>에서 박정자 선생님이 연기한 할머니처럼 항상 새로운 막을 열며 10막 이상 살고 싶어요.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라고 되묻는다. 하지만 모두들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이미 장막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새로운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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