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지붕 뚫고 하이킥>의 김병욱 감독은 지난 1995년 SBS 으로 첫 시트콤 연출을 했다. 그 후로 그는 15년 동안 6편의 시트콤, 1400여회를 연출했고, 어느덧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한국 시트콤의 부흥과 쇠락을 모두 지켜보았고, 어떤 상황에든 ‘김병욱의 시트콤’을 대중에게 납득시켰던 연출자. 그리고 MBC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시트콤의 또 다른 방점을 찍었던 시트콤의 장인. 그가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보여줄 또 다른 시트콤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번에는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렸다. 그런데 이번엔 지붕을 뚫는다. (웃음)
김병욱
: <거침없이 하이킥>과의 연관성도 있지만, ‘지붕 뚫고’라는 제목을 지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떤 사람이든 성장하면 마음속에 뚫을 수 없는 지붕을 갖는다. 자신이 돌파할 수 없는 한계 같은 건데, 나는 내 지붕을 못 뚫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세상을 벗어나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세경과 신애 자매의 이야기는 그 때문인가. 그들이 아버지의 빚 때문에 산골에 있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김병욱
: 그렇다. 두 자매가 알을 깨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그 점에서는 <지붕 뚫고 하이킥>을 성장드라마라고 할 수도 있다. 특히 서신애는 MBC <고맙습니다>를 보면서 느낌이 너무 좋아서 가장 먼저 캐스팅하고 싶었고, <케빈은 12살> 같은 성장 드라마의 느낌을 내고도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트콤도 생각했었고.

“돈이나 물질적인 부분에 대한 중요성을 다루고 싶었다”

1980년대?
김병욱
: 1980년대 전후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12.12 군사 쿠데타’와 ‘10.26 사건’이 있었고, 컬러 TV도 처음 등장했다. 그런 상황에서 두 자매가 서울에 올라와서 세상에 눈뜨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었다. 이를테면 신애는 TV에서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알고 보니 그게 전두환 전 대통령이고, ‘12.12 군사 쿠데타’가 벌어지면서 집 앞으로 탱크가 지나다니는 식이다. 세경은 식모살이 하는 집의 대학생을 사랑하면서 그 대학생이 왜 그렇게 데모를 하는지 궁금하게 되고. 그렇게 한 시대를 얍삽하게 (웃음) 구석에서 아우르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두 자매가 가정부 노릇을 하는 건 그 설정을 가져온 거다.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포기하긴 했지만. (웃음)

왜 1980년대를 그리고 싶었나. 그 시대에 대한 특별한 감상 같은 게 있나.
김병욱
: 시대정신을 말하고 싶었다. 나는 정치의식이 별로 없지만, 그 때는 야만적인 시대였다고 본다. 길 가다 장발 단속하고, 학교에서 폭력이 일상화 됐었고. 그런 시기에 여자애가 폭력을 겪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폭력이라는 게 물리적인 폭력만 있지 않다.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여러 종류의 폭력에 노출된다. 그게 비극이 될 수도 있고, 희극이 되기도 하고. 그 부분은 <지붕 뚫고 하이킥>에도 반영된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이 시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일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병욱
: 예전에 오일쇼크가 난 뒤에 사람들이 정말 어렵게 살았다. 그러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들어 많이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우리의 삶이 알고 보니 한 발만 떨어지면 얼마나 위태해질 수 있는지 알게 된 거다. 빚 때문에 초등학교조차 못가는 신애의 이야기는 그런 것들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지붕 뚫고 하이킥>은 초반부터 돈에 대한 묘사가 많다. 세경과 신애는 돈이 없어서 노숙을 하고, 젊은이들은 과외로 받는 월급에 일희일비하고.
김병욱
: 내가 생각이 팍팍해서 그런지, 우리는 정신 이상으로 물질적인 것에 많이 지배당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리는 에피소드에 판타지가 많이 없듯, 돈이나 물질적인 부분에 대한 중요성을 다루고 싶었다.

오현경이 냉정하게 과외 교사를 해고하려고 할 때는 조금 무섭기도 하더라. 실제로 요즘엔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많고.  
김병욱
: 얄팍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이번엔 좀 쿨하지 않고 핫하게 가고 싶었다. 점점 나이가 들어 그런지 더 질퍽하고 적나라한 게 좋다. (웃음) 그래서 내가 한 작품 중 가장 드라마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옛날보다 더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는데, 내 작품을 계속 본 사람들은 내 색깔이 없어졌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순재와 자옥의 사랑은 스턴트가 필요할 만큼 액티브하다”

확실히 <지붕 뚫고 하이킥>은 변화가 눈에 띈다. 캐릭터 코미디 중심으로 시작했던 <거침없이 하이킥>하고 다르게 작품 초반이 두 자매의 서울 정착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 위주로 진행된다.
김병욱
: 일단 캐릭터 중심의 에피소드에 한계가 왔다. 지금까지 시트콤을 1400회 정도 하다보니까 같은 방식으로는 정말 더 할 얘기가 없다. 그래서 전처럼 캐릭터 중심의 코미디를 하는 대신 초반에는 일부러 스토리 중심으로 가서 주인공의 동선을 따라가 보려고 했다.

