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돈 주앙은 그동안 영화와 소설 등 많은 장르 안에서 전설의 호색한으로 그려져왔다. 하지만 뮤지컬로 탄생한 <돈 주앙>()은 그의 섹슈얼리티 보다는 한없이 외롭고 자존심 강한 그의 내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지난 겨울 주지훈-김다현강태을 3명의 돈 주앙을 성남아트센터에서 선보였던 이 작품이 오는 7월 9일 충무아트홀에서 새로운 공연을 준비 중이다. 서울공연을 하루 앞두고 열린 <돈 주앙> 프레스콜 현장에서 김다현을 만났다.

40분 간 시연된 무대를 보니 지난번 성남 공연에 비해 훨씬 더 농염해졌더라. (웃음)
김다현
: 나도 모르는 사이 돈 주앙이 된 것 같다. (웃음) 지난번 성남 공연 때는 돈 주앙의 모습들을 애써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면,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그냥 내 것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꺼내기만 하면 되더라. 그래서 지금은 굉장히 즐기면서 하는 중이다.

두 번째로 하는 공연이고, 일정기간의 휴식이 있어서인지 무대 위의 배우들이 많이 여유로워보였다.
김다현
: 잠시 떨어져서 작품을 보면 제3자의 눈이 된다. 그러다보니 내가 대본을 읽고 노래연습을 하면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보이게 됐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지난번 성남에서는 주지훈, 강태을과 함께 트리플 캐스팅이었다. 성남공연을 통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김다현
: 공연을 하게 되면 그 인물을 계속 끌고 가야 흐름이 지속되는데, 트리플이다 보니 적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3일까지 쉴 때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흐름이 끊기는 단점들이 있었지만, 또 대신 매 공연이 첫공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웃음) 그리고 이 작품의 공간인 스페인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상태의 배우들이 단순히 1~2개월 공연해서 특유의 정서들을 다 몸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성남공연은 정서를 몸에 스며들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여유롭고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된 거다.

“18곡에 서로 다른 콘셉트를 잡았다”

<돈 주앙>은 대사가 아닌 노래로 스토리를 이어가는 프랑스 뮤지컬인만큼 연기적인 디테일이 넘버에 실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김다현
: 총 41곡 중 돈 주앙이 부르는 곡만 18곡이다보니 노래마다의 색깔이 다르다. 그래서 ‘나의 이름’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아름다운 집시 여인’은 섬세하면서도 밀고 당기는 모습을, ‘홀로’에서는 모든 것을 다 떨쳐버린 외로운 남자의 모습 등 각기 다른 콘셉트를 잡아서 다양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려 한다.

기본적으로 돈 주앙은 본능에 이끌리는 인물로 표현되는데 실제 만나 본 김다현은 단어 하나도 골라서 얘기하는 굉장히 진중한 성격이다. 연기하면서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
김다현
: 돈 주앙이 사랑에 빠져 변하기 시작하는 2막은 드라마 구성이 잘 짜여져있지만, 1막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훨씬 더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그냥 흘러가버린다. 그래서 돈 주앙이 가지고 있는 삶과 느낌을 많이 살려야 되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스페인 댄서들과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고 즐기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럼 대화는 영어로? (웃음)
김다현
: 영어로 하긴 한다. (웃음) 근데 우리는 일단 거의 느낌으로 대화를 하니까, 굳이 스페인어를 하거나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않아도 잘 통한다.

저주로 인해 사랑에 빠지긴 했지만, 가족도 친구도 모르는 그를 가장 잘 아는 인물이 마리아이다. 그런데 왜 그런 여인을 두고 자살을 택하는 건지.
김다현
: 돈 주앙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된다는 점이 저주인 것 같다. 사랑의 감정을 모르고 살다가 이제야 알았는데 마냥 기쁘기만 한 게 아니라 질투도 있고 슬프고 아프기까지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이건 이렇게 하면 된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돈 주앙은 거기까지 생각이 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되게 단순하다. 사랑으로 꽉 차 있는 투명한 물에 라파엘이라는 연적이 등장하면서 검은색 잉크가 떨어졌고, 그게 확 번진거다. 사실 그 잉크를 거르거나 시간을 좀 둔다면 바뀔 수 있지만 돈 주앙은 그걸 용납할 수가 없고, 거기서 오는 아픔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관객들이 마지막 돈 주앙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면 좋겠다”

다른 배우들은 성남공연 이후에도 뮤지컬을 했지만, 김다현은 뮤지컬이 아닌 영화를 선택했다. 뮤지컬에서도 스릴러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첫영화로 스릴러인 <순수의 시대>를 선택한 이유는.
김다현
: 영화를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몇 개의 시나리오를 받았고, 그 중 <순수의 시대>가 가장 끌렸다. 내가 맡은 승호라는 캐릭터가 약간 애매모호한 인물이라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재밌었고 많은 부분에 몰두해서 작업을 했다. 그리고 승호는 검사가 되는 인물인데, 그 과정 중간 중간에 승호 주위의 모든 인물들이 죽어간다. 스스로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갖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가을쯤 개봉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번 <돈 주앙> 서울공연에서 가장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김다현
: 돈 주앙의 변화가 이 작품의 모티브이자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그래서 그가 등장하는 ‘나의 이름’에서부터 죽음으로 이르는 ‘사랑으로 나는 죽네’까지 돈 주앙이 변화되는 모든 과정을 확실히 보여드릴 거고 마지막 그의 죽음에 관객들이 함께 울고 감동받을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그리고 돈 주앙은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진 인물이라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극이 많이 달라진다. 그래서 절대악 같은 모습, 매력적이고 섹시한 모습, 모성본능을 유발하는 모습 등 다양한 모습들을 매회 조금씩 바꿔서 해보려고 한다.

매회 보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웃음)
김다현
: 기본적인 돈 주앙의 캐릭터는 가지고 있지만, 내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날 그날 달라질 거다. 그게 뮤지컬의 매력이지 않나. (웃음)

사진제공_NDPK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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