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가가는 스타일로도 눈길을 끄는 아티스트다. 그녀는 올슨 자매처럼 ‘키 작은 사람도 멋지게 입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는 않지만, 브레이크 라이블리처럼 ‘나도 저렇게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진 않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옷 입기가 하나의 ‘주장(Statement)’이 될 수 있음을 가르친다. 얼핏 보면 그녀의 패션이란 ‘튀고 싶은 사람의 몸부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그녀의 몸부림은 일반인들이 흔히 갖고 있는 금기를 깨는, 심상치 않은 혁명이다. 레이디 가가를 보고 있는 동안 시종일관 ‘뭐 저런 미친 X이 다 있나?’ 싶다가도 어느 순간 ‘그래도 사는 건 즐거워!’란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건 아마도 그래서일 게다.

디올 쿠튀르 쇼는 그야말로 꿈의 무대다. 한 벌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드레스, 단 한 번의 쇼를 위해 수억 원을 들여 만든 쇼 무대, 단지 그 쇼를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부호들…. 그 속에 이방인처럼 앉아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우와~, 멋지다! 그런데 저런 옷은 대체 어떤 사람이, 언제 입는 걸까?’ 그때, 레이디 가가가 내 옆에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슈퍼마켓 갈 때도 입고, 극장 갈 때도 입고, 친구들 만날 때도 입지!” 레이디 가가는 디올 쿠튀르의 아방가르드한, 그러면서도 화려하기 그지없는 의상을 입고, 쿠튀르 쇼에 나왔던 모델들이 한 것 같은 ‘입술 반쪽’ 메이크업을 하고, *스테판 존스가 디자인한 모자까지 쓰고 (파티장이나 레드 카펫 위가 아닌)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유일한 여자다. 2007년 가을, 그녀가 첫 번째 싱글 앨범의 녹음을 앞두고 있던 무렵 가진 인터뷰에서 딸의 ‘가방 모찌’로 그 자리에 와있던 가가의 어머니는 이렇게 투덜댔다. “딸 애 때문에 미치겠어요. 디올 *쿠튀르뿐만이 아니라 디올 언더웨어까지 사댄다니까요! 이러다 거덜 나겠어요.” 그에 대한 가가의 답변은 이랬다. “엄마, 나도 미치겠어요. 집세 낼 돈이 없어서….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전 이렇게 고저스한데…(그러니 집세를 내기에 앞서 그에 어울리는 옷을 사야하지 않겠어요?)” 아아, 누가 쿠튀르는 부자들만의 특권이라고 했나? 왜 우리는 쿠튀르가 우리와 무관한 옷이라고 생각했던가? 여자들이여, 부디 쿠튀르를 포기하지 말지어다. 집주인에게 쫓겨날 각오만 되어 있다면….
*쿠튀르 : 19세기 이후 지속되어 온 패션 하우스들의 최고급 맞춤복 라인으로 소수의 고객들을 대상으로 컬렉션을 선보인다.
*스테판 존스 : 영국의 유명한 모자 디자이너. 특이한 디자인의 모자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가 만드는 모자의 값 또한 비싸기로 유명하다.

지금이야 ‘하우스 오브 가가’에서 필요한 의상과 소품들을 준비해준다지만 ‘뜨기’ 전까지 레이디 가가는 스팽글을 사다가 자신의 옷을 혼자 손질하곤 했다. 충분히 야한 레이스 브래지어를 몇 개씩이나 쌓아두고 일일이 스팽글 조각을 달고 있는 가가에게 어느 패션지의 기자가 “꼭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고 했을 때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당연하죠! 제 가슴이 클럽의 미러볼처럼 사람들을 황홀하게 하려면 이게 필요해요!”
레이디 가가의 패션 스타일링의 첫 번째 법칙은 ‘튀어야 산다’다. 그런 측면에서 노출은 사용하기 가장 저렴하고(마음 한 번 크게 먹고 눈 한 번 딱 감으면 된다) 사용하기 편리한 재료다. 하긴, 좀 보여주면 어떤가?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이번 방한 때 그녀가 입었던 전신 망사 슈트나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하의 생략’ 패션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터.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녀의 패션은 너무나 당당히 드러내는 나머지(망사 스타킹에 삼각팬티만 입는 경우도 허다하다) 야하거나 볼썽사납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레이디 가가의 공로 하나. 그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클럽에 갈 때마다 ‘똥꼬 치마’ 차림으로 동성 친구들의 질타를 받았던 여성들에게 레이디 가가는 면죄부가 되어주고 있다. “뭐 어때? 그래도 입긴 입었잖아? 레이디 가가 좀 봐. 요즘 뉴욕에선 아예 안 입고 돌아다닌다던데 뭘…”

검은 머리카락을 타고난 레이디 가가가 탈색을 결심한 건 에이미 와인하우스와의 차별화를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스타일 아이콘인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흰색에 가까운 금발의 뱅 헤어는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상징과도 같으니까. 그러나 그녀가 누구던가! 레이디 가가는 도나텔라를 벤치마킹 하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머리카락을 응용해 퍼포먼스까지 펼쳐 보인다. 미키마우스처럼 머리카락으로 리본을 만드는 걸로 부족해 얼마 전에는 총총 땋은 머리를 정수리 윗부분으로 쌓아올린 ‘탑 머리’로 파파라치들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명언 한마디. “게으름뱅이는 절대 미인이 될 수 없다.” 그녀의 헤어스타일이 아름다운가 그렇지 않은가는 주관적인 판단의 문제지만, 누구보다 부지런히 (신기한) 스타일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레이디 가가는 역시 스타일 아이콘이 될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레이디 가가의 스타일을 패션계에서 좋아하는 식대로 표현한다면 ‘레트로 퓨처리즘’, 우리말로 하자면 ‘복고적인 미래주의’쯤 되겠다. ‘복고적인 미래’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실은 간단하다. 1980년대, 디자이너들은 한창 미래주의에 빠졌더랬다. 그때 디자이너들은 라텍스로 스타트랙에 나오는 사람들이 입는 것 같은 의상을 만들어 내놓기도 하고,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결국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여성의 곡선이더라’고 세상 다 산 사람 같은 포스를 풍기며 몸매를 선연히 드러내는 대신 디테일은 극도로 배제한 밴디지 드레스를 만들기도 했는데, 레이디 가가는 이런 1980년대 디자이너들의 작품 세계를 옷 입기에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물론, 이런 레트로 퓨처리즘은 현재의 트렌드와도 적절히 맞아 떨어진다. 수많은 1980년대 디자이너 중에서도 레이디 가가가 주목한 디자이너는 티에리 뮈글러. 그녀는 티에리 뮈글러가 선보였던 몸에 꼭 끼는 라텍스 의상과 사도 마조히즘적 하이힐, 손에 꼭 맞는 가죽 장갑 등을 21세기 클럽 룩으로 절묘하게 승화시켰다. 이렇게 눈에 띄는 의상은 그녀의 작은 체구(155cm라고 하나 그보다 더 작을 것으로 사료됨), 그리고 무대에서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파워풀한 느낌이 필요하다는 그녀의 요구와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사진제공_ 유니버설 뮤직

글. 심정희 ( 패션디렉터)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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