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앨범 재킷과 이름만 보고 어째 마음에 들지 않아 비닐도 뜯지 않은 채 팽개쳤던 음반을 몇 년 만에 먼지를 털고 듣자 의외로 듣기 좋은 멜로디가 흘러나올 때가. 이 때 만족과 당혹을 오가는 감정의 변화 속에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건 미안함이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오빠 밴드’에서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 리프를 깔끔하게 카피하고, 동방신기의 ‘미로틱’을 록 버전으로 연주하는 트랙스의 정모를 볼 때의 느낌이 그렇다. 아이돌 밴드 기타리스트기에 당연히 악기는 구색으로 들고 있는 거라 생각했던 시절에 대한 미안함.

“연습하다가 손에 물집이 잡히면 일부러 과시하고 다녔어요”

“사실 제가 대중이었어도 ‘쟤네 뭐야?’라고 생각했을 거 같아요.” 정모의 말대로 짙은 화장과 현란한 헤어스타일과 의상을 전면에 내세운 트랙스는 록 마니아들에게는 X-Japan ‘짝퉁’ 정도로 받아들여졌고, 비주얼 록에 대한 정보가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정체불명의 존재였다. 게다가 아이돌 군단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이라니. 그가 SM 행을 선택했을 때 같이 연주하던 친구들은 “그럼 넌 기타 벗고 춤추게 될 거”라며 말렸다. 편견의 힘은 강해서 사람들은 록밴드가 라이브 연주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생방송 가요 프로그램의 시스템은 고려하지 않은 채 트랙스를 라이브 못하는 사이비 밴드로 몰아붙였다. “2006년에 노브레인, 크라잉넛 같은 밴드와 같이 록페스티벌에 나갔는데 한 곡, 한 곡 부를 때마다 야유만 커져가더라고요.”

하지만 오랜 일본 활동 뒤에 ‘오빠 밴드’의 에이스로 돌아온 그를 아이돌 이미지 때문에 오해 받은 실력파 뮤지션으로 추켜세우는 건 과거 트랙스에 가진 편견만큼이나 성급한 짓이다. 사실 스스로 “고맙지만 그런 호칭은 예능이라 해도 부담스럽다”고 하는 게 당연할 만큼 정모의 실력이 프로 뮤지션으로서 탁월한 경지까진 아니다. 오히려 ‘오빠 밴드’라는 리얼리티 쇼로 돌아온 정모의 가장 매력적인 ‘쌩얼’은 탁월함이 아닌, 트랙스의 짙은 화장에 가려졌던 뮤직 키드의 치기 어린 열정이다. 가령 일본 활동하며 사운드를 맞춰주는 일본인 기타 테크니션의 노하우를 알기 위해 몰래 디지털 카메라로 앰프 설정을 찍어온 경험을 비밀 이야기처럼 꺼낼 때면 “연주 연습하다가 손에 물집이 잡히면 터뜨리는 대신 영광의 자국처럼 일부러 과시하고 다니던” 중학생 소년의 의기양양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편견의 비닐을 벗겨내는 그 순간을 위해

그래서 넥스트의 기타리스트 김세황의 기타 톤을 “단순히 빨리 치는 게 아니라 손가락이 날아다니는 느낌”이라 묘사할 때 스스로도 어딘가로 날아가는 듯 꿈꾸는 표정인 그는 고등학교 시절 나름 동네에서 연주 좀 한다는 친구들을 모아 스쿨밴드 Rise로 활동할 때나, SM 소속 아이돌 밴드 트랙스로 활동할 때나, ‘오빠 밴드’의 에이스 캐릭터가 된 지금이나 그냥 꾸준히 “음악이 좋고 음악을 즐기는 게 좋은” 뮤직 키드로 지내왔을 뿐이다. “2주 방영만으로 트랙스 활동 때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된” ‘오빠 밴드’에 있어서도 가장 고마운 건 음악적 영웅이었던 푸른 하늘의 유영석을 만나 클래식 편곡에 대한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런 열정이 아주 탁월한 성과를 만들어낸 건 아니다. 다만 적어도 음악이 좋고 연주가 좋은 그의 다음 발걸음에 대해 우리는 편견의 비닐을 벗겨내고 진지하게 그 멜로디를 듣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언젠가 실력 자체를 가감 없이 평가 받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음악이란 길을 걸어온 그가 스스로에게 만들어준, 대형 기획사조차 준비해줄 수 없는 최적의 조건일 것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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