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드라마라고 해서 꼭 엄숙하고 치열한 법의 심판을 그려야한다는 법칙은 없다. <앨리 맥빌>처럼 장난 같은 변론으로 법정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는 변호사들이 등장할 수도, <클로즈 투 홈>처럼 때로는 불가사의하기까지 한 여검사의 활약에 대해 묘사할 수도 있다. 물론 <보스턴 리걸>처럼 정통 법정 드라마의 정수를 살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법정이라는 배경 안에 박제된 것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 아닐까? KBS <파트너>는 평이하고, 충분히 예상 가능한 캐릭터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드라마다. 악바리 근성을 가진 정의의 여주인공, 바람둥이지만 마음만은 선한 남자 주인공, 그리고 어두운 과거와 상처를 지닌 주변 인물들까지. 자주 보아왔던 이들의 조합은 역시나 예상가능하게 작은 로펌과 거대 로펌의 대립을 뼈대로 악인과 선인의 대결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 회, 한 회 계속되면서 등장인물들의 진심을 조금씩 그려내고 있는 <파트너>를 윤이나, 김교석 TV평론가가 변호 혹은 반론했다. /편집자주

큰 중심 줄거리가 있고 사건들이 개별 에피소드로 진행되는 형식 때문에 KBS <파트너>는 미드에 비교되지만, 사실 <파트너>는 미드보다는 전설의 형사물이었던 MBC <수사반장>에 가까운 드라마다. 한국형 법정 드라마를 표방한 <파트너>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사건의 해결 자체가 아니라, 이를 통해 ‘서류’가 아닌 ‘인간’의 얼굴을 보고, 그들의 개별적인 상처를 어루만지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사건들 모두에 공통적으로 한국 특유의 ‘가정사’가 얽혀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복남매 간의 사랑, 남편의 불륜으로 인해 살인교사까지 저지르게 되는 아내, 매 맞는 아내,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아들과 함께 대안공동체를 이루고자 한 꿈을 잃게 된 어머니까지, <파트너> 속 모든 사건들은 필연적으로 가족과 연결되어 있다.

일하는 변호사가 만드는 한국형 법정 드라마

<파트너>가 그리는 법원이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냉철한 법적 판단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기보다는, 딸
은 잃었지만 아들은 잃지 않길 원하는 아버지의 눈물 섞인 고백이 연출되는 장이며, ‘가족을 위하여’라는 목적 아래 순간이나마 재벌권력에 맞서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곳이다. <파트너>를 이끌고 가는 주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가족과 관련한 트라우마를 하나씩 끌어안고 있고, 평소에는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예측 불가능한 행동이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도 역시 가족이다. 언제나 강하고 당당한 영우(최철호)에게서 ‘엄마를 보기 싫어하는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나서야, 자신의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정원(이하늬)처럼, 개인적인 상처의 치료 역시 가족과 관련한 과거의 상처를 감싸 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결국 남은 4회 동안 강은호(김현주)-이태조(이동욱) 변호사 파트너가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서로의 가족을 피해자-가해자로 두고 있는 사건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가족’이라는 코드 속에는, 법률 드라마의 한 축을 지탱해야 하는 이성을 상실할 수도 있는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다. 사건을 바라볼 때 사실에 입각해 진실에 다가서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어느 한 쪽을 편들게 만드는 것이다. <파트너>는 사건에 더욱 집중하는 방식으로 이 위험성을 정면 돌파한다. 대개 3회 분량으로 각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파트너> 속 변호사들은 사랑 놀음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비록 우연에 기대고 있지만, 그 ‘우연히 발견한 힌트’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줌으로서 사건의 해결이 거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또한 드라마를 이끌고 가는 핵심적인 사건 바깥에 법무법인 이김의 다른 인물들을 통해 저작권법 문제나 꽃뱀과 같은 사회 문제를 다룸으로서 드라마 전체를 보았을 때 빈틈이 드러나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 희미하게나마 이들이 직면한 마지막 사건을 향한 복선을 깔아두어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집중력을 높여간다. 사실 가족공동체의 평화를 깨뜨리는 악의 근원지로 자본, 정치, 법, 권력을 겨냥하는 <파트너>의 현실인식은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자칫하면 전형적이고 감정적인 법정 드라마로 전락할 수 있었던 <파트너>를 ‘한국형 법정 드라마’라고 부를 만 하게 만든 것은 새로운 현실 인식이 아니라, 주인공들을 진짜 ‘일하는’ 변호사로 만든 점에 있다.

<파트너>가 올라야 할 마지막 링

이제 <파트너>가 오르게 될 마지막 링은 결국 법정이다. 첫 회, 은호가 중학생들을 가르치며 링 안에서 말했듯이 서로를 마음껏 때리되, ‘글러브 끼고’ 때릴 수 있는 ‘합법적인 링’이 바로 법정이기 때문이다. 강은호와 이태조에게는 현실에서야 어떻든 적어도 극중에서만은 이들을 배반한 적이 없는 법이라는 글러브가 있고, 이제 그 글러브를 끼고 마지막 한 판을 벌일 일만 남았다. “삐뚤게 보고 의심하는 건 내가 할 테니까, 강변은 쭉 믿는 것만 해요. 우리 파트너잖아”라는 이태조의 말처럼, 삐뚤게 보고 의심하는 이태조가 직관적으로 사건의 본질을 간파해 나가는 동안, 강은호는 사람들을 믿어주고 진심을 표현함으로서 사건을 해결할 기회를 얻어왔다. 이 이상적인 태그팀이 마지막 싸움에서 어떤 방식으로 승리하느냐에 따라 <파트너>가 시즌2를 기대할 만한 ‘한국형 법정 드라마’로 남게 될지, 아닐지가 결정될 것이다.
글 윤이나

