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세상에는 욕심을 버릴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 윤상현은 그 진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드라마가 너무 무거워지는 것이 싫어서 MBC <겨울새>의 주경우를 냉철한 남자에서 소심한 울보 캐릭터로 바꾸자고 스스로 제안했다는 그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반드시 멋진 배우가 되는 길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중후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거나, 유능한 실장이 되어 과묵하게 등장할 때보다 MBC <크크섬의 비밀>에서 초등학생처럼 까불거리는 윤대리가 되거나 MBC <내조의 여왕>에서 아줌마를 짝사랑하는 모습이 이상할 것 없는 특이한 사장님 ‘태봉 씨’를 연기할 때 더욱 그에게 환호한다. 가장 주목받는 배우가 되어 극을 장악하는 것보다는 재미있는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그는 자신의 위치에 대한 욕심을 낮추는 대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즐겁기를 바란다. 그것은 배우이기 이전에 경쟁이 미덕인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좀처럼 간직하기 어려운 마음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건, 윤상현이 애초에 욕심이라는 감정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점이다. “하고 싶은 일은 하고야 만다”는 그는 데뷔 이전에 다양한 직업을 경험 했으며, 그것은 욕심이 아니라 열정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그래서 가수 데뷔를 준비하던 몇 년 전을 떠올리면서도 “연예계 생활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그런 건 짐작도 안했어요. 무대 위에 올라가서 노래하는 것만 생각 했죠. 내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면 많은 사람들이 들어줬으면 좋겠다, 그 생각으로 무작정 시작한 일이었어요”라고 툭 던지듯 말한다.

결국 배우가 되었지만, 윤상현은 <내조의 여왕>에서 ‘네버 엔딩 스토리’를 부를 때도 곡의 느낌을 잘 살리기 위해 어떤 창법을 선택할까 고심할 정도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 연습하며 불렀던 노래들을 언젠가는 무대에 서서 시청자들을 향해 마음껏 불러봤으면 좋겠다고 때때로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가수가 되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노래하는 순간의 기쁨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식지 않은 열정일 뿐이다. 여기 윤상현의 열정이 담긴, 무대에 올라 당신들에게 불러주고 싶은 노래들을 공개한다.




1. Color me badd의
많이 불렀던 노래로 윤상현이 첫손에 꼽는 곡은 90년대 보이즈투맨, 포트레이트와 더불어 남성 하모니 그룹의 시대를 주름잡았던 컬러미배드의 ‘wildflower’다. “원래는 시원하게 내지르는 샤우트 창법을 주로 연습했었어요. 그런데 흑인음악의 매력에 빠지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더라구요. 목소리를 눌러가면서 부르는 것이 때로는 감정을 더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런 점에서 70년대에 활동한 캐나다 출신 록밴드 skylark이 불렀던 노래를 리메이크한 ‘wildflower’는 같은 노래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때 그 느낌이 얼마나 차이를 보여줄 수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는 표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전설적인 프로듀서 데이빗 포스터의 편곡은 곡의 감미로움과 순수한 느낌을 극대화시켜 국내에서는 원곡보다 더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2. James Ingram의
수많은 가수들이 애창곡으로 꼽는 제임스 잉그램의 ‘just once’역시 윤상현이 부르고 또 불렀던 노래 중 하나다. 제임스 잉그램은 레이 찰스의 백밴드 출신으로 최강의 프로듀서인 퀸시 존스에게 발탁되어 그의 프로젝트 앨범인 에 참여하며 화려하게 데뷔 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발표한 앨범 한 장 없이 1982년 그래미에서 최우수 R&B 보컬상을 수상한 그는 이후 1980년대를 대표하는 소울 싱어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담백한 도입부부터 감정을 폭발시키는 절정에 이르기까지 만만찮은 가창력을 요하는 ‘just once’는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는 명곡. “참 부드러운 곡이죠. 제가 음역대가 높은 편이라 여자 가수들의 곡을 연습하기도 했는데, 관건은 고음역대에서도 소프트함을 유지하는 것이더라구요. 이 노래는 들을 때는 참 편안한데 막상 부르려면 상당히 어려운 곡이에요. 그렇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부드럽게! 곡의 느낌을 몸으로 터득하고 있어야 해요.”



