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드라마의 ‘명대사’들은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예쁘게 단장하는 데 쓰이곤 한다. 그러나 MBC <선덕여왕>의 대사들은 종종 당장 다음 날의 신문 사설이나 정치인의 연설문에 쓰일 수 있을 만큼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보여 준다. 또한 각 캐릭터들은 각자가 지닌 사연이나 상황에 따라 사안을 판단하고 상대를 설득하며 정세를 읽으면서 자신의 ‘말’에 대한 충분한 당위성을 갖는다. 그래서 <선덕여왕>은 과거를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현재를 이야기하고, 한 사람을 언급하지만 사실은 모든 사람에 대해 통찰한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서 오는 드라마의 재미를 극대화시킨 <선덕여왕>의 인상적인 어록들을 모아 봤다. 물론 이것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진흥왕은 미실에게 자신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었던 비결은 ‘사람’이며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고 시대의 주인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실은 자신을 제거하려던 진흥왕의 계책을 무산시킨 뒤 그의 시신 앞에서 미실의 시대가 왔음을 선언한다.

미실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로부터 내려온 ‘어출쌍생 성골남진’을 이유로 마야부인이 낳은 쌍둥이를 제거하려 하지만 이를 눈치 챈 진평왕은 쌍둥이 가운데 동생인 덕만을 궁 밖으로 내보낸다. 그러자 미실은 덕만과 소화 일행을 놓친 병사를 망설임 없이 베어 죽인다.

중국 타클라마칸 사막 지대에서 자란 덕만은 교역장에서 차를 매점하는 양제후로 인해 상인들이 어려움을 겪자 교역을 돕다 양제후에게 잡혀간다. 그러나 덕만은 <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 읽었던 글귀를 인용해 양제후에게 반박한다.

미실의 계략으로 세 남동생과 남편 용수공을 잃은 천명은 죽은 용수가 남긴 아들을 몰래 키우며 미실을 꺾을 날을 기다린다. 이후 천명 또한 미실 일파에 의해 목숨을 잃지만 그의 아들 춘추는 훗날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에 이어 신라의 29대 왕인 태종무열왕이 된다.

미실이 김서현을 자신의 사람으로 끌어들이려 하자 불안해하는 설원을 위해 보종은 김서현을 제거하기 위한 계략을 짜내지만 결국 어그러진다. 섣부른 행동에 실망한 미실은 이들에게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통성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김유신을 회유해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다 거절당한 미실은 종이에 ‘人力口’라는 문구를 적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그리고 미실은 김유신이 보란 듯이 ‘필축인력구야(必逐人力口也)’ 즉, ‘人力口’의 합자한 ‘가야(伽倻)’계를 내쳐야 한다고 새긴 돌부처를 땅에서 솟아나오게 하면서 하늘의 뜻을 빙자해 가야 출신 김유신 가문의 목을 죄는 액션을 취한다.

덕만을 불러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낭독하게 하던 미실은 자신이 세간에 악인이자 폭군으로 알려져 있는 것조차 스스로 낸 소문임을 말해 준다. 어떠한 선정을 펼친다 해도 인간의 욕심을 모두 채울 수 없다고 여기는 미실은 차라리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기를 바란다.

미실로부터 유신과의 혼담을 제의 받은 김서현은 가야인들과 가문을 지키기 위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유신을 설득한다. 그러나 미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기 위해 마땅히 분노해야 한다고 믿는 유신은 천명, 덕만을 찾아가 결의를 다진다.

비담이 괴질로 죽어가는 마을 사람들을 구하려 약재인 세신 200인분과 덕만의 목숨을 바꿔 미실 측에 넘기기로 한 것을 알게 된 문노는 비담을 엄하게 다그친다. 스승으로부터 새로운 깨우침을 얻은 비담은 다시 덕만을 살리기 위해 달려간다.

미실로 인해 덕만을 버리고 세 아들에 이어 천명까지 잃게 된 마야부인은 천명의 국상에 참석한 미실을 향해 저주를 내린다. 귀기마저 어린 증오의 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대의 최고 권력자였던 미실은 결국 역사에서도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다.

알천은 천명을 지켜내지 못하고 그 죽음의 원인마저 규명하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으로 비천지도를 해산시킨 뒤 자결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천명을 대신해 신라의 왕이 되기로 한 덕만은 알천에게 화랑의 주인으로서 첫 번째 명을 내린다.

미실과 진지왕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때 버려져 문노의 손에서 자란 비담은 왕실과 화랑의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다. 권력을 지향하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의지와 판단에 의해 길을 정하는 비담은 덕만을 따르기로 하지만 다른 이들이 가진 대의조차 무의미하게 여기는 그는 어쩌면 사극 최초의 무정부주의자가 아닐까.

왕이 되기로 결심한 덕만은 패도를 걷는 자로서 유신을 이용하게 될 것이 두렵다며 헤어지려 하지만 유신은 결국 남녀 간의 인연을 포기하고 신하로서 덕만의 곁에 남아 충성을 맹세한다.

사다함의 부탁을 받아 오랫동안 격물(과학)로써 미실을 도왔던 월천대사는 미실 대신 자신을 도와 천체를 살피고 일식 날짜를 알려달라는 덕만에게 반박한다. 덕만은 미실과 다른 통치를 하겠다고 하지만, 월천대사의 말대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기술은 권력의 필요에 의해 이용되기도 하고 잊혀지기도 한다.

덕만은 미실에게 비담을 보내 월천대사의 존재와 일식에 대해 언급하며 통찰력을 흐리게 만든다. 다양한 경우의 수와 각각의 결과에 따라 벌어질 일들로 인해 흔들리는 미실에게 설원은 상황이 아니라 사람을 통찰하라고 조언한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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