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세계검도의 최강자가 되고 싶었다. 재능이 있었는지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올림픽 정식 종목이 아닌 검도에서 더 큰 꿈을 찾지 못하고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대학에선 철학을 전공했고, 그 중 불교나 논어와 같은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과 학생회장을 하면서 등록금 삭감 투쟁도 벌였다. 군 생활은 철원의 최전방에서 수색대로 보냈다. 가슴에는 인문학도의 열정을 품고, 몸은 단련된 군인인 남자라니. 그건 베레모를 쓴 체 게바라 아닌가. 하지만 2007년 겨울, TV를 통해 만났던 그는 베레모 대신 가체를 쓰고 상궁 분장을 한 채 내관과 사랑의 밀어를 속삭였다. 2009년 여름을 강타할 초특급 미스터리 서스펜스와도 같은 이 반전의 주인공은 최근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DJ 변’에서 광고 개그를 보여주고 있는 개그맨 김준현이다.

안 웃긴 적이 없었지만 늘 뒤에 있었던 서포터

“확실히 요즘 들어서 알아보고 사인 해달라는 분들이 생긴 거 같아요. 라디오 CM 연락도 오고.” KBS 공채 22기 개그맨으로 뽑힌 후 ‘개그전사 300’에서 되도 않는 개그를 하는 이광섭을 방청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물총을 겨눴다가 조승희의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지면서 코너를 접은 경험도 있는 김준현에게 최근 ‘DJ 변’을 통해 경험하는 인기는 각별한 것이다. 비록 코너 상으로는 ‘DJ 변’에 속해있지만 거의 별개의 코너처럼 침입자를 막기 위한 세 남자의 사투를 일인 다역 연기로 펼치고선 “2009년을 강타할 스릴러, 아기돼지 and 삼형제”를 외치는 김준현의 광고 개그는 짧고 굵은 웃음이 개그맨의 커리어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물론 10개월간 장수한 인기 코너인 ‘조선왕조부록’이나 돼지 악장 캐릭터로 등장한 ‘악성 바이러스’ 등 그가 참여한 코너들이 인기나 웃음에서 부족했던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서포터 역할에 가까웠던 김준현이 깊은 인상을 남기긴 조금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때문에 현재 그가 개그맨으로서 느끼는 인기는 앞서 열거한 그의 굴곡 큰 개인사의 한쪽 끝을 차지하기에 손색없는 현재 진행형의 사건인 셈이다. 하지만 김준현이라는 개인이 정말 궁금해지는 것은 이런 자신의 삶에 대해 또박또박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조금은 의뭉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다.

“페이소스가 있는 희극 연기를 하고 싶어요”

앞서 반전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모든 반전은 속내를 알 수 없는 주인공을 만날 때 효과가 확실한 법이다. 물론 김준현은 어릴 때부터 검도부 형들을 통해 담배도 일찍 배우고, 운동을 그만둔 인문계 고등학교에선 “떠드느니 자라”는 선생님들의 묵인 아래 풀타임 취침을 했던 과거를 모두 털어놓을 정도로 솔직하다. 학교 기숙사 축제의 MC를 맡았다가 사람들의 큰 호응에 재능을 깨닫고 개그맨의 길을 선택한 과정도 명확하다. 하지만 선배들의 권유로 학생회장이 됐다가 등록금 투쟁을 할 때의 마음가짐이라든지, 늘어난 체중에 대한 고민을 토로할 때 특유의 서서히 줄어드는 말꼬리에서 어떤 감정을 붙잡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최효종 대신에 ‘DJ 변’에 합류할 때 정범균이 자신을 추천한 이유에 대해 “코란도로 출퇴근을 시켜주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거라는, 분명 농담일 대답에서 더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김준현은 그의 과거사를 실컷 들은 이후에도 흥미가 사라지지 않는 개그맨, 아니 사람이다. 그는 개그맨의 얼굴을 한 체 게바라도, 철학적 페이소스에 집착하는 희극 이론가도, 그렇다고 인기에 연연하는 속물도 아니다. 그건 그가 언제든 다시 한 번의 반전을 보여줄 수 있다는 뜻이다. “연기를 하고 싶어요. 그냥 개그가 아닌 페이소스가 있는 희극 연기를.” 여전히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그래서 진심을 읽기 어려운 말투지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반전 많은 삶에서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뚜렷한 복선일지도 모르겠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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