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도 없이 지하철을 타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그는 인사와 함께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염동헌, Actor. SBS <시티홀>에서 고부실 시장으로 등장한 그의 이름과 직업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명함을 만들어야 할 만큼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배우는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고부실 역을 통해 밉살맞지만 왠지 인간적 연민이 느껴지는 모습을 보여준 그의 연기는 인상적이었고, <마더>와 <거북이 달린다> 같은 최신 영화에서도 그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 알려진 게 거의 없지만 언젠가부터 얼굴은 익숙해진 이 배우에게서 20년차 연극쟁이가 고부실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보았다.

작년 MBC <베토벤 바이러스>에도 출연했지만 아무래도 이번 <시티홀>을 하면서 주위 사람의 반응이 달라졌을 것 같다.
염동헌
: 고향이 강원도 속초인데 그곳 친구들이나 어머님 친구 분들이 응원 전화를 많이 해주신다. 물론 유명세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예전보단 알아봐 주시니까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연기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은 생긴다.

“고부실의 무좀 양말, 가발은 내게서 나온 것”

<시티홀>의 고부실이 인상적인 건 초반 비중 때문이기도 하지만 몇몇 디테일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다. 가령 조국의 면담을 거부하며 무좀 양말을 비비적거리는 모습 같은.
염동헌
: 대본에 있는 지문에는 그냥 양말을 만지작거린다고만 써져 있었다. 그걸 보며 왜 양말을 만질까 생각해봤다. 아마 발이 가려워서일 거고, 그렇다면 무좀이 있을 테고, 그럼 무좀 양말을 신는 게 어울릴 거 같았다. 그런데 또 마침 신문을 보는 장면이니까 책장 넘기듯 발가락 후빈 손으로 침을 묻혀 신문을 넘긴 거다.

그런 식의 애드리브가 많은 편인가?
염동헌
: 애드리브를 할 때도 있고, 감독님과 상의할 때도 있고. 가발을 썼다 벗었다 하는 장면의 경우, 감독님께 처음 인사하는 자리에서 만들어진 장면이다. 그날 모자를 쓰고 갔는데 인사 하느라 모자를 벗었다가 다시 쓰고, 그러다 더워서 다시 벗었다. 그런데 또 너무 벗겨진 머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서 다시 썼더니 감독님께서 그게 너무 재밌다며 가발을 제작해 썼다 벗었다 하는 장면을 넣자고 하셨다. 김선아 말로는 자기네 어머니가 <시티홀>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 내가 무좀 양말 만지는 거랑 가발 벗겨지는 거였다고 하더라. 인간적이라고. (웃음)

실제로 고부실의 경우 정치적으로는 올바르지 못한 인물이지만 비리조차 부실하게 저지르는 그런 어설픈 면 때문에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염동헌
: 우선 김은숙 작가가 내 캐릭터를 잘 잡아준 게 있고, 나도 김은숙 작가에게 제안한 부분이 있다. 고부실이라는 사람은 왠지 현실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너무 주도면밀하게 움직이면 보기에 미운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식하게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야 인간적인 면이 나올 거 같다고 제안했고 작가도 흔쾌히 받아줬다.

인기 드라마에서 제법 비중 있는 역할도 맡았고, 최근 영화 <마더>나 <거북이 달린다>에서도 얼굴을 볼 수 있지만 그 이전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염동헌
: 그럴 거다. 20년 동안 연극만 했으니까. 대학 졸업하자마자 다른 직장 안 들어가고 연극을 시작했다. 그러다 아까 말한 영화들에서 단역을 맡게 된 거다.

너무 빤한 질문이지만 연극만 할 때는 금전적인 어려움이 있었겠다.
염동헌
: 솔직히 말해 대한민국에서 연극만 하며 살아간다는 건 노숙과 거의 다름없을 거다. 다른 게 있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성취욕이 있다는 것? 경제적으로만 따지면 정말 일반인들이 상상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연극을 딱 10년 했을 때 연극으로 받은 개런티를 따져봤더니 800만원 벌었더라. 직장인 1년 연봉도 안 되는 돈이다.

