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가가는 ‘돌+아이’가 아니다. 물론 레이디 가가는 속옷만 입은채 거리를 돌아다니고, 자신이 일하는 클럽을 찾은 아버지 앞에서 스트립 댄스를 추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데뷔 전 푸시캣 돌스와 뉴키즈 온 더 블록에게 곡을 써줄 만큼 미국 팝 시장에서 검증 받은 프로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의 혼란스러운 과거사 뒤에는 10대 시절부터 작곡을 했던 음악적 재능이 있었듯, 그의 독특한 캐릭터 뒤에는 자신의 예술적 방향과 시장의 요구를 적절히 수용하는 프로 뮤지션의 모습이 있다. 그래서 레이디 가가의 데뷔 앨범 은 ‘돌+아이’ 캐릭터와 프로 뮤지션이 묘한 균형을 이룬다. 그의 상식을 벗어난 패션이나 기행 뒤에는 레이디 가가가 받아들인 수많은 음악들이 탄탄한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최고의 히트 상품인 동시에, 음악적으로도 한 번쯤 들어볼 법한 레이디 가가의 에 담긴 여러 요소들을 살펴봤다.

은 얼핏 보기에 21세기가 낳은 문화 잡식주의자의 정신없는 결과물처럼 보인다. 레이디 가가는 퀸과 데이빗 보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건스 앤 로지즈의 음악과 함께 스트립댄스를 췄으며, 그와 정식으로 레코딩 계약을 맺은 인물은 흑인 음악 신의 거물 에이콘이다. 또한 그의 얼굴은 때론 그룹 키스를 연상시키는 페이스페인팅으로 덮여있다. 모든 것이 하이브리드되는 21세기 초반에, 레이디 가가는 그 자체가 1970~2000년대의 대중문화를 수용해 그것을 글램록 뮤지션처럼 과장스럽게 부풀린 존재다.

레이디 가가는 에서 잡식성에 가까운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지만, 그것을 한 곡 안에 마구 뒤섞지는 않는다. 명민한 프로 작곡가답게, 그는 각각의 요소를 대중이 쉽게 눈치 챌 수 있을 만큼의 선에서만 혼합한다. 첫 번째 싱글 ‘Just dance’는 1980년대의 전자음을 수용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위에 누가 들어도 에이콘을 연상할 멜로디가 진행된다. ‘Beautiful, dirty, rich’는 레이디 가가가 자신이 곡을 줬던 푸시캣 돌스를 연상케 하고, ‘Eh Eh’ (Nothing else I can say)의 리듬과 사운드는 에이스 오브 베이스 같은 1990년대 유로 팝을 연상시킨다. ‘Again again’이나 ‘Summer boy’처럼 프레디 머큐리와 마돈나에 대한 오마주처럼 들리는 곡도 있다. 은 장르의 화학적 하이브리드 대신 여러 스타일의 레이어드인 셈이다.

각각의 트랙마다 레이디 가가의 음악적 자양분을 증명하는 이 앨범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은 지금 전세계 클럽들의 공통 언어인 클럽 사운드의 톤이다. 에서 가장 손쉽게 들리는 사운드는 1980년대를 연상시키는 신디사이저의 전자음이다. 하지만 에이콘이 제작자로 나선 앨범답게, 은 그것을 21세기의 클럽 사운드로 소화한다. 전자음 자체는 복고적인 사운드지만, 사운드의 톤은 그 시절보다 훨씬 더 짙은 질감으로 녹음됐고, 멜로디보다는 비트가 두드러진다. 유리스믹스를 연상케 하는 멜로디의 곡을 21세기의 클럽에 어울리도록 만든 ‘Poker face’가 대표적인 예. ‘Just Dance’와 ‘Poker Face’의 프로듀서 겸 엔지니어가 에이콘의 앨범에도 참여한 레드 원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은 힙합의 사운드를 바탕으로 일렉트로니카와 1980년대의 팝 멜로디가 얹어져 클럽에서 플레이 되는 지금 메인스트림 팝이 낳은 결과물이다.

레이디 가가의 음악은 그의 스타일과 퍼포먼스를 더해야 완벽하게 완성된다. 레이디 가가는 을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전시장으로 구성했고, 자신을 그것을 표현하는 퍼포머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글램록의 과장된 스타일이 클럽 패션과 만나고, 거기에 마돈나와 프레디 머큐리의 퍼포먼스가 더해진 레이디 가가의 무대는 그 자신을 과거와 현재의 모든 쾌락과 과시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그는 이 “연기와 예술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내한 기자회견에서 “무대 위 음악과 패션, 그리고 활동하는 모든 것들이 평소에 즐기는 모습 그대로다. 난 인생 자체가 한 편의 퍼포먼스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말한 것은 흥미롭다. 레이디 가가는 텍스트를 창조하는 대신 그 자신이 수많은 텍스트를 담은 또 다른 텍스트가 되면서 메인스트림 팝 뮤지션의 모든 행동을 행위 예술로 바꿨다. 그것이 레이디 가가의 대중문화적 자산이 21세기와 하이브리드된 이유다.

자체는 혁신적이거나 파격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앨범이다. 오히려 명민한 뮤지션과 제작자가 시대의 트렌드를 반보 정도 빠르게, 보다 명확하게 짚어낸 쪽에 가깝다. 하지만 레이디 가가는 팝 뮤지션들이 자신의 문화적 자산을 들고 클럽으로 들어갈 때, 그는 자신이 클럽에서 놀던 그대로 거리에 나와 클럽의 스타일을 대중의 거리 앞에서 보여준다. 레이디 가가는 마치 에 담긴 가장 ‘팝’적인 요소들의 레이어드를 대중 앞에서 그대로 보여주면서 마치 ‘대중적인 아방가르드’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점에서 은 음악이라는 한 분야 보다는 문화나 예술의 카테고리에서 다뤄질 때, 그리고 레이디 가가의 행위 예술이 그 힘을 잃을 때에야 정확한 평가가 가능한 작품일지도 모른다. 이 앨범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건 아주 새로운 음악이 아니라, 레이디 가가가 메인스트림 팝 시장의 틈을 찾아내 ‘돌+아이’와 뮤직 비즈니스의 균형을 지키며 즐겁게 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진제공_ 유니버셜 뮤직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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