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평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예쁜 얼굴은 타인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선천적인 재능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떤 몸짓을 보여주지 않고도 박한별은 금방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기억 속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 순전히 얼굴의 생김으로만 화제가 될 수 있는 ‘얼짱’ 문화의 선두에서 교복을 입은 증명사진 하나로 화제가 되었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곧 행운이자 불운이었다. 영화 <여우계단 :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를 통해 첫 작품부터 큰 배역을 따 낼 수 있었지만, 아직 연기자로서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그만큼 많은 질책을 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박한별은 보기보다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 SBS <요조숙녀>, MBC <한강수 타령>, SBS <푸른 물고기> 등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들은 대부분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 MBC <환상의 커플>에 출연했을 때는 드라마의 인기와 별도로 그녀의 캐릭터 자체가 시청자들의 미움을 받는 역할이었다. 거듭되는 부진에 의기소침할 법도 한데, 박한별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영화 <요가 학원>과 KBS 일일드라마 <다함께 차차차>를 한꺼번에 선보이는 그녀의 포부는 남다르다. “잘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하는 거니까, 일단은 최선을 다하려구요. 그러다 보면 저도 시청자들의 마음에 드는 순간이 오겠죠. 조금만 너그럽게 기다려 주시면 꼭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고 싶어요.”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고비를 이겨낸 그녀에게 여자 보컬들의 목소리가 돋보이는 다섯 곡을 추천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 노래들을 ‘햇살처럼 포근함을 주는 노래들’이라고 묶어냈다. 햇살같이 밝은 미래를 향해 다시 도전하고 있는 그녀에게는 한층 믿음을 주는 그녀의 남자친구와 더불어 마음의 안식처와 같은 노래들이다.

1. 요조의
실력에 앞서 귀여운 외모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점에서 요조는 박한별과 비슷한 성장 배경을 갖고 있다. ‘홍대 여신’이라 불리며 여성 싱어송 라이터들을 향한 관심의 포문을 열었던 요조는 그 유명세에 비해 단순한 송라이팅 때문에 일부 음악팬들에게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때로는 그 단순함 덕분에 메시지와 이미지가 보다 선명하게 전달되는 법이다. 그리고 박한별은 그런 요조의 노래들에서 발견되는 따뜻한 느낌을 특히 좋아한다고.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와 허밍 어반 스테레오 등 여러 밴드의 객원 보컬로 활약하던 요조는 지난해 첫 앨범 를 발표했다. “목소리도 참 예쁘고, 특별히 어두운 노래가 없어서 좋아요. 특히 ‘에구구구’는 남자친구를 생각하면서 만든 곡이라서 그런지 가사가 참 따뜻해요. 사랑하면 그 사람의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도 다 소중하게 느껴지는 법이잖아요.”

2. 도나웨일의
“피아노 소리가 그렇게 따뜻한지 몰랐어요. 그리고 분명히 포근한 느낌이 드는데 어쩐지 조금은 우울한 느낌도 나는데, 그것도 아마 피아노 소리 때문인 것 같아요. 제목에는 봄이 들어가지만 계절에 상관없이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날에는 언제 들어도 좋은 노래 같아요. 혼자 공원 벤치에 앉아서 나만의 피크닉을 즐길 때 들어도 좋을 것 같구요.” 박한별이 두 번째로 추천한 곡은 도나웨일의 ‘a spring day’다. 2006년 발표된 웹툰 ‘크래커’의 사운드 트랙에 먼저 선보였던 이 곡은 부드러우면서도 간결한 박한별의 음악 취향에 잘 맞는 노래로 피아노 선율을 바탕으로 한 소품 같은 아기자기함이 특징이다. 밴드의 이름은 ‘고래 부인’을 의미하며 이들은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에세이집 <고마워요 소울 메이트>의 사운드 트랙에 참여하기도 했다.

