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그만두고 고생이 많네. ‘후리’ 아무나 하는 것 아니에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퀴즈 프린스’에서 오답을 말해 거품에 빠졌던 박지윤 전 KBS 아나운서에게 김구라는 놓치지 않고 독설을 날렸다. 하지만 현재 케이블 채널 Mnet의 <와이드 연예 뉴스> 단독 MC로 안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박지윤의 프리랜서 도전은 성공적이다. 그녀의 프리 선언은 단순히 월급보다 높은 개런티를 받기 위한 포석이 아닌 말 그대로 아나운서라는 제복을 벗고 좀 더 자유로운 활동을 하기 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KBS 있을 때도 아나운서여서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은 없었어요. 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맞는 사람이 되길 바랐을 뿐이죠.” 그녀의 말처럼 아나운서 시절 박지윤은 KBS <스타 골든벨> ‘아나운서 특집’에서 연인인 최동석 아나운서와의 닭살 행각을 솔직하게 밝히는 등 어떤 지적 엄숙주의와는 거리가 먼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와이드 연예 뉴스> 진행 때문에 최신 가요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접하다가 아이돌에 흥미를 느끼고, ‘우영이의 사인 CD를 받았다’며 2PM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모습은 전 아나운서라는 직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어색하지 않다.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낸다는 건 취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굉장히 웃기거나 엄청나게 슬픈 영화가 좋고, 싫어하는 음악을 듣는 건 스트레스’라고 분명히 밝히는 타입이다. 그래서 그녀가 추천하는 남자 보컬이 매력적인 사랑 노래는 ‘당연히 여자 입장에선 남자 보컬의 노래가 강렬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그녀의 취향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사실 어떤 추천이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취향의 보물 상자에서 꺼낸 것일수록 빛나는 법이다.

1. Antonio Banderas의
“저는 담백하고 수수한 노래보단 좀 묵직하고 윤기 있는 곡을 좋아해요. 안토니오 반데라스 같은 경우 몸매도 그렇고 목소리도 좀 기름지잖아요. 그가 부른 ‘Beautiful Maria Of My Soul’은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 정말 일품이죠.” 박지윤이 선택한 첫 번째 곡은 영화 <맘보 킹>의 수록곡인 ‘Beautiful Maria Of My Soul’이다. 스페인 출신의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이 작품을 통해 헐리웃에 입성하고 이후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데스페라도> 같은 작품을 통해 브래드 피트와 함께 헐리웃 최고의 섹시 스타로 각광받았다. 그가 직접 부른 ‘Beautiful Maria Of My Soul’은 쿠바의 맘보 열풍을 소재로 한 <맘보 킹> 안에서도 대표적인 곡으로 꼽힌다.

2.
‘정말 특이하게도 남자 테너들의 오페라 아리아나 뮤지컬 삽입곡을 평소에 부르는’ 최동석 아나운서 덕분에 호세 카레라스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에 익숙해진 그녀가 고른 두 번째 곡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수록된 ‘All I Ask Of You’다. “(최동석 아나운서와) 처음 데이트를 시작할 때 ‘너에게 전하고 싶은 내 마음’이라며 PMP로 ‘All I Ask Of You’의 뮤직비디오를 보여줬어요. 그렇게 인연을 맺은 곡인데 나중에 둘이서 KBS 송년특집 음악방송에서 같이 부르기도 했어요.” 그녀의 말대로 ‘내가 네 옆에 있으니 아무것도 널 해칠 수 없으리라. 나의 속삭임이 널 평온하게 할지니. 날 사랑하라. 이것이 내가 네게 바라는 모든 것이다’ 같은 가사만큼 시작하는 연인에게 어울리는 어휘들을 찾긴 어려울 것이다. 물론 바로 해석이 가능한 커플의 경우에 해당되는 사항이겠지만.

3. Paul McCartney의
“보통 KBS에 입사하면 1년 동안 지역 근무를 해야 해서 1년 동안 부산에서 월드 뮤직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서울처럼 작가가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제가 직접 음반 찾고 선곡해야 하면서 음악을 많이 알게 됐어요. 그때 비틀즈 특집을 하면서 전집을 들었어요. 그 폭넓은 스펙트럼 중 유독 감미로운 ‘And I Love Her’가 참 좋아요.” 거의 모든 뮤지션들이 툴툴거리는 이유지만 70년대 이후의 록음악은 비틀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Come Together’의 그루브나 ‘Get Back’의 질주감, ‘Helter Skelter’의 파괴력을 떠올려 보라. 그것은 서정성에서도 마찬가지다. 박지윤이 고른 ‘And I Love Her’는 비틀즈의 서정적 곡 중에서도 어쿠스틱 기타의 전주가 더없이 아름다운 곡이다. 폴 매카트니의 가성도 몽환적이면서 감미롭다. 특히 봉고를 이용한 라틴 비트의 차용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같은 뮤지션이 이 곡을 리메이크한 이유를 짐작케 한다.

4. Elvis Costello의
“<노팅힐>은 여태 살면서 저 혼자 본 유일한 영화에요. 대학교 때 계절학기 듣기 싫어서 수업을 땡땡이쳤는데 할 게 없어서 이 영화를 봤어요. 엄청나게 후회했죠. 극장 안이 다 연인뿐이더라고요(웃음). 영화 마지막에서 임신한 안나(줄리아 로버츠)가 윌리엄(휴 그랜트)의 다리를 베고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오면서 엘비스 코스텔로의 ‘She’가 흘러나와요. 제가 꿈꾸는 결혼의 가장 이상적인 장면 같아요.” 만약 감미로운 ‘She’를 통해 처음으로 엘비스 코스텔로를 접한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는 섹스 피스톨즈와 레이먼즈 같은 밴드들과 함께 영국 펑크록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펑크와 뉴웨이브 등 영국을 물들였던 다양한 사조를 모두 자기 것으로 소화해 냈던 이 거장은 ‘She’를 통해 얼마든지 서정적인 멜로디를 뽑아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며 한 번 더 자신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자랑했다.

5. Elvis Presley의
“어떤 영화인진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어릴 적 <주말의 명화>에서 서로 사이가 안 좋아졌던 부부가 거실에서 춤을 추며 화해하는 장면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걸 들었어요. 그때부터 이 곡이 굉장히 낭만적으로 느껴진 것 같아요.” 그녀가 본 영화의 정체는 결국 알아내지 못했지만 이 영화가 처음으로 삽입된 엘비스 프레슬리 주연의 <블루 하와이> 이후 다양한 리메이크 버전이 역시 다양한 영화에 삽입됐다. 그만큼 ‘사랑에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가사와 조금은 느끼할 정도로 감미로운 멜로디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곡이다. 특히 우리에겐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마지막 회에서 삼순(김선아)이 진헌(현빈)을 위해 피아노로 연주한 버전으로 더 익숙할 것이다.

“자유롭게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

“예전엔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도 그게 KBS의 입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굉장히 부담스러웠어요. 지금은 제 생각을 온전히 밝힐 수 있을 거 같아요. 물론 그만큼 모든 책임은 제 것이 되겠지만 좀 더 자유롭게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잖아요.” 그녀의 말대로 자유라는 것은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이다. 김성주도, 강수정도, 신영일도 모두 그 길을 향해 떠났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배신의 아이콘’이, 누군가는 ‘파괴의 여왕’이 됐지만 그 길은 단순히 프로그램의 수나 시청률 성공 여부로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껴안는 것이 바로 프리이기 때문이다. 박지윤 역시 그 말의 무게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은 프로그램을 맡든, 반대로 슬럼프를 겪든 그녀는 지금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잃지 않을 것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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