3. Lionel Richie의
“저는 원래 음악에 있어서 상당히 잡식성이에요. 어렸을 때는 갱스터 랩에 빠져서 이어폰 꽂고 다니면서 중얼중얼 거리기도 했고, 리처드 막스부터 라디오 헤드, 스콜피온스까지 좋은 건 다 좋아해요. 그런데 공통적인 건, 아무래도 옛날 음악들이 더 좋더라는 거죠. 요즘 노래들은 정감이 없어서 말이죠. 하하.” 추억과 함께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노래들을 진정한 명곡으로 생각하는 윤상현이 세 번째로 선택한 곡은 라이오넬 리치의 ‘hello’. 이제는 니콜 리치의 아버지로 더 유명하지만, 라이오넬 리치는 마이클 잭슨과 더불어 1980년대 가장 인기 있었던 흑인 팝스타로 손꼽히는 인물로 지난해에는 미국 작곡가 협회로부터 평생 공로상을 수여받기도 했다. 1983년 그가 발표한 앨범 에 수록된 ‘hello’는 차트 정상에 올랐던 불후의 명곡으로 이후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 한 바 있다.




4. 김범수의 <보고 싶다>
윤상현의 장점 중 하나는 이미 그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한다는 점이다. 팬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스타라는 위치는 드라마 밖의 자신을 포장하기 마련이지만, 윤상현은 주저 없이 자신의 특별한 추억이 담긴 김범수의 히트곡 ‘보고 싶다’를 네 번째 추천 곡으로 선택했다. “여자 친구가 참 좋아하던 곡이에요. 그래서 노래방에서 많이 불렀던 노래죠. 어려운 노래처럼 보이지만, 사실 노래를 잘하기 위해서 중요한건 테크닉 보다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때는 저도 엎드려서 호흡을 잡는 법을 연습하면서 발성법을 바꾸기도 했지만 사실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서 진짜 중요한건 그런 게 아니거든요. 어디서 두 번 돌려 꺾고 어떤 기교를 쓸까 고민하는 것보다는 노래의 느낌을 잘 알고 집중해서 부르면 돼요. 그게 좋은 음악이죠. 다만, 음정만 잘 맞춘다면 말이죠.”



5. Stevie Wonder의
“스티비 원더 노래는 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에게 그중에서도 최고의 노래 한 곡을 꼽아 달라고 부탁하자 “거, 왜 있잖아요. 제일 유명하고 좋은 노래. 따라란-”하고 그의 입에서 ‘Lately’의 전주가 흘러나온다. 그의 힌트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입을 모아 노래 제목을 외치는 순간, 윤상현은 마치 태봉 씨가 그랬을 것 같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감미로움, 옛 정취, 흑인 보컬 등 그가 사랑하는 음악의 조건이 집대성된 ‘Lately’는 그가 부르는 것만큼이나 들을 때도 유난히 사랑하는 곡이다. “비 오는 날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정말 좋아요. 뭐랄까, 술을 마시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이 노래도 워낙 유명하다 보니까 여러 사람들이 리메이크 했지만 원곡이 역시 제일 좋아요. 그러니까 좋은 노래죠.”


“파격적이기 보다는 비전형적 인물일 것 같아요”



윤상현│당신에게 불러주고 싶은 노래들
더 이상 극 중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인기를 실감한다는 윤상현은 올 여름 방송이 예정되어 있는 드라마 <레이디 캐슬>을 차기작으로 골랐다. 궁전 같이 큰 집에 살며 자신 밖에 모르는 재벌집 딸과 그 집의 비자금을 노래고 집사로 취업한 제비족 출신의 가난한 남자의 로맨틱 코미디로 일찌감치 윤은혜가 주인공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작품이다. “파격적이기 보다는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을 고릅니다. 재미있게 연기할 수 있는 상황이 가장 중요하거든요.”라고 그는 이미 `태봉씨`의 색깔을 제법 지워낸 목소리로 말한다. 생각해 보면, 윤상현은 특별한 인물을 선택하기보다는 자신의 선택으로 그 인물을 특별하게 만들어가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레이디 캐슬>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신하게 될 지 궁금하더라도 잠자코 기다리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촬영장 밖에서의 그는 작전을 짜고 행동을 계산하기보다는 당장 “스티브 바이, 기타 들어 봤어요? 완전 죽여주는데!”라고 즐거운 이야기에 심취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이니까 말이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의 다음 역할 역시 분명히 멋지고 사랑스러운 인물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를 연기하는 사람이 윤상현인 한 말이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