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명민좌 얼굴 살 쪽 빠진 거 봤어? 영화 촬영하느라 20㎏이나 뺐대. 그게 말이 돼? 아아, 마음이 아파.
대단한 거지. 후반부 촬영 땐 저혈당 증상에 정신까지 혼미해졌다며. 루게릭병에 걸린 인물을 연기한다기에 조금 긴가민가했는데 그 정도면 누구도 연기에 대해 시비 걸지 못하겠던 걸.

대체 그게 그렇게 몸을 혹사하면서까지 연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병이야?
물론이지. 너도 어느 정도 알겠지만 몸의 운동신경세포만 죽어가는 병인데 단순히 팔다리의 근육뿐 아니라 혀가 굳어서 음식물을 제대로 삼키기도 어렵고, 가로막이 쇠약해져서 숨 쉬는 것도 어려워져. 대부분의 경우 가로막을 비롯해 호흡에 필요한 근육이 마비되어 발병 수년 만에 죽게 되는 병이야. 먹는 걸 제대로 먹지 못하니 체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몸은 거의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되니 그런 병을 연기로 표현하려면 지독하게 굶어서 살과 근육을 빼는 수밖에 없었겠지. 물론 누구나 그 정도로 독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진짜 주연상이나 이런 것 말고도 근성상이나 투혼상 같은 걸 만들어서 줘야 한다니까?
그러게. 그러고 보면 루게릭병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인 루 게릭도 참 굉장한 근성을 보여줬던 사람이었는데 은근히 공통점이 있네.

근성? 루게릭병이 사람 이름에서 따온 거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어떤 대단한 걸 보여줬던 거야?
당연히 유명인이니까 그 사람의 이름을 땄겠지? 물론 근위축성측색경화증이라는 원래 병명을 외우기 어려운 탓도 있겠지만. 루 게릭은 지금도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선수 중 하나야. 그래도 잘 모르겠지? 베이브 루스는 알아? 이름은 들어봤지? 그 베이브 루스와 동시대에 같은 팀에서 뛰며 가장 많이 비교됐던 선수야. 보통 야구에서 팀의 대표타자가 4번이잖아. 그런데 둘이 같이 뛰던 뉴욕 양키즈에선 그 천하의 베이브 루스가 3번이고, 루 게릭이 4번이었어. 비록 개인 기록에선 루스에 조금 뒤졌지만 메이저리그 최초로 2000경기 연속 출전 기록을 세워서 철마라는 별명까지 있었던 선수야.

철마? 쇠로 만든 말? 히히힝 거리는?
응, 그 철마. 영어로 아이언 호스. 그가 세운 2130경기 연속 출전 기록은 나중에 1995년 칼 립켄 주니어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50년 이상 독보적이었고, 지금도 역대 2위의 기록이야. 재밌는 건 그가 아직 벤치 멤버였을 때 주전 1루수의 두통 때문에 대신 들어가면서 대기록이 시작됐다는 거야. 기대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며 바로 주전 1루수를 꿰찬 후 2000경기가 넘도록 출장했고, 그에 반해 두통 때문에 하루 빠졌던 그 선수는 이후 양키즈의 1루수로 한 번도 뛰지 못하게 돼.

오래 출전한 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개근상도 상이지만 출석 잘 하는 학생보단 며칠 빠지고 서울대 가는 학생이 더 유명해지잖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메이저리그라고 하는 치열한 무대에서 실력 없이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야. 체력적 부담도 엄청나고. 십 수 년 동안 빠짐없이 경기에 참가할 수 있다는 건 실력과 체력, 자기 관리 모두를 갖춰야 가능한 거야. 그리고 루 게릭이 정말 대단한 건 십 년 이상 개근하면서 그 때마다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았다는 거야. 그의 기록을 보면 1929년부터 1937년까지 9년 연속 30홈런 이상, 타율 3할 이상, 100안타 이상을 기록했는데 이건 9년 동안 결석, 지각, 조퇴 없이 개근하면서 내신은 1등급에 모의고사 석차는 전국 상위 0.1%인 거나 마찬가지야.

