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아침 햇살 속으로 꿈을 안고 차오르는 새처럼 푸른 가슴 따사로운 숨결로 달려가는… 그래요, 요즘 TV는 바야흐로 ‘여성시대’입니다. 예쁘기만한 대상으로서만의 아이돌을 벗어던진 2NE1을 위시한 여자 아이돌들의 거침없는 발차기와 그들을 내세운 대형기획사들의 야심은 오늘 기획리포트를 통해 더 자세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소녀들이 씩씩하게 무대 위에서 점프하는 가운데 드라마 속 여인들은 큰 움직임 없이 그저 등장하는 발걸음만으로, 눈빛만으로도 TV 화면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방영을 시작한 <스타일>의 김혜수, 이번 주 10라인을 통해 소개되는 그녀는 인생 대부분을 스타로 살아온 배우답게 1, 2회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이틴스타 특유의 과장된 귀여움이나 앳된 목소리를 벗어던진 후 ‘얼굴없는 미녀’가 되고 ‘정마담’이 되었던 이 불혹의 여배우는 이제 지극히 속물스러운 부분을 드러내는 순간까지도 과장된 위악 대신 그것이 몸에 밴 태도처럼 보이는 수준의 연기를 해냅니다. 물론 이 드라마가 패션잡지의 진짜 모습을 얼마나 그려낼 수 있을까에는 논란의 거리가 있겠지만, 김혜수만큼은 단순히 프라다를 입는 악마 이상의 질감을 보여줄 것 같다는 기대를 품게 만듭니다. <선덕여왕>의 미실, 고현정의 이야기는 이제 말을 하자면 입이 아플 지경입니다. 동그란 얼굴에 생글생글 웃음을 띠고 눈썹과 입술의 움직임만으로 신라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미실은 넘어서기 힘든 존재이기 이전에 어딘가 존경스러운 지점까지 만들어냅니다. 위협과 폭력으로 상대를 장악하는 마초맨들의 지배의 방법과 전혀 다른 꼭짓점에 위치한 미실의 카리스마는 <선덕여왕>을 움직이는 최고급 연료입니다. <결혼 못하는 남자>의 엄정화는 어떤가요. 장문정은 박기자나 미실에 비해 그다지 드라마틱하지 않은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엄정화라는 육신을 얻음으로써 더할 나위 없이 풍부한 표정을 보여줍니다. 진짜 내공이란 벌겋게 눈을 치켜뜨고 버럭 고함을 치지 않아도, 조용한 바람만으로도 대나무를 베는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간 마흔 언저리의 여배우들에게 던지는 찬사는 우아하다, 처럼 마치 리그를 떠난 선수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두루뭉술한 수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현모양처, 이모 고모, 혹은 무서운 연기파 배우 같은 빈약한 카테고리가 다였습니다. 그러나 바야흐로 안정감 있는 연기를 기본으로 하여 쉬이 복제하기 힘든 그들만의 캐릭터까지 담아내는 강력한 여배우들의 시대가 왔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여전히 예쁘고 아름답습니다. 예전에 인정옥 작가가 배우 윤여정을 평하며 “여전히 여자냄새가 난다”라는 말을 썼는데,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이 노련한 여배우들의 몸에 뿌려진 가장 강력한 향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하이틴 스타에서 누군가는 미스코리아에서 누군가는 무대 위의 섹시퀸으로 20대로 살다가 비로소 도착한 땅. 그들이 있어 2009년 TV는 지금 이토록 비옥합니다. 그 열매를 동시에 맛보게 된 시청자들은 이토록 황홀합니다.

글. 백은하 (o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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