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찾아오는 생일을 쿨하게 “그깟 생일”이라고 넘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특히나 그 생일이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스물아홉이라면, 거기다가 실연과 좌천이라는 폭탄까지 덤으로 얻었다면 아무리 쿨한 사람이라도 결코 그 슬픔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뮤지컬 <싱글즈>는 ‘고객님을 위한 모닝콜 서비스’로 눈을 뜨고, 생일날 청혼 대신 이별을 선물 받고, 본인의 의견이 상사의 의견으로 탈바꿈되는 이 세상 스물아홉들에게 보내는 연서다.

장진영, 엄정화가 출연했던 6년 전 영화 <싱글즈>가 ‘싱글’의 일과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면, 뮤지컬 <싱글즈>는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포커스를 맞췄다. 나이를 극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나이 드니까 이제 귀도 잘 안 들리냐” “2년 전만 해도 꿈이 있었지”라는 대사 등을 통해 뼈에 사무칠만한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공감대의 많은 부분은 배우들의 충실한 감정표현에서 더더욱 빛을 발한다. 배우들은 영화 속 내용을 충실히 재연하면서도 춤-노래-연기가 삼위일체 되는 뮤지컬의 특성상 한 가지 감정을 다양한 방법으로 극대화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흔든다. 초반 지훈(김영환)과 나난(오나라)의 실연 에피소드에서는 슬픔과 분노를 오가는 사이코패스적인 연기에 호러풍으로 편곡된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노래가 가미되면서 나난의 절절한 감정을 더욱 부각시키는 식으로 말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앙상블

스크린 속 이야기가 무대 위로 옮겨오면서, 캐릭터들의 면면이 좀 더 현실적이고 디테일하게 수정되었다. 나난 역의 오나라는 오랜 시간 동안 스물아홉 여자의 마음을 그린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 출연해왔던 탓인지, 이보다 더 적확한 캐스팅을 찾을 수 없어 보인다. 적당히 분노할 줄 알고, 또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그녀의 모습은 그 모습 그대로 사무실 한구석에 앉아있는 여자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또한, ‘좋은 사람’ 정준(김도현)은 지혜(정경진)와의 숨겨진 에피소드를 통해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준비해온 멘트조차 제대로 읊어내지 못하는 모습으로, 어눌해도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을 그려낸다. 영화에 비해 정준을 진심으로 사랑한 것 같은 동미(임진아)의 캐릭터 변화는 다소 아쉽지만, 이들의 끈끈한 앙상블로 희석된다.

이번 <싱글즈>는 그동안 계속되었던 중극장을 벗어나 소극장으로 옮겨오면서 배우들 간의 밀도가 더욱 단단해졌다.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 같은 동미와 정준, 그리고 그 안에서 둘을 중재하는 나난은 그야말로 평상에 누워 수박 서로 먹겠다고 으르렁거리는 친구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그런 앙상블이야말로, 이 극을 현실로 만드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초연멤버 오나라, 구원영, 백민정, 김도현, 서현수의 공연은 8월 12일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슬퍼하진 마시길. 이후 <돈 주앙>의 마리아 안유진, <자나, 돈트!>의 백치미 캔디 우금지, <쓰릴 미>의 매력적인 ‘그’ 김동호, <내 마음의 풍금>의 훈훈한 선생님 성두섭이 합류해 오픈런으로 계속될 예정이다.

사진제공_악어컴퍼니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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