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중학교 1학년일 때였어요. 너무 예쁜 아이가 다른 반 교실에 앉아 있더라구요. 정작 말은 못 걸고 ‘쟨 내꺼야’ 소문을 매고 다녔는데, 어느 날 이 여자애가 제 손에 쪽지를 하나 주고 가더라구요. 막 심장이 터질 것 같았죠. 종이를 펼쳐 보니까 딱 네 글자 써있었어요. 맘.에.들.어.” 그리고는 잠시 침묵이다. 스스로 취한 듯, 어딘가 후련해 보이는 그 표정이 참 낯이 익다 싶은 순간 바로 맥주 CF의 장면이 오버랩 된다. 아이스하키 팀 감독의 호통 속에 모두가 주눅 들어 땅만 바라보고 있을 때, 유난히 초롱초롱한 눈의 남자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감독의 손에 들린 캔을 팝! 하고 열어버리더니 냉큼 넘치는 맥주에 입을 가져다 댄다. 바로 그 모습을 조금만 헹궈 당돌함을 씻어내면 딱 이 남자의 진짜 얼굴이 나온다. 솔직하고, 거침없지만 그 모습이 귀여운 이장우말이다.

30초를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든 청년

30초에 가득 눌러 담아 놓아도 싱싱하게 펄떡이는 청년이지만, 그가 언제나 그렇게 도발적인 것은 아니다. MBC 시트콤 <태희혜교지현이>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준수(태민)의 삼촌이자 은경(최은경)의 동생, 희진(장희진)의 남자친구 장우다. 온통 특이하고 유별난 인물들 사이에서 썰렁하고 무능한 연예인 지망생으로 등장하는 그의 얼굴은 어수룩해 보일 정도로 마냥 순하다. “방학을 맞이해서 감독님이 젊은 시청자들을 좀 더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와 준수의 삼각관계도 보다 부각이 될 것 같구요. 점점 더 재미있어 질 거예요.” 기대를 담은 전망이지만, 그 목소리에는 특별히 들뜬 기색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시트콤을 시작할 때 그는 함께 출연하는 동료들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24/7을 결성 했었다. 무대에 서서 3분 천하의 희열을 맛보기도 했고, 12분에 달하는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는 “한두 달만 고생하면 대박”이라는 꿈에 부풀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국 프로젝트는 흐지부지 막을 내렸고, 시트콤의 포커스는 여전히 그에게서 멀기만 했다.

“결국은 실력 있는 사람이 잘 되더라고요”

하지만 좌절은 그것이 종착점이라고 생각 할 때나 생겨나는 감정이다. 모든 사건과 고비를 배움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이장우에게 미래는 여전히 밝은 것일 뿐이다. 박미선의 연기를 통해 진지한 연기를 하면서도 상대방을 웃길 수 있는 타이밍을 배우듯, 그는 촬영장 뒤에 서서 선배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깨닫고 흡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다 강렬한 역할에 대한 갈증이 생길 때면 직접 시나리오를 구상하면서 극한의 상황에 처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때를 기다리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다짐은 이 청년에게 보다 깊은 눈을 갖게 해 주었다. “<꽃보다 남자> 이후로 이민호 씨 인생이 갑자기 변했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봤을 때, 그 분은 나름대로 준비를 정말 많이 하고 오랫동안 고민을 했으니까 그런 결과를 얻으신 것 같아요. 한방에 오는 기회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유지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잖아요. 결국은 실력 있는 사람이 잘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의 마음은 오래전 그 날과 여전히 같다. “아직도 제 꿈은 배우에요. 신인 시절에는 모델 일만 들어오던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모든 경험은 결국 배우에게 재산이라는 강부자 선생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다 즐기려고 했어요.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실력을 쌓으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겠죠.” 또래 배우부터, 까마득한 선배까지, 현장에서 만나지 않은 사람들에게서조차 배움을 발견하는 이 청년의 눈이 다시 초롱초롱 호기심으로 빛난다. 맥주 거품이 솟구치는 것으로는 비유가 안 되겠다. 이장우의 시간들이 좀 더 차오른 어느 날, 결국 청년의 화산은 폭발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그리 멀지 않았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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