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이라는 말이 붙으면 어쩐지 은색으로 번쩍거려줘야만 할 것 같고, ‘사람 손으로 이런 각을 만들긴 힘들지!’ 싶은 곡률로 알싸하게 쪽 빠져야만 할 것 같고, 여기저기에 알 수 없는 약자와 기호들이 난무해야만 할 것 같다. 이런 ….할 것만 같은 기분을 착실히 맞춰주고 있는 아이템 중 하나가 디지털 카메라다. 찍을 대상을 보고 ‘찰칵!’ 하고 사진을 찍는다. 라는 개념은 필름카메라 시절부터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도, ‘디지털’이라는 말이 붙은 이후의 그 모양새는 이게 실은 트랜스포머의 정찰병이었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만한 것들로 가득하다. 문제는 이런 ‘첨단’의 디자인들엔 어쩐지 전혀 정이 안 간다는 거다. 안 그래도 디지털인 것 아니깐 반짝거리지 말아주십시오, 라고 정중하게 부탁하고 싶어진다.

리코 GRD2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디지털 카메라계의 반골이다. 겉모습만 봐서는 이것이 디지털 카메라인지 오래전에 나온 리코 GR 시리즈의 필름카메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앞면에 써있는 ‘digital’ 이라는 문구가 예전 GR시리즈 필름카메라를 쓰던 사람이 ‘아, 이건 말이지 이렇게 뒷면을..’ 하면서 필름 넣을 구멍을 찾을까 봐 노파심에 써 놓은 경고 문구처럼 느껴질 정도. 새까맣고 조그맣고 얄팍한 자태는 말 그대로 ‘아름답다’. 반짝이는 부분은 하나도 없이 투박하지만, 반에서 25등 하는 내성적인 아이처럼 전혀 튀지 않지만 그 덕분에 어떤 카메라와 나란히 서 있어도 최고의 존재감을 발하는 우월성을 획득했다. 나오토 후카사와(±0와 무인양품의 디자이너)와 재스퍼 모리슨의 목록에도 당당히 그 이름을 올렸을 정도이니까 ‘그 아름다운 평범함’은 이미 인정을 받은 셈. 게다가 이 리코 GRD2는 그 기능 면에서도 어떤 디지털 카메라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이며 쓰면 쓸수록 그 기능들이 손에 익어서 쓰는 맛이 나는 카메라…라고들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니(벌써 1년째 쓰고 있으면서도!!)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분명한 것은 기능이라고는 전원과 셔터 버튼밖에 모른다고 해도 이 카메라가 ‘예쁘다’는 사실이니까.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건 세상의 이치다.

글. 이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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