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자>는 소위 말하는 ‘대박’을 노린 작품은 아닌 것 같다. 규모로 승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멜로도 없는 데다 두 여배우가 주인공이다. 그런 작품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데 대한 부담도 있을 텐데, <애자>가 자신에게 주는 의미는 뭔가.
최강희
: 내가 마지막에 잡은 한 줄기 희망이자 굉장히 큰 영향을 준 작품. 잘 되면 앞으로도 많은 걸 용기내서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고, 안 되면…그건 그 때 또 생각해봐야겠지만. (웃음) 그리고 사실은 <애자>를 찍을 때 부산에서 다른 영화들과 MBC <친구>도 촬영 중이었는데 우리 스태프들은 허름한 모텔에서 자고 다른 팀 연기자와 스태프들은 좋은 호텔에서 묵는 걸 보며 나도 좀 더 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MBC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할 때도 바로 앞에 <내 이름은 김삼순>이 대박을 내서 스태프들의 축 처진 어깨만 봤는데, 누가 “거기 여주인공 누구야?”라고 물었을 때 우리 스태프들이 “최강희 씨잖아!”라고 말하면서 어깨에 힘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작품들이 다 안 됐던 건 아닌데, 이상하게 그걸 그렇게 못 해봤다. (웃음)

“이제 15년 했으면 자신 있게, 잘 해서 상을 받고 싶다”

최근 KBS <연예가 중계>에서 “상을 받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신인 시절에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는데 상이라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하다.
최강희
: 학교 때는 상을 못 받았다. 데뷔하고 나서는 이것저것 받긴 했는데 항상 왠지 쑥스럽고, 잘해서 받는 게 아니라 잘 하라고 주는 것 같았다. 데뷔 초에 받은 게 ‘아역상’이었으니 처음부터 뭔가 꼬였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스무 살이었는데 전년도 수상자는 5, 6세였으니까. (웃음) 이제 15년 했으면 자신 있게, 잘 해서 상을 받고 싶다. 꼭 <애자>로가 아니더라도 그냥 이 시기에 한번쯤 받고 싶다는 기분이다. 상을 통해 나 스스로 감동받고 싶다.

그런 맘이 든다면 작품을 좀 활발하게 할 때 인 것 같다.
최강희
: 그렇다.

예전에는 배우라는 직업에 큰 무게를 두지 않는 것 같았고 연기를 대할 때도 힘을 좀 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좀 더 적극적인 욕심이 생긴 것 같다. 왜일까.
최강희
: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 같다. 왜 욕심이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배우가 되고 싶다. 사실 예전엔 그냥 연기가 좋았고, 돈이야 부족하거나 넘치지만 않게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가 ‘너, 스타가 돼야 할 사람이 그렇게 늦게 다니고 그럼 되니?’라고 잔소리하면 ‘엄마, 난 스타 안 될 거야!’라고 콕 집어서 반박하며 주위의 기대감을 반복적으로 낮춰줬다. 행여 그렇게 생각했다간 상실감이 더 클 테니까. (웃음) 그런데 이제는 스타를 떠나서 배우가 되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바람직한 현상이긴 한데, 뭔가를 바라면서 일하는 게 더 힘들긴 하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면서 두려운 것은 뭔가.
최강희
: 유별나게 늙지 않았으면 한다. 배우가 자유롭게 사는 것도 좋고 특별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외골수가 되거나 하는 게 너무 겁난다. 예전엔 내가 문득 팬들이랑 놀러가야겠다고 생각하면 당장 차 빌려서 강원도에 같이 가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럼 매니저가 얼마나 피곤할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한다. 누구한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언젠가부터 ‘참 별나다’라는 말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졌고 자연스럽게 늙고 싶다.

“요즘에는 준비 중인 책에 푹 빠져있다”

‘별나다’와 상통하는 이미지이기도 한데, 아주 요란한 패셔니스타는 아니지만 여성들 사이에서는 독특한 스타일 아이콘으로도 자리 잡았다. 스타일 원칙 같은 게 있나?
최강희
: 음…일단 많이 입어봐야 하는 것 같다. 난 원래 빈티지한 스타일을 많이 입었지만 사실 어떻게 꾸미는지는 잘 모른다. 원래는 윗도리만 입은 것 같아서 레깅스도 잘 안 입었다. (웃음) 그런 걸 입혀준 건 코디다. 요새 ‘엣지 있다’는 말 많이 쓰던데 꾸미기 귀찮을 때 허름한 티셔츠에 레깅스 입고 힐 신고, 작은 보조가방 하나 매면 시크해 보일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건 원래 미모가 받쳐 줘야 어울리지 않나? (웃음)
최강희
: ……어, 그렇다. (웃음) 하지만 신기한 게, 빈티지한 옷은 예쁘게 생긴 사람들이 아무리 예쁘게 차려 입어도 눈에 잘 안 들어온다. 그냥 아무 데나 편히 앉아서 담배도 피우고 할 것 같은 무난한 사람들에게 어울리지. 난 예전부터 옷을 겹쳐 입었고 안 사 입었고 구멍 난 옷을 입었는데 유행이 돌고 돌아 그게 맞는 시대가 온 거다.

요즘 특별히 재미를 붙인 게 있다면 뭔가.
최강희
: 사실 요즘은 너무 바빠서 재미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스쿠터도 일주일 째 이별 상태다. 대신 최근까지 꽂혔던 건 아이슬란드다. 밤잠 설쳐 가며 사진 찾아보며 가고 싶다고 외치다가 다음 달에 나올 책 준비하면서 며칠 가 있었다. 정말 좋았다. 다녀온 게 꿈 같다. 물가가 정말 비싸서 돈 아껴 쓰느라 고생 좀 했지만. (웃음)

책에 대해 미리 소개를 좀 해 준다면.
최강희
: 가장 날 닮은 책이다. 그동안 내가 썼던 글과, 아이슬란드에서의 사진이 실린다. 남에게 글을 맡기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글이 좀 후지더라도 내 손으로 만들고 싶었다. 글 쓰는 사람들이 보기엔 ‘에, 이게 글이야?’ 싶더라도, 글 못 쓰는 남자친구가 쓴 진심 어린 편지처럼 읽는 사람에게 내 마음이 다가가면 좋겠다. ‘아, 이게 최강희구나’ 하는 느낌이 전해졌으면 한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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