<거침없이 하이킥>을 끝낼 때 쯤 “드라마를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이런 선택을 한 건가.
김병욱
: 그 보다는 내 한계를 생각했다. 체력적으로 힘들어서라도 예전처럼 한 작품을 1년씩 끌고 가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초반에 스토리텔링을 전개했다. 내 전작들은 초반에 반응이 약했으니까 이번엔 좀 더 빠르게 가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내 작품의 첫 회가 늘 어색했다. 보면 늘 초반에는 배우들의 손발이 안 맞는다. 너무 급하게 찍느라 한동안은 호흡을 맞추기 어렵다. 그런데 서사를 부여하면 이야기의 힘이 있어서 어색하지 않다. 드라마를 사랑하게 된 건 그런 부분이다. 스토리의 내용 자체보다는 스토리를 풀어가는 방식 같은 거.

캐릭터를 잡는 방식도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는 이순재나 김자옥 같은 어르신들이 있는 두 집이 등장한다. 당신의 작품에서는 없던 구성이다.
김병욱
: 처음에는 김자옥이 이순재와 일찍 결혼하는 것도 생각했다. 그런데 만들다 보니 김자옥과 젊은 캐릭터들이 함께 생활하는 게 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가족이 아니면서도 같이 사는 사람들이니까. 거기다 외국인까지 있고.

혹시 모든 미혼 캐릭터가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닌가? (웃음) 모든 캐릭터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 가능하다.
김병욱
: 그럴 수도 있다. 특히 세경이는 이 작품에서 희극과 비극, 멜로의 접점이다. 예를 들어 좀 더 방송이 되면 신애가 초등학교에 취학하는데, 학용품을 사줄 돈이 없다. 그래서 많이 먹기 대회에 나간다. 가난한 건 비참한 건데, 상황 자체는 희극이 되는 거다. 그리고 세경이가 잘 사는 순재네 집안의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멜로에 계급간의 갈등이 벌어질 수도 있는 거고. 그렇게 처절한 코미디를 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신경 쓰는 애정 관계는 순재와 자옥 아닌가? (웃음) 벌써 두 사람의 닭살이 장난 아니던데.
김병욱
: 노인들의 연애를 주말이나 일일 드라마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싶었다. 스턴트가 필요할 만큼 액티브하다. (웃음) 이미 창문에서 뛰어내렸고, 노인들이 30대들이 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걸 보여주고 싶다.

“시트콤은 6개월짜리 장기 마라톤, 제대로 완주를 하고 싶다”

순재와 자옥의 관계도 흥미롭지만 정보석과 오현경의 등장도 신선하다. 지금까지의 캐스팅 중 손에 꼽힐 만큼 허를 찔렀다. 멍해 보이는 정보석과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오현경이라니. (웃음)
김병욱
: 정보석은 캐릭터를 만들 때 가장 먼저 떠올랐다. 정보석의 고유한 아우라가 굉장히 댄디하고 중후하긴 하지만, 그 표정을 자세히 보면 은근히 멍한 표정을 뽑아 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오현경은 집안에서 가장 발언권이 센 사람인데, 너무 남성적이고 센 느낌이 들기 보다는 자기 스타일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사납게 생기기보다는 다리도 길고 스타일도 좋은데 은근히 사람을 압박하는 그런 여자.

<거침없이 하이킥>이 워낙 인기를 얻어서 이 시트콤도 <지붕 뚫고 하이킥>이 됐다. 그만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느낌인데, 전작의 인기가 부담은 안 되나.
김병욱
: 물론 그랬다. 특히 전작에서 젊은 배우들이 많은 사랑을 받아서 이번에도 캐스팅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요즘은 신인급 젊은 배우들에 대한 수요가 많아서 원하는 분위기를 가진 배우들을 찾기 쉽지 않았고. 마음에 드는 배우를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특히 황정음과 신세경은 워낙 이미지가 달라서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지붕 뚫고 하이킥>이 <거침없이 하이킥>과는 어떻게 달라질 것 같나.
김병욱
: 그건 아직 모르겠다. 성장 드라마에 대한 욕심은 있지만, 찍다보면 일일 시트콤은 일용한 양식을 버는데 급급해질 수밖에 없다. (웃음) 그래서 중간쯤 가면 내가 끌리는 대로 하기 쉽다. 멜로적인 부분만 해도 사랑은 화학작용 같은 거라서 미리 어떤 방향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장에서 서로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하니까. 6개월짜리 장기 마라톤이라서, 일단 제대로 완주를 하고 싶다.

그 완주 뒤에는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김병욱
: 아까 말한 것처럼 내 한계를 뚫고 싶다. 거울을 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난 49년을 사는 동안 내 한계 안에서 산 것 같다고. 그걸 조금이라도 넘어서고 싶다. 그리고 다 같이 희망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보고 싶다. 우리는 보통 남들을 위로할 때 희망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0년이 지나도 사는 게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에겐 정말 밝은 미래가 올까. 온다면 어떻게 올 수 있는 걸까. 그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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