3. 유희열의 <유희열 소품집 ‘여름날’>
박한별은 신민아가 부른 ‘즐거운 나의 하루’를 추천하면서 “민아랑 저랑 가까운 친구 사이거든요”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본인 역시 올리브TV <박한별의 핑크 프로포즈>를 통해 밴드 보컬 체험을 하며 느꼈던 어색함이 떠오르면서도 새삼 예쁘게 들리는 친구의 목소리에 감탄한 듯했다. 유희열의 소품집 ‘여름날’은 아날로그 사운드를 통해 TOY 초창기의 감수성을 구현하면서도 진일보 한 송라이팅 실력을 선보이고 있는 앨범이다. 최근 유희열과 많은 교류를 나누고 있는 페퍼톤스의 신재평이 유희열과 좋은 앙상블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앨범을 사운드 트랙으로 사용한 노트북 광고의 주인공이었던 신민아는 꾸밈없이 소박한 목소리를 선보이고 있다. “노래의 도입부가 항상 입에 맴돌아요. 반가워요, 잘 지내나요. 요즘은 바쁜가요? 그냥 평범한 인사 같은데 노랫말이 되니까 다른 의미들이 숨어 있는 것 같아서 들을수록 아련해져요.”

4. 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노래는 뭐든지 다 좋아해요. 다 상큼 발랄하잖아요. 보컬의 목소리나 곡 구성도 그렇지만 가사도 참 귀여워요.” 박한별이 즐겨 듣는다는 허밍 어반 스테레오는 최근 몇 년 사이게 급속도로 인기를 얻은 시부야 계열 일렉트로닉 밴드로 인스턴트 로맨틱 플로어의 멤버이기도 한 이지린의 원맨밴드로 알려져 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로 큰 사랑을 받았으며 방송 출연은 거의 하지 않지만 배경음악 등으로 누구보다 자주 방송에서 들을 수 있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특히 ‘샐러드 기념일’은 윤은혜에 의해 냉장고 광고의 CM송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여러 히트곡들보다도 박한별이 먼저 떠올린 것은 지난해 발표된 이들의 미니 앨범 에 수록된 ‘Sophie Marceau’다. “좋아하는 요조의 목소리가 곡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기도 하고 어린 시절 추억을 이야기하는 가사가 정말로 깜찍해요. 날씨 좋을 때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듣고 싶은 그런 노래랍니다.”

5. 에픽하이의
마지막으로 박한별이 추천하는 노래는 시원한 보컬 실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윤하의 색다른 목소리가 인상적인 에픽하이의 ‘우산’이다. “윤하가 부르는 발라드를 참 좋아해요. 갓 데뷔했을 때 발표했던 디지털 싱글 ‘기다리다’도 정말로 좋아하는 곡인데, 록커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애절한 노래를 부를 때 더 돋보이는 목소리인 것 같아요. ‘우산’에서도 물론 에픽하이의 랩 실력도 뛰어나지만 윤하의 보컬이 흘러나오는 부분이 되면 다른 일을 하다가도 잠깐 멈추게 돼요. 그런데 이 노래는 가사가 좀 슬프잖아요.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 버리고 눈물처럼 흐르는 빗속에 서 있으면서도 우산을 쓰고 있으면 그 공간만은 아늑하다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자신만의 우산을 펼치고 있으면 가장 중요한 건 젖지 않고 지켜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제가 출연하는 부분은 거의가 액션 장면이에요. 어휴”

KBS 일일드라마 <다함께 차차차>에서 박한별은 청순하고 얌전했던 기존의 역할들과 달리 말썽꾸러기 아가씨를 연기 한다. “얼마나 천방지축인지 엄마(박해미)한테 매일 맞는 역할이에요. 이런 캐릭터를 연기 해 본 적이 없어서 새롭고, 재미있어요. 그런데 계속 소리 지르고 짜증내는 장면들을 찍다 보니까 벌써 목이 아플 지경이네요. 계속 킬힐을 신고 다니면서 뛰고 넘어지고, 제가 출연하는 부분은 거의가 액션 장면이에요. 어휴.” 빡빡한 촬영 스케줄 때문에 고된 일정을 털어놓지만 사실 작품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얼굴은 기대로 빛난다. “미꾸라지를 10kg이나 버스 안에 풀어놓게 되는 장면이 있거든요. 미꾸라지들이 막 파닥파닥하면서 버스 바닥을 다 청소하는 거 있죠. 하하하. 보시면 정말 재미있으실 거예요.” 한층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는 만큼, 매일 저녁 조금씩 성장하는 그녀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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