그렇게 튼튼한 사람이 어쩌다 병에 걸렸대?
그러니까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 야구 역사상 최고의 철인이라 불리는 선수가 온몸의 근육이 위축되는 병에 걸렸다는 게. 아마도 그 병에 그의 이름을 딴 건 그런 아이러니 때문이지 않을까? 1938년, 2000경기 연속 출전 기록을 세운 해에 팀의 우승을 이끌었지만 이듬해에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긴 걸 느꼈고 시즌이 시작하자 항상 3할 이상이던 타율이 1할대로 떨어졌대. 매 년 내신 1등급이던 학생이 갑자기 반 석차 40위권으로 떨어진 거지. 그래서 2130경기 출전 후 스스로 연속 경기 출전을 포기했어. 그 날 그는 4타수 무안타, 그러니까 4번 타석에 들어서서 한 개의 안타도 기록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자신이 팀에 공헌을 하지 못한다고 느꼈던 거 같아. 어쨌든 그 해에 결국 은퇴까지 하게 됐지. 그 때 소속팀이던 양키즈는 그의 등번호인 4번을 영구결번 선언하는데 이게 메이저리그 최초의 영구결번이야. 앞으로 자기네 팀에서 루 게릭 이외의 4번은 없을 거라는 의리 선언인 거지.

그럼 은퇴하고 나서 그 사람도 얼마 못 살았어? 그래도 철마라고 불리던 사람인데.
발병 자체는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지만 은퇴 후에는 2년 동안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어. 어차피 지나간 일에 가정법이라는 건 무의미할지 모르지만 그가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메이저리그 역대 기록 순위는 많이 바뀌었을지도 몰라. 1995년 칼 립켄 주니어에 의해 연속 출전 기록이 깨지지 않았을지 모르고, 현재 메이저리그 역사상 25명밖에 없는 500홈런 기록자가 될 수 있었을지 몰라. 7개만 더 치면 됐거든.

얘기 들어볼수록 딱하네. 그렇게 병 때문에 야구를 그만뒀으니 원망도 많았겠다.
물론 마음이야 편치 않았겠지. 하지만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어. 최고의 성적을 올리는 선수인데다가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이었거든.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심지어 얼굴도 상당히 잘생겼어. 이렇게 얘기하니까 조금 ‘열폭’할 거 같긴 한데 어쨌든 아까 개근상에 성적도 좋은 학생이었다고 했잖아. 그런데 심지어 진짜 모범생이기까지 했던 거야. 자신감과 잘난 척을 오가던 베이비 루스와는 달리 겸손하고 팬들의 사랑에 감사할 줄 알았지. 그가 은퇴식에서 했던 “오늘,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라는 말에서 그가 원망보단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라운드를 떠났다는 걸 알 수 있어. 그래서 그의 이름은 루게릭병뿐 아니라 그라운드 안팎에서 모범을 보이는 선수에게 수여하는 루 게릭 상을 통해서도 남게 됐지.

그런데 정말 네 말대로 얘기를 들을수록 우리 명민좌랑 되게 이미지가 많이 겹친다. 항상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면서 작품 활동 꾸준히 하고, 카메라 안팎에서 모범적인 모습만 보여주고.
실력에 비해 상복이 없다는 것도 비슷해. 비록 두 번 MVP를 차지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홈런, 타율, 타점 1위로 트리플크라운을 기록한 1934년을 비롯해 한 두 번은 더 MVP를 받아야 했다고 말하거든.

그래도 김명민에 비하면…
그래도 뭐? 내 입으로 적어도 루 게릭은 MVP를 공동수상하진 않았다는 걸 얘기하라는 거야? MVP 루 게릭 외 1명, 이런 식으로? 나는 간이 작아서 그런 얘기 못해, 암.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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