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너도 어릴 때 싸움 좀 해본 적 있어?
싸움? 하… 공식적인 지면에서 이런 얘긴 안 하고 싶었지만 내 이 두 손이 키보드 자판 두드리는 데만 전념하기 전에는 항상 누군가의 피로 젖어 있었지. 한 때 왕숙천 근처 굴다리에서 17 대 1로… 휴우, 여기까지만 할게.

풉, 역시 예상했던 반응인데? 남자들은 싸움 얘기만 나오면 하나 같이 뻥이구먼.
예상이라니. 나 말고 또 누구한테 물어보기라도 했다는 거야?

이번에 ‘남자의 자격’ 보니까 아저씨들이 어릴 적 싸움 얘기를 하는데 완전 말도 안 되는 뻥만 날리던데? 김태원 아저씨는 종로의 짱이랑 광화문 사거리에서 싸웠다질 않나, 김국진은 소를 한 방에 잡았다고 그러고.
야, 그런 아저씨들 허세랑 비교하면 안 되지. 내가 진짜 이런 것까진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응, 말하지 마.
넵.

그런데 진짜 싸움의 기술이란 게 있긴 해? 저번엔 김신이랑 채도우 싸운 것 설명해주면서 실전 싸움이랑 정통 격투기랑 비교했었잖아.
그렇긴 한데 사실 싸움의 기술이 오랜 시간 쌓여서 매뉴얼화 된 게 복싱, 유도, 태권도 같은 무술이거든. 그래서 실전 싸움 잘하는 법을 인터넷에서 물어보는 것보다는 어느 도장이나 체육관을 다니면서 꾸준히 운동하는 게 제일 나아.

그렇다고 모두가 도장이나 체육관을 다닐 수는 없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번 ‘남자의 자격’처럼 몇 가지 호신술을 원 포인트 레슨으로 받는 경우도 있지. 그리고 네가 몰라서 그렇지 이 날 아저씨들이 허풍을 떨면서도 제법 실전에 도움 되는 기술들을 보여줬어.

엥? 무슨 소리야. 완전히 순 허세던데.
내가 하나하나 설명을 해줄게. 멤버들이 펀치 머신 치는 것에서도 주먹 쓰는 법에 대한 다양한 힌트가 있어요. 그 장면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한 손으로 한쪽 손목을 쥔 상태에서 치잖아. 왜 그렇게 치면 점수가 잘 나올까?

당연히 두 손으로 치는 게 한 손으로 치는 것보다 셀 거 아냐.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두 가지 면을 주목할 수 있어. 우선 손목. 한 손으로 다른 쪽 손목을 잡고 치면 손목이 흔들리지 않거든. 그건 주먹다짐에서 손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거야. 펀치란 건 결국 팔을 통해 전달되는 힘이 주먹까지 가는 건데 그 때 팔과 주먹을 잇는 손목이 흔들리면 힘 전달이 제대로 안 될 거 아냐. 또 손목의 건(腱)이나 인대가 약하면 꺾이거나 부러질 수도 있고. 실제로 데니스 강 같은 격투기 선수도 시합 중에 주먹을 날리다 손목을 다친 적이 있어. 그래서 복싱 선수들은 내가 저번에 얘기했던 리스트 컬로 손목을 강화하는 경우가 많아. 영화 <싸움의 기술>에서 나온 빨래 짜기 같은 경우도 손목과 팔의 전완근을 강화하는 좋은 훈련이고.

그럼 또 다른 하나는?
바로 허리야. 한 손으로 손목을 잡은 자세에선 팔을 굽혔다가 내지르기 어렵기 때문에 그 자세 그대로 허리만 돌려서 치게 되거든. 이경규랑 비교하면 빠르겠다. 이경규를 보면 두 손을 이용하면서도 다른 출연자에 비해 허리 회전이 거의 없이 일자로 주먹을 내질렀잖아. 그래서 파워가 떨어지는 거야. 실제로 직선으로 주먹을 뻗는 기술인 스트레이트와 팔을 ㄱ자로 굽힌 상태에서 허리 회전으로 치는 훅을 비교하면 파워에선 훅이 앞서는 경우가 많아. 즉 그냥 팔 힘이 아닌 허리힘을 사용해서 주먹을 쓸 줄 알면 펀치력이 더 세지겠지. 물론 훅이 나올 때 스트레이트로 반격하는 기술 같은 게 있지만 거기까지 얘기할 거면 차라리 복싱을 배우는 게 나으니까 이 정도로만 할게.

어떤 얘긴지는 알겠는데 실제로 싸울 때 펀치 머신을 치는 것처럼 때릴 수는 없잖아. 상대방이 가만히 서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한데 실제 사람과 싸울 때의 방법도 다 나와. 매트 위에서 멤버들끼리 타격을 금지하는 대신 넘어뜨리고 꺾는 게 가능한 룰로 몸싸움 하는 거 봤지? 그런 걸 흔히 그래플링이라고 하는데 최근의 종합격투기에선 타격만큼 중요한 요소야.

그렇다고 멤버들이 그래플링인지 뭔지를 잘 하는 건 아니잖아.
모르는 소리. 처음에 윤형빈이 이정진 다리를 붙잡고 넘어뜨리는 거 봤지? 그게 바로 테이크 다운이라는 건데 서있는 자세에서 그라운드, 그러니까 누운 자세로 유도해서 그래플링 기술을 걸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야. 그렇게 테이크 다운에 성공해서 상대방 위에 올라타면 효도르처럼 상대방 얼굴에 펀치를 날릴 수도 있고, 노게이라처럼 암바를 걸 수도 있거든.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넘어지던 이정진이 바로 몸을 돌려 오히려 윤형빈을 깔아 뭉겠잖아. 그게 바로 롤링, 말 그대로 몸을 돌려서 포지션을 유리하게 변경하는 기술이야. 거기다가 그렇게 몸이 엇갈린 상태에서 윤형빈을 압박하면서 목을 조르잖아. 그게 최근 종합격투기에서 주목받는 남북 초크라는 기술과 굉장히 유사해.

그 둘은 좀 젊어서 그렇다고 치고, 나이 먹은 멤버들은 그냥 몸 개그만 하던데?
아니야. 오히려 정말 야비하면서도 실전적인 기술들은 김태원이 다 보여줬어. 이경규랑 싸울 때 시도했던 발 밟기는 실제 UFC 선수들이 몸과 몸이 얽힌 클린치 상황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술이야. 그리고 이경규가 뒤로 넘어지자 바로 쫓아가서 팔꿈치로 눈을 찌르는 건 격투대회에서도 금지시킨 정말 무시무시한 기술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낭심 때리기를 피도 눈물도 없이 쓴다는 건 정말 무서운 거야. 그 근육질 거인인 밥 샙도 경기 중에 상대방 무릎에 낭심을 맞고 눈물을 흘렸다니까. 이번 ‘남자의 자격’은 사실 개그를 가장한 실전 잔혹 테크닉의 장이었던 거야. 알고 나니까 무섭지?

별로 그렇진 않은데 네가 굴다리에서 17 대 1로 싸웠다는 얘기보다는 믿을만하다.
하아… 또 그러네. 정말 나의 어두웠던 과거를 다시 한 번 기억 저편에서…

너 그러다 또 인증 얘기 나온다?
꺼내고 싶지만 내가 주먹을 쓸 수가 없어요, 이젠. 왼손모가지는 좋은 일에만 쓰기로 하고, 오른손목은 마우스 때문에 관절염 생겼잖아. 그 눈빛은 뭐야? 너 그렇게 신뢰가 없으면 사회생활 피곤하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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