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예견된 이별인지라 마음의 준비는 해두었는데도 막상 떠나시고 나니 아쉽고 또 아쉽네요. 실은 공주님(박예진)께서도 많이 서운하셨지요? 유신랑(엄태웅) 그가 얼마나 눈치 없고 무심한 인물인지야 익히 알고 계셨겠지만 그렇게까지 잔인무도하게 직설적일 줄은 아마 짐작도 못하셨지 싶어요. 그날 유신랑의 읍소를 듣는 순간 저도 제 귀를 의심했답니다. “이제 공주님을 곁을 지켜드리지 못합니다. 덕만이와 함께 떠나겠습니다. 덕만을 지켜주고, 덕만을 살펴주고, 덕만을 아껴주고 싶습니다”라니요. 유신랑 스스로가 자신을 ‘마음과 다른 일은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했지만 이건 솔직하고 안 하고의 문제는 아니지 않나요? 공주님 앞에서 “공주님의 화랑이 되겠습니다. 대신, 저의 용화향도의 주인으로서 더 이상 울지 마십시오”라 했던 충심어린 맹세는 대체 어디 갔냐고요. 그때의 당차고 믿음직스러운 유신랑(이현우)의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하거늘 어찌 공주님 가슴에 이처럼 비수를 박을 수 있답니까. 일개 필부라면 또 모르겠습니다. 대의를 목숨보다 중히 여겨야 옳을 화랑도가 그 무슨 망발이냐고요. 게다가 그렇게 덕만과 떠나버리고 나면 그를 따르던 용화향도와 가야유민은 어쩌라는 건지 원.

유신랑이 괘씸한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사실 저는 나라와 민족보다는 저와 제 가족의 안위가 우선인 속물 중의 속물이랍니다. 물놀이 가는 아들아이를 붙잡고 ‘설사 절친이 변을 당했다 해도 네 수영 실력만 믿고 물에 뛰어들 생각은 절대 하지 마라’ 당부의 당부를 거듭하고, 뉴스에서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승객을 구해낸 선행을 접했을 적에도 ‘너는 사대독자라서 저러면 안 돼, 알지?’하고 다짐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엄마거든요. 따라서 위인전에 실린, 차라리 내 손에 죽는 게 낫다며 처자식을 베어버리고 전장으로 향하는 계백장군의 일화에 감동하기는커녕 어이없어 하는 축이지만, 사랑 쫒자고 신의를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유신랑의 행보는 더더욱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 팔랑개비만도 못한 유신랑의 맹세를 믿고 수년간 해바라기 해온 공주님이 어찌나 가여운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실 유신랑만 나무랄 일도 아니지요. 평생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줘야 마땅할 아바마마(조민기)조차 공주님을 지켜주지 못하는데 생판 남인 유신랑에게 대체 누가 책임을 물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번 비보를 들으신 어머니 마야부인(윤유선)께서 이리 탄식하시더군요. 왕좌를 버리고 신국을 미실(고현정)에게 넘겨주었으면 되는 일이라고요. 그러게요. 아버지께서 왕좌에 연연하지 않으셨다면 핏덩어리에 불과한 딸을 버리실 일도, 그리고 공주님께서 꽃 같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버리실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

공주님, 왜 이리도 박복하신가요

왕의 자리와 황후의 자리가 무에 그리 중하다고 자식들을 사지로 내몬답니까. 일찍이 미실이 공주님의 남동생들이 줄줄이 세상을 떠나는 걸 두고 공주님께 ‘너 때문이다’라고 했지만, 이 모든 비극들이 실은 죄다 공주님의 아버지 때문이 아닐는지요. 가만 보면 공주님처럼 박복한 여인네도 드물지 싶어요. 어디 하나 기댈 곳 없는 처지에 그나마 유신랑에게 마음을 주고 의지하다가 뒤통수를 맞은 꼴이잖아요. 더구나 하필이면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들고 상심한 날 세상을 떠나게 되시다니요. 게다가 어린 나이에 남편 용수공(박정철)을 미실의 흉계로 잃고 어렵사리 얻어 남몰래 키운 아들 춘추(유승호) 또한 안전을 위해 품안에서 떼어 놓아야 했거늘 그 아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야 했으니 그 심정이 오죽 하시겠어요. 그런데요. 마지막 순간까지 어리고 나약한 아들 걱정에 차마 눈을 감지 못하시는데도 유신랑은 ‘걱정 마시라, 제가 보호해드리겠다’라는 소리 한 마디를 안 하더군요. 역시 목에 칼이 들어온대도 마음에 없는 소리는 못하겠는 모양입니다. 에고 미욱하여라.

허울이 좋아 공주지 평생을 한시 반시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하셨을 공주님, 떠나면서도 나라 걱정에, 동생 걱정에, 아들 걱정에 가슴을 졸이셨을 공주님, 이제 공주님이 남기신 한 점 혈육 춘추공은 우리가 잘 돌볼 테니 부디 유신랑 따위는 잊고 그곳에서 좋은 짝 만나 행복하세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여인으로 사랑받는 공주님을 뵙게 되면 좋겠습니다. 찾아보면 알천랑(이승효) 같이 듬직하고 융통성 있고 정의로운 남정네가 그곳에도 분명 있겠지요? 이번엔 반드시 유신랑 말고 알천랑 같은 이를 택하도록 하세요! 아셨죠?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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