“재판은 법정 밖에서 결정되는 걸 모르니?” 국내 최대 규모의 대형로펌 해윤의 대표이사 이진표(이정길)가 법원에서 아들 이태조 변호사(이동욱)에게 던진 대사다. 아들을 나무라면서 이제 그만 고집부리라는 준엄한 꾸짖음. 안 그래도 검찰과 법에 큰 신뢰를 보내기 힘든 현 시국에 이 도발적인 준엄함은 소파에 축 늘어져 있던 시청자들을 발끈하게 만들었다. 악의 축이 비로소 명확해지는 순간. 대립구도는 명명백백해지며 왜 극중에서 군소 법률회사와 국내 최대 로펌이 형사소송에서 민사소송까지 연이어 맞붙는지 설명이 가능해졌다. KBS 의 갈등은 모두 한 가지 사건에서 출발한다. 천방지축 변호사 이태조와 시골에서 갓 올라온 초짜 아줌마 변호사 강은호(김현주)는 맡는 사건마다 해윤과 맞선다. 이 질긴 운명 뒤에는 국내 최대 기업 진성과 대형로펌 해윤이 손잡고 벌인 추악한 사건과 이를 무마시킨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단지 이 사건의 음모를 밝혀야 한다는 운명을 이태조는 알고 있고, 강은호는 아직 모를 뿐이다. 이런저런 사건을 하나둘 처리하면서 음모의 껍질이 하나씩 벗겨지고, 비밀과 상처가 서서히 드러난다. 그러는 사이 강은호는 소중한 사람들과 정의를 지켜야 하는 자신의 운명에 점점 다가선다. 처음부터 결말이 조각된 극본은 반복적으로 주요 등장인물의 내면에 자리한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영혼들의 해방구, 법정

고리타분한 갈등 요소인 재벌권력과 아버지의 부재. 그래서 에서 아버지와 형은 거대한 세력과 등가로 놓는다. 이태조는 아버지의 법칙에서 맞서 법조계의 야인처럼 살아간다. 아버지를 떠받든 이영우(최철호)는 겉으로는 냉철하지만 아버지의 그림자 속에 갇혀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유독 특이한 앵글로 훑듯이 보여주는 한정원(이하늬)은 그의 쌀쌀맞고 도도한 태도가 모두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로부터 기인했음이 알려지는 순간 가장 재수 없던 캐릭터에서 소박맞은 캐릭터가 돼 동정을 얻는다. 남편을 잃은 아이 딸린 과부 강은호는 이런저런 불우한 배경을 가졌음에도 가장 밝은데, 그녀에겐 아버지(그러나 한편으로는 불완전한 양아버지다)가 있다. 권희수 의원(김갑수) 에피소드에 이르러서는 존경할만한 아버지가 없다는 트라우마가 극명하게 드러나다 못해 폭발한다. 아버지의 부재라는 갈등요소는 진부하긴 하지만 는 이 때문에 상처받은 영혼들이 숨 쉴 수 있는 해방구로 법정이란 무대를 마련했다.

“근거 있습니까?”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적자생존의 세계. 법정은 앉은 자리에서 천당과 지옥이 나눠지는 살 떨리는 공간이자 “힘 있는 사람도 벌 받는 거 알죠”라며 아버지의 대리인인 형과 동등하게 서거나 벌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비록 패배를 맛보더라도 다른 곳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공방을 펼칠 수 있다. 이태조의 심문 끝에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교사를 한 정해숙(이혜숙)의 비리가 그녀가 믿고 심어놓은 증인의 증언으로 밝혀는 순간. 태조가 의기양양하게 지나간 옆모습 뒤로 미소를 띠는 증인의 얼굴이 보인다. 태조는 승리했다고 생각했지만 단지 놀아난 것뿐이었다. 찰나의 섬뜩함, 그 한 컷으로 반전을 만들었다.

판타지 법정 드라마로 끝맺을 것인가

그런데 맥 빠지게도 강은호와 이태조는 눈물과 마음으로 진실을 호소한다. 논리와 법리보다는 감성과 눈물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법무법인 이김의 대표 김용수(이원종)가 저작권법 위반 사례만 쫓는 윤준(김동욱)에게 “변호사로서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어요. 사회에 도움이 되는 변호사가 되세요”라고 충고를 내린 건 바로 이 착한 법정드라마의 좌표이자 교훈이다.

는 이처럼 법정보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인생사가 그렇듯 거대한 음모와 눈물 반대편에서 밝고 명랑한 코미디를 보여준다. 신이, 박철민, 김동욱의 코믹한 연기는 귀엽고 발랄하다. 주인공이 강철중의 여성버전이란 점도 순수함과 정의로움이 가득한 휴머니즘의 밝은 면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휴머니즘에 천착하다보니 극의 갈등구조와 인물을 그리는 방식이 새롭지 않고 선악의 구도도 너무 명확하다. 본격 법정드라마를 표방하고 있지만 법정드라마에 익숙한 갈등요소와 구조를 넣었다기보다 기존 드라마의 갈등과 구조에 법정을 얹은 꼴이다. 게다가 법리가 아닌 순수한 마음이 진실이고 승리한다는 너무나 착한 판타지로 귀결된다. 여담이지만 참여재판이 허용되었기에 비로소 이런 법정 드라마가 제작될 수 있었다. 그런 변화에 걸맞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앞으로 맞설 거대한 음모를 은호와 태조는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까. 결과는 뻔하겠지만 그 과정이 새롭길 기대한다.
글 김교석

글. 윤이나 (TV평론가)
글. 김교석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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