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에서 본 신하균의 얼굴엔 주름이 많았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어린 북한군의 얼굴에 10년이 넘는 시간이 고스란히 새겨졌다는 뜻은 아니다. 특유의 시원한 미소를 지을 때마다 얼굴의 주름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 웃음을 위해 봉사했다. 그는 대화 종종 선하게 웃었고, 비오는 야외에서의 촬영도 한 순간의 찡그림 없이 선선히 승낙했다. 마치 본래 가지고 있는 표정은 미소 밖에 없는 것처럼. 착한 사람은 재미없다. 하지만 특별 출연한 <친절한 금자씨>를 비롯해 <웰컴 투 동막골>과 <박수칠 때 떠나라>로 한 시즌의 극장가를 통째로 접수할 정도로 엄청난 스타 파워를 보여줬던 배우가 한 줌 가식 없이 선한 모습을 보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다음은 너무 모범적이어서 흥미로웠던 그와의 대화 기록이다.

MBC <좋은 사람> 이후 6년 만에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에 출연한다. 가장 큰 계기가 뭔가.
신하균
: 대본이 재밌었다. 파격적으로 신선한 건 아니지만 요즘 드라마 형식과 다른 새로운 면이 있다. 서스펜스와 스릴러, 코미디가 잘 섞였다. 또 내가 맡은 오복규는 굉장히 밝고 긍정적인,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다. 엑스트라 배우일 뿐이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산다. 그런 젊은이가 엄청난 액수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접근해 오지만 본인은 정작 유산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음모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말려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위기일발 풍년빌라>의 복규는 상황이 주는 웃음으로 코미디를 표현한다”

얘기만 들으면 캐릭터 자체는 웃기지 않을 것 같다.
신하균
: 그래도 약간은 코믹한 면이 있다.

영화에서처럼 과장된 연기가 있는 건가?
신하균
: 어느 정도는 그런 게 필요하다. 그렇다고 개인기를 부리거나 그런 건 아니다. 상황이 주는 웃음이 워낙 많으니까.

한쪽에 <화성으로 간 사나이>의 승재가 있고 반대쪽에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가 있다면 오복규는 어디에 더 가까운 인물인 건가.
신하균
: 굳이 따지면 후자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물론 그 캐릭터 그대로는 아니다. 정서적으로는 굉장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다만 상황에서 오는 느낌들을 1.5배 정도 과장되게 표현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거 같다.

이런 걸 묻는 건 당신은 멋지고 전형적인 연기보단 과장적인 연기를 할 때 더 평가가 좋기 때문이다. 가령 수재에 여자에게 인기 많은 역을 맡았던 <좋은 사람>의 경우 시청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신하균
: 그런 거 하면 안 되겠다. (웃음) 나란 사람이 그런 인물과 멀어서 그런지, 좀 모자라고 주변에 여자도 없을 거 같고 도와주고 싶은 인물을 연기해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럴까? 그 당시엔 연기 잘하는 배우를 넘어 훈남 이미지까지 있었던 것 같은데.
신하균
: 왜 과거형인가. (웃음)

사실 지금도 멋있다. <박쥐> 때도 느낀 게 무대인사 할 때는 정말 댄디하고 멋진데 영화에선 입에서 물 토하는 모습이 너무 어울린다. (웃음) 그래서 자신 본래의 모습에서 탈피하는 연기를 즐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신하균
: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처음 연극할 때부터 그런 인물을 많이 했었다. 또 그렇다고 그걸 고집하는 것만은 아닌데 함께 작업하는 감독들이 그런 모습을 좋아하는 거 같다. 박찬욱 감독도 내 그런 모습을 강우라는 캐릭터로 연결시킨 거고. 일단 나는 특별히 뭔가를 가리는 것 없이 감독들의 취향을 따르는 것 같다.

“어떤 작품, 감독이건 거기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감독에 따라 연기 편차가 큰 것 같다. 장진과 박찬욱 등을 만날 때와 다른 감독을 만날 때와 다른 감독을 만날 때 연기의 힘이 다르다.
신하균
: 그런 거 많이 타는 거 같다. 나는 다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그렇다.

감독의 디렉션대로 가는 타입인가.
신하균
: 어떤 방향인지에 대한 가이드는 받지. 그런데 그런 역할일수록 감독들이 많이 열어주시는 편이다. 이건 이거라고 단정 짓진 않으시니까. 그렇다고 내가 내 고집대로 ‘저는 이렇게 갈 거예요, 감독님’ 이렇게도 안 하고.

연기 잘하는 배우는 에고가 강하다는 선입관이 있는데 좀 유연한 거 같다.
신하균
: 어떤 작품을 만나건 감독을 만나건 거기에 맞는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많이 비워두려고 한다. 평상시 내 모습 자체가 특별하지 않다. 내 캐릭터가 너무 강하면 새 정체성이 들어오기 쉽지 않을 거 같은데 항상 이렇게 비워놓으니까 이상하거나 새로운 캐릭터를 오히려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게 좋은 결과로 나왔던 경우는 궁합의 문제겠지. 작품과 감독을 통해 더 좋은 효과가 나왔던 거 같다.

그런 면에서 <카페 느와르>에서 정성일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장진 감독의 연극적 요소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었던 평론가였는데 당신의 장진적, 혹은 연극적인 면과 충돌하진 않았나.
신하균
: 처음에 걱정은 있었다. 감독에게도 솔직히 말씀드렸는데 예전에 평론을 쓰신 거 보면 잘 못 읽겠더라. (웃음) 난해하게 쓰시지 않나. 내 지식이 짧아서 그런지 몰라도 끝까지 본 평론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혹시 작품도 난해하게 진행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촬영할 땐 오히려 알기 쉽고 친절하게 진행하셨다. 대신 대사에 문학 작품에서 인용된 글이 많은데 그런 문체를 다 살리고 싶어 하셨다. 일반적인 말투는 아니다. 그게 좀 힘들었다. 하지만 그게 또 영화의 색깔일 수도 있고. 결국 리얼리티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된 거 같다. 그냥 자연스러운 게 리얼리티인가, 아니면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이런 형식을 통해 이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리얼리티인가. 그런 쪽으로는 많이 열어두려고 한다.

그런 비어있음을 배우로서의 가치관으로 생각해도 될까.
신하균
: 음… 그렇다. 배우로서 나만의 색깔이 그런 거 같다. 가치관이라고 하긴 거창하고.

거창한 말 싫어하는 거 같다. 배우의 혼이나 이런 거.
신하균
: 어휴, 안 좋아한다. 연기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런 거.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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