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2NE1이 외친다. 그들은 장을 보러 간 마트의 카트 위에 올라타고, 이동 중인 차 안에서는 그들의 다큐멘터리 Mnet <2NE1 TV>에 방송되지 못할 만큼 논다. ‘I don`t care’를 연습하는 도중에도 노래를 부르며 바닥에 드러누운 채 놀고, 무대 위에 올라가서는 “정신을 놓고 즐기느라 안무를 까먹을” 만큼 논다.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의 대표 양현석이 야심차게 기획하고, 프로듀서 테디가 음악을 조율하며, 빅뱅 오빠들이 응원하는 이 신인들이 마냥 노는 기분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2NE1 TV>에서 연습과 연습과 연습으로 가득한 생활을 춤추고 노래하고 수다 떠는 시간으로 바꾸는 2NE1은 30대가 된 왕년의 아이돌 가수의 팬들에게는 다시 만난 세계다. 3년 전만 해도 빅뱅의 데뷔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데뷔를 앞두고 늘 긴장 상태에 있던 빅뱅을 보여줬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게 막 데뷔한 아이돌의 정석이었다. 그런데, 15살의 공민지가 있는 2NE1은 데뷔 초부터 “놀자!”를 외치는 것이다.

힙합과 클럽 신, 대중들이 섞어놓은 아이들



첫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 긴장하는 대신 즉석에서 가슴을 튕기는 춤을 춰 안무를 바꿔 놓은 여성 아이돌 그룹. 공민지는 힙합 춤이 좋아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무대 위에서 춤을 추다 양현석에게 발견됐고, CL은 스스로 힙합 댄서들과 어울리며 춤을 배웠다. 필리핀의 스타이면서도 그저 YG의 음악을 하고 싶어 YG의 연습생이 된 산다라 박이나, 음악을 위해 혼자 미국에서 건너 온 박봄도 마찬가지다. 2NE1이 무대를 일터가 아닌 춤과 노래를 하는 놀이터로 생각할 수 있는 건, 그것들이 생활의 한 부분으로 체화됐기 때문이다. 아이팟으로 힙합 음악을 듣고, 스트릿 패션을 입고 살다 무대 위에서 ‘Fire’나 ‘I don`t care’ 같은 노래들을 부른다.

생활과 직업이, 직업과 유희가 연결되는 2NE1 멤버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여성 아이돌 그룹 시장에서 찾아낸 신기한 포지션의 실마리다. 2NE1은 여성 아이돌 그룹이지만 섹시함이나 귀여움을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고, 소속사의 오너가 멤버에게 ‘여자 대성’이라 놀릴 만큼 외모를 그룹의 성격에서 지워버렸다. 그럼에도 그들은 순식간에 음원 차트의 강자로 떠올랐고, 음반 판매량까지 높다. 그것은 그들이 여성 아이돌 그룹으로서의 콘셉트 대신 요즘 여자 아이들의 트렌드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데뷔 전 ‘여자 빅뱅’으로 소개된 것을 제외하면, 2NE1은 콘셉트가 없는 것이 콘셉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대신 2NE1은 지금 그들 또래가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라이프 스타일과 문화적인 코드를 자연스럽게 반영한다. YG의 1세대 아이돌이었던 원타임은 힙합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그들의 특징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원타임의 테디가 프로듀싱한 2NE1은 어떤 장르를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힙합과 레게가 클럽튠 안에서 만나는 ‘I don`t care’를 부른다. 그들의 패션도 후드티와 레고 인형, 타이트한 원피스와 반짝거리는 재킷이 섞인다. 2NE1은 좁게는 YG가, 넓게는 전세계 힙합과 클럽 신이 대중들에게 섞이고, 그 혼합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하는 세대의 아이돌 그룹이다.

아이돌의 세계에서 제 목소리로 노래하다



생활과 직업이, 직업과 유희가 연결되는 2NE1은 여성 아이돌 그룹 시장에서 찾아낸 신기한 포지션이다.
그들의 성패를 가를 분기점이었던 첫 미니음반의 타이틀곡이 ‘fire’가 아닌 ‘I don`t care’가 된 것은 그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룹의 이미지 메이킹만을 생각한다면, YG는 ‘Fire’에 더 힘을 실어야했을지도 모른다. 강한 비트와 멤버들의 퍼포먼스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Fire’는 2NE1의 색깔을 만들어내기에 좋은 곡이다. 반면 ‘I don`t care’는 퍼포먼스보다는 멜로디에 무게 중심이 쏠려 있다. 그러나 ‘I don`t care’는 오히려 ‘Fire’보다 더 혁신적인 곡이다. ‘I don`t care’는 한국의 주류 가요들이 강박적으로 보여주는 대중 구조를 떨쳐냈다. ‘I don`t care’에는 애써 클라이막스를 강조하는 감정 과잉의 후렴구도, 후반부의 클라이막스를 위해 곡의 전개를 억지로 끊고 집어넣은 브릿지도 없다. ‘I don`t care’는 처음부터 끝까지 레게리듬을 탄력 있는 힙합비트로 소화한 곡의 바운스를 끝까지 유지한다. 멜로디에서 리듬으로, 절절한 감성에서 고개를 까딱거리는 바운스로. 2NE1은 그 모든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노래한다. ‘네가 어디에서 뭘 하든 이젠 정말 상관 안 할 게 / 비켜줄래 이제와 울고 불고 매달리지마 / I cuz I don`t care’. 남자를 위해 무엇이 되려고도, 어떤 여성상이 되겠다고도 외치지 않는, 조금은 더 트렌디한 요즘 여자들.

물론, ‘I don`t care’나 <2NE1 TV> 속의 2NE1이 모두 기획사가 만들어놓은 콘셉트라고 할 수도 있다. 2NE1은 자유롭게 놀지만, 그 자유는 데뷔 초의 신인에게 빡빡한 스케줄 대신 아직 연습할 시간을 더 많이 주는 YG의 튼튼한 보호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I don`t care’에서 그들이 정해놓은 콘셉트의 아이돌이 아니라 요즘 여자가 되는 건 결국 그들의 목소리 때문이다. 15살의 나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공민지의 꾸밈없는 목소리와 그에 대비되는 박봄의 성숙한 목소리는 전화 받지 않는 남자들에게 신경 쓰고, 그러면서도 ‘I don`t care’라고 외치고 싶은 여성의 모습을 이입시킨다. 트렌드, 스타일, 콘셉트 같은 단어가 일상적으로 쓰이는 세계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 그대로 노래 부르는 아이들. 그것이 지금 2NE1이 보여주는 놀이의 근원일 것이다. 춤추고, 노래하고, 놀자. 2NE1도, 또래의 여자들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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