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빈 : 꽃미남 재벌 2세 연기를 하지 않으면 그게 연기 변신이다. 영화에서 바보로 출연하고, CF에서는 신민아에게 키스할 수 있다. 장동건이 형으로 나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무릎 팍 도사’에 출연하면 “잘 생긴 얼굴이 고민”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원빈이니까. 그 원빈의 얼굴이 아닌 마음을 드러내고 싶었던 10여년에 관한 이야기.

최민수 : 영화배우. 원빈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최민수 주연의 <테러리스트>를 보고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 당시 원빈은 “잠깐 동안 활동을 하고 나면 외국에서 재충전을 하는 연예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직업 같았다”고. 하지만 그는 데뷔 후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사실 나한테는 단순 노동하는 게 맞다”며 연예계 생활의 어려움을 말했다. 실제로 원빈은 한 번 ‘벽돌 산’을 쌓을 때마다 1500원을 받는 막노동을 하기도 했었다. 또한 강원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각자 일과 학업으로 바쁜 가족들로 인해 많은 시간을 혼자 보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혼자 산에서 약초를 캐 시장에 내다 팔았을 정도. 그가 인터뷰나 오락 프로그램 출연을 지극히 꺼리는 성격이 된 이유라 할 수 있을 듯.

앙드레 김 : 패션 디자이너. 원빈의 신인시절 그를 눈여겨보고 패션쇼에 세웠다. 원빈은 그 때 패션쇼에서 그를 눈여겨 본 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맺으며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게 된다. 당시 원빈은 “하기 싫은 건 때려죽여도 안 한다”는 계약조건을 내걸었다고. 보통의 신인이라면 그런 말조차 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당시 원빈은 집에 있는 옷 중 그나마 괜찮은 옷을 입고 누나가 찍어준 프로필 사진으로 공채 탤런트가 되고, 곧바로 앙드레 김과 기획사 사장의 눈에 띄었으니 누가 뭐라고 할 수도 없었을 듯. 물론, 일반인들이 따라할 일은 아니다.

박근형 : KBS <꼭지>에서 원빈과 함께 출연한 연기자. 당시 박근형은 원빈에게 “그렇게 밖에 연기 못하니, 내 앞에서 다시 해봐”라고 호통 치며 그의 연기력을 끌어냈다. 당시 원빈은 KBS <프로포즈>, MBC <레디 고>, 일련의 CF 등으로 아름다운 꽃미남 캐릭터를 가졌지만, 자신의 매니저에게 “제대로 된 건달 한 번 해보고 싶다”며 <꼭지>를 선택했고, 작품 초반 하얀 러닝에 팬티만 입고 어슬렁거리며 연기 경력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영화 <우리 형>에서 원빈이 연기한 캐릭터는 명태의 또 다른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자신의 가족과 세상을 향해 반항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연기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까지 이어진다. 원빈은 “변두리 시골에서 자란 아웃사이더 건달 명태는 나와 가장 비슷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원빈은 “스포츠로 땀을 흘리는 것” 외에는 평소 특별한 피부 관리를 하지 않고, 액세서리도 하지 않으며, 답답하다는 이유로 넥타이를 하지 않는다. 강원도의 영혼과 데뷔 당시 압구정 출신으로 오해받은 얼굴의 흥미로운 동거.

윤석호 : 드라마 감독. 원빈이 출연한 <프로포즈>, KBS <가을동화> 등을 연출했다. 윤석호 감독은 원빈을 처음 만난 날 잠시 그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고, 다음날 그를 <프로포즈>에서 큰 개와 함께 사는 남자로 출연시켰다. 원빈은 강원도에서 개를 키우던 경험을 살려 그 개와 금세 친해졌다고. 또한 <가을동화>에는 비교적 일찍 캐스팅이 결정 돼 주 2회 연기 지도를 받으며 캐릭터 연구를 했다. 원빈은 훗날 “<가을동화>의 태석이는 실제의 나와 많이 달라서 내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연기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지만, <가을동화>의 재벌 2세 캐릭터는 ‘연기가 되는 꽃미남’인 그의 입지를 다져놓기 시작했다. 원빈은 <가을동화> 이후 꽃미남 재벌 2세 캐릭터를 다시 연기하지 않았지만, <가을동화>에서 보여준 그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이후 CF와 화보 등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장진 : 원빈의 영화 데뷔작 <킬러들의 수다>를 연출한 감독. 원빈은 <가을동화>의 성공 이후 비슷한 배역을 선택하는 대신 다소 맹한 구석이 있는 킬러를 연기하며 자신의 연기 폭을 넓혔다. 이를 통해 원빈은 순조롭게 영화계에 진입했고, “연기자들끼리 서로 정서적으로 교류할 시간도 있는” 영화의 매력을 안 뒤 영화에만 출연 중이다. 또한 그 전까지 출연한 배우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던 원빈은 <킬러들의 수다>에서 선배 배우들과 거의 매일 술을 마시다 술에 취해 집에 실려 가는 경험을 했다. 장진 감독은 원빈에 대해 “만나면 만날수록 알고 싶게 하는 배우”라고 말하기도 했다.

