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동 마님>은 약했다. 그 틈에 문영남 작가의 <조강지처 클럽>은 바람난 가족의 끝을 보여줬고, 김순옥 작가의 <아내의 유혹>은 ‘막드’를 하나의 장르로 만드는 수준에 이르렀다. 과연 이제 임성한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아현동 마님>의 종영 이후 거의 1년 반 만에 돌아오는 임성한의 새 드라마 <보석 비빔밥>의 제작발표회가 1일에 열렸다. 이번 제작발표회에는 MBC 프로덕션 김정호 드라마 부장을 비롯해 연출을 맡은 백호민 감독, 배우 이태곤, 고나은, 소이현, 이현진, 정유미, 마이클 블렁크가 참석했다. 발표회가 열린 서울 워커힐 호텔은 극중 네 남매의 아버지인 궁상식(한진희)이 도어맨으로 일하는 실제 촬영장소이기도 하다.

“은 임성한의 전작과 다른 작품”

“비취, 루비, 산호, 호박이라는 보석 이름을 가진 궁씨네 4남매가 맛깔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명랑 홈드라마를 만들겠다”는 것이 홍보자료에 나와 있는 <보석 비빔밥>의 기획의도다. 하지만 그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맛깔스럽다기보다 목이 메는 듯한 느낌의 제목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은 조금 잦아든 감이 있지만 임성한이라는 브랜드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정호 부장은 “과거 연속극의 일반적 형식과도, 임성한의 전작과도 다른 작품”이 될 것이라 자신했다. 재벌 2세인 서영국(이태곤)이 아버지의 지시로 ‘밑바닥’ 삶을 겪어보기 위해 궁씨네에 세 들어 산다는 설정에선 작가의 여전한 추상적 계층의식이 슬쩍 엿보이지만 “잘 사는 집과 못 사는 집의 전형적 갈등보단 세대 간 갈등을 오히려 젊은이들의 입장에서 풀어가겠다”는 백호민 감독의 말처럼 새로운 관점을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는 자극과 논란이 아닌, 따뜻함으로 업그레이드된 임성한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민’ 수업을 받는 재벌 2세 서영국, 이태곤 – 철없는 부모를 대신하는 실질적 가장 궁비취, 고나은
유학까지 다녀온 영국이 호텔을 물려받기 위해 왜 1년 동안 신분을 숨기고 굳이 ‘서민’의 삶을 경험해야 하는지는 아버지 서로마(박근형)와 작가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중요한 건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직업도 없이 세입자가 된 영국이 궁 씨네 사람들의 무시 속에서 진짜 보석 같은 마음을 지닌 맏딸 비취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은 인생 경험을 위한 수행이라기보다는 선한 백성을 찾아 상을 주는 임금의 미복잠행에 가깝다. 어쨌든 그 과정을 통해 성실한 비취와 타고난 좋은 성품을 지닌 영국은 사랑을 쌓고, 호텔 도어맨 궁상식의 집안과 호텔 회장 서로마의 집안 역시 관계를 맺게 된다. 즉 홈드라마의 중요 요소인 집안 대 집안의 구도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하는 커플이다.

깨달음을 찾아 동쪽으로 온 불제자 카일, 마이클 블렁크 – 시집 잘 가는 게 꿈인 둘째 궁루비, 소이현
“하루 동안 춤을 배워서 섹시 웨이브를 소화해야 했던” 잘 놀고 발랄하고 발칙한 면이 있는 루비는 드라마 안에서 트렌디한 20대 여성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왜 그런 캐릭터가 시집 잘 가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삼는지 역시 쉽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여성일수록 홈드라마에선 전혀 반대의 인연을 만나는 법이다. 그녀의 짝은 세입자인 카일. 대학 때 어떤 스님의 강의를 듣고 불교에 심취하게 된 그는 출가를 위해 한국에 와서 궁 씨네에 세 들어 살고 있다. 여자에 마음을 두지 않는 승려 지망생인 카일과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을 꿈꾸는 루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커플은 아마도 드라마 안에서 가장 티격태격 다이내믹한 연애를 보여줄 것 같다.

우직하고 고리타분하지만 속 정 깊은 셋째이자 장남 궁산호, 이현진 – 오매불망 산호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이강지, 정유미
본인이 집안에서 셋째든 넷째든 위로 누나만 있고, 아래에 남동생이 있다면 한국에선 맏아들이다. 그래서 산호는 실질적 가장 비취와 마찬가지로 빨리 철든 청년이다. 아직까지 한량 같은 기분을 내는 아버지와 허영심 많은 어머니 피혜자(한혜숙)의 철없는 행동에 실망하지만 그만큼 그들을 개선시키려 노력한다. 그러다보니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성격이 되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홈드라마에서 가족 중에 연애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밝고 싹싹하고 애교까지 있는 강지는 그 어떤 성격적인 면보다 일편단심 산호를 좋아한다는 점이 캐릭터를 규정하는 인물이다. 자칫 궁 씨네 셋째 아들 연애를 위해서만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낼지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관전 포인트
5월 2일 부활한 이후의 MBC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는 말하자면 목이 좋지 않은 자리다. <2009 외인구단>은 시청률 참패와 혹평 속에 조기 종영됐고, <친구, 우리들의 전설>은 제법 흥미로운 텍스트였지만 그에 비해 상당히 저평가되며 시청자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9월 5일부터 방영하는 <보석 비빔밥>은 그 악순환을 끊겠다는 MBC의 의지가 느껴지는 드라마다. 임성한이라는 흥행카드도 흥행카드지만 무엇보다 편성 시간을 저녁 10시 40분에서 9시 45분으로 변경해 편성 어드밴티지를 준 것이 눈에 띈다. 과연 이런 MBC의 노력을 통해 주말 특별기획이라는 자리에서도 ‘대박’이 나올 수 있을까.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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