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가 선수 시절에 농구를 그렇게 잘했어?
잘했지, 엄청나게. 너도 대충은 알지 않아? 예전에 우지원이랑 이상민이 연세대에서 뛸 땐 농구장깨나 쫓아다녔다며.

그렇긴 한데 그 땐 오빠들 얼굴 보느라 경기를 제대로 못 봤단 말이야. 허재 같은 아저씨들은 더더욱 관심 없었고.
그런데 그 시절에도 관심 없던 허재의 농구 실력이 왜 궁금해진 건데?

이번에 ‘무릎 팍 도사’에 나오는 거 보니까 농구 천재, 농구 대통령, 농구 9단, 농구 황제라고 소개하더라고. 대체 얼마나 잘하면 그런 말이 나오는 건지 궁금해져서. 다른 선수 중에도 잘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 아니야.
그래, TV로 뭔가 보고 나서 묻는 거라고 예상은 했다. 네 말대로 허재 말고도 잘하는 선수들은 허재 이전에도, 허재와 동시대에도, 허재 이후에도 있지. 그것 때문에 스포츠 토론방에서 서로 심한 논쟁이 벌어질 때도 있고. 그런데 확실한 건 항상 그런 한국농구 최강자론이 나올 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허재가 항상 기준이 된다는 거야. 말하자면 다른 선수가 최고라는 걸 증명할 때도 ‘허재보다 이런 면이 뛰어나니 최고’라는 식이지.

그런 식으로 비교되는 선수들이 누구누구 있는데?
우선 ‘무릎 팍 도사’에서 나온 것처럼 허재 이전 세대에선 이충희가 있지. 그리고 역시 방송에서 라이벌이라고 표현했던 강동희가 동시대 라이벌이었고, 이후 세대 중에서는 경기 조율 능력에 있어서 이상민이 좀 많이 비교됐던 거 같아. 특히 이충희와 허재 중 전성기에 NBA에서 통할만한 실력을 가진 게 누구일 것이냐는 질문은 질리지 않고 등장하는 떡밥이고. 그런데 이런 비교나 떡밥이 계속 나오는 건 서로의 전성기가 다르기 때문인 거 같아. 허재의 전성기엔 이충희가 무릎 부상 때문에 은퇴를 고려할 때였고, 이상민이나 서장훈, 조성원 같은 선수의 전성기엔 허재가 체력적으로 많이 떨어졌을 시기니까 실질적 비교가 어렵거든. 그나마 동시대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강동희는 같은 팀인 기아 소속이기 때문에 서로 자웅을 겨룰 수도 없었고. 전성기 타이슨과 현재의 효도르가 싸우면 누가 이기느냐는 얘기랑 비슷한 거지.

그래도 수치화된 기록이란 게 있을 거 아니야.
물론 있지. 허재의 전성기는 프로농구 출범 이전의 농구대잔치 시절일 텐데 이 때 통산 득점 2위, 어시스트 1위, 스틸 1위, 리바운드 3위를 기록했어. 수치로만 따지면 농구라는 룰 안에서 못하는 게 없는 선수였던 셈이지. 약간 비약하자면 만화 <슬램덩크>에 나오는 서태웅의 득점력과 이정환의 패스 능력, 송태섭의 스틸, 강백호의 리바운드가 더해졌다고 할까? 하지만 이렇게 나름 객관적 수치가 있다고 해도 그걸 온전히 선수의 실력으로 돌릴 수는 없다는 걸 전제하고 싶어. 농구라는 게 기본적으로 팀플레이에 의한 게임이잖아. 가령 연세대 시절의 서장훈이 굉장한 득점력을 보여줬는데 과연 이상민의 패스가 없었으면 그 정도 득점이 가능했을까? 허재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물론 강동희와 김유택, 한기범이라는 당대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허재가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는 걸 인정한다고 해서 그의 기록에 흠이 생기는 건 아닐 거야.

네 얘기를 들어보면 왠지 허재가 최고의 선수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아니, 그건 아니야. 물론 허재와 다른 스타플레이어 사이에 일종의 ‘넘사벽’이 있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허재의 플레이는 앞서 말한 그런 엄청난 수치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엔 그야말로 허재를 아무도 막지 못했거든. 허재의 실력을 얘기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이 88 서울 올림픽 시절 유고와의 농구 예선인데 이 경기를 보면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건 38점을 넣은 이충희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허재였어. 24득점을 기록한 것도 대단하지만 10개의 스틸을 성공하면서 상대방 공격의 흐름을 완전히 다 끊고, 우리 팀의 공격 분위기를 완벽하게 살렸거든. 승패? 아쉽게도 12점차로 졌지. 하지만 당시의 유고는 토니 쿠코치처럼 NBA에서 용병으로 활약한 선수들이 다수 포진해있는 강팀이었다는 걸 떠올리면 당시 허재가 보여준 장악력은 정말 굉장한 거였어. 어쨌든 허재의 실력은 어떤 수치화된 기록보단 실제 경기를 볼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어. 오죽하면 강동희조차 “몇 백 년에 한 번 나올 선수”라고 했겠어.

그럼 허재는 항상 잘했어? 슬럼프 같은 거 없이?
사람인데 왜 슬럼프가 없었겠냐. 허재가 기아에 입단한 이후 5년 연속 농구대잔치 우승을 했는데 처음으로 우승을 놓쳤던 93-94 시즌 이후부턴 연세대, 고려대의 돌풍에 허재와 강동희, 김유택, 소위 최강의 허동택 트리오도 고전을 면치 못했어. 하지만 허재가 진짜 대단한 건 슬슬 힘과 체력을 앞세운 대학팀으로 대세가 기울 때 마치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화려한 플레이로 다시 기아의 농구대잔치 2연패를 이끌어냈다는 거야. 사실 체력이나 모든 면에서 전성기는 지난 상황이었지. 그래서 프로농구가 출범한 첫 해 기아가 우승할 땐 주력 멤버에서 밀려나는 수모까지 겪었고. 하지만 이후에도 97-98 시즌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에서 손등 부상을 입고 깁스를 한 상황에서도 게임당 30득점을 넣는 등 엄청난 활약을 보였어. 비록 7차전까지 가는 끝에 우승은 현대에 헌납해야 했지만 결국 MVP는 허재에게 돌아갔지. 이후에도 원주 TG로 팀을 옮겨 02-03년 우승을 이끌었고. 방송에서도 나왔지만 절대 지기 싫어하는 그런 성격 때문에 전성기 이후에도 최고의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얘기하니까 좀 부담스럽던 그 승부욕이 좀 이해가 된다. 어때, 너도 이번 ‘무릎 팍 도사’ 보면서 좀 깨달은 게 없어?
많이 깨달았지. 끊임없는 마감과 섭외 속에서도 절대 힘들어하지 않고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 필요한 건!

역시 근성과 승부욕?
보양식이지. 펜타포트 가느라 중복을 안 챙겨먹었더니 자판 누를 때마다 숨이 차네 그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