장동건 : 원빈이 “그렇게 잘생긴 사람과 연기할 생각을 하니까 쑥스럽다”고 말하는 배우. 원빈이 앙드레 김 패션쇼에 출연했던 그 때 처음 만났고, <레디 고>에서 원빈의 형으로 특별출연했다. 그리고 그들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다시 형제로 출연해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원빈은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 뒤 장동건에 대해 “영화가 끝난 후에도 늘 안부를 물어주고, 격려해줬다. 정말 고마운 선배”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주로 외모를 과시하지 않는 작품에 출연하고, 그 작품들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CF를 통해 외모의 매력을 극대화 시킨다. 또한 원빈은 <꼭지>, <가을동화>, <킬러들의 수다>, <태극기 휘날리며>, <마더> 등 주요 출연작에서 메인 캐릭터 대신 작품의 중심에서 한 발 떨어져 강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좋은 작품을 선택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운신의 폭을 넓히면서 작품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톱스타’의 부담감에서 한 발 물러날 수 있는 선택. 한편 <태극기 휘날리며>의 제작진은 ‘TV보다 실물이 더 나은 사람’을 뽑는 설문에서 근소한 차이로 장동건을 더 많이 선택했다고.

신하균 : <킬러들의 수다>와 <우리 형>에 함께 출연한 배우. 원빈과 가장 친한 배우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말이 없기로 유명해서, 한 번은 40분 동안 차 안에서 한 마디도 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원빈은 스스로 “연예인은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토크면 토크 다 잘하는데 나는 딱히 내세울 게 없다”고 말하기도 했고, “맨날 똑같은 질문만 한다”며 인터뷰도 꺼릴 만큼 내성적인 성격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서 가장 강한 스타성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알려져 있지 않은 스타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는 배우가 ‘연기’와 ‘이미지’로만 남을 수 있었던 시대의 마지막 세대일지도.

김혜자 : 영화 <마더>에서 그의 어머니로 출연한 배우. 원빈은 봉준호 감독김혜자가 함께한 <마더>를 통해 군 제대 후 복귀를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동시에 자신의 연기 인생에 있어 새로운 분기점을 마련했다. <킬러들의 수다>의 다소 맹해 보이는 순수한 막내를 통해 원빈의 외모를 기존의 통념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용했고, <꼭지>와 <우리 형>의 반항아 캐릭터는 원빈의 외모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 두 가지 모습을 함께 보여줬다. 반면 <마더>에서 원빈이 연기한 도준은 사실상 굳이 잘생기지 않아도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이다. 또한 지능이 모자라는 도준의 캐릭터는 원빈의 그 얼굴을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도 있는 유력한 살인 용의자의 얼굴로 바꿔 놓았다. <마더> 이전의 원빈은 자신의 얼굴이 주는 이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했다. 반면 <마더>는 원빈의 얼굴을 넘어, 그가 배우로서 온전히 작품 속의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던 작품이었다. 자신의 얼굴과 상관없이 살던 어린 시절, 얼굴에 순응하던 데뷔 시절, 얼굴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려 했던 톱스타 시절을 지나, 원빈은 얼굴이 잘생긴 ‘배우’의 시절로 접어들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 둘 씩 늘어날 때 쯤이면, 원빈도 그의 바람대로 “연기자보다 극중의 역할이 부각되는 연기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여전히 너무 잘생기긴 했지만.

Who is next
에서 원빈의 어머니였던 김해숙과 에 출연한 이승기

글. 강명석 (two@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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