“극단에 있을 땐 혼자 돈까스 먹었다고 맞기도 했다”

역시 빤한 질문이지만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나.
염동헌
: 왜 없겠나. 내가 3대 독자인데 부모님께선 당연히 내가 연극하는 걸 좋게 보지 않으셨다. 연극을 볼 일이 없으니 그냥 딴따라라고만 생각하셨지. 그런데 아버님 사업이 좀 잘 돼서 내게 설악산 쪽에 땅 1000평을 사줄 테니 카페를 짓고 운영하면서 극단 식구들은 아르바이트를 시키고, 그곳에서 공연도 하라며 내려오라고 하셨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연극을 그만두고 싶단 생각도 있을 때라 고향에 내려가 6개월 정도 지냈다. 그런데 IMF가 터지면서 아버지 사업도 잘 안 풀리자 땅을 안 사주셨고 결국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그냥 부모님 곁에 있었으면 제법 유복하게 지낼 수 있던 환경이었던 건데 굳이 연극인의 삶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염동헌
: 대학시절 연극반 활동을 했다. 지금은 작고하신 김시라 선생님께서 우리 학교 근처에서 품바 공연을 하면서 포스터 붙이는 것과 진행에 우리 인력을 활용했다. 그 때 김시라 선생님이 우리 연습하는 곳에 와서 대학 졸업하고서도 연극할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셨다. 사실 그때만 해도 연기를 할지, 직장에 다닐지 정한 게 없었는데 치기 어린 마음에 손을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손을 든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연극에 더 몰두하게 된 거다. 그래서 대학 졸업하면서 연희단 거리패의 이윤택 선생님 극단에 들어가 부산에 있는 가마골 소극장에서 연기도 정말 많이 배우고 무대 작업을 비롯한 노가다도 하고, 맞기도 많이 맞으며 3년을 지냈다.

많이 힘들고 바쁜 시절이었나 보다.
염동헌
: 단원들이 모든 걸 해결하는 시스템이었으니까 조명부터 무대 세팅, 심지어 의상까지 우리가 직접 해결했다. 같이 자고, 먹고, 연습하고, 무용하면서 새벽 6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끊임없이 시스템이 흘러간다. 또 극단이기 때문에 ‘우리’라는 개념이 강했다. 언젠가 포항공대에 초청 공연을 간 적이 있다. 교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나는 그냥 곁에 있던 교직원이 추천해준 돈까스를 먹었다. 그런데 다른 대부분의 단원은 오징어덮밥을 먹은 거였다. 그날 밤 연출하는 분께 정말 무지하게 맞았다. 먹는 것 때문에 맞은 게 너무 서러워서 샤워기 틀어놓고 펑펑 울었다. 그 땐 그렇게 극단 식구들 간 의리가 중요했다.

굉장히 완고한 분위기 속에서 연기를 했던 건데 최초의 영화, 혹은 드라마 출연은 언제였나.
염동헌
: 2002년 개봉한 <서프라이즈>라는 영화에서 인천 국제공항에 근무하는 경비원 역할을 맡았었다. <시티홀>에 변국장으로 나오는 류성현도 연극판에 같이 있던 후배인데 그 친구가 추천해줬다. 큰 역은 아니었지만 첫 걸음을 디딘 거지. 그런데 그때만 해도 연극하는 사람은 영화나 드라마를 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둔한 건데 연극을 떠나 다른 곳에서 성공하면 일종의 변절자로 봤다. 아무래도 몸과 마음보단 머리의 이상이 더 앞설 때니까.

그럼 많이 고민하며 영화에 출연했겠다.
염동헌
: 그렇다. 그런데 또 다른 편에선 메이저에 진출하지 않고 연극판을 지키는 선배를 존중하기보단 오히려 무능력하게 보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 게 싫어 영화나 드라마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다만 <경찰청 사람들> 같은 재연 프로그램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건 예술적 욕심보단 금전적인 유혹 때문에 하는 거니까.

그래도 돈이 들어오지 않나.
염동헌
: 연기자는 적당히 배고프고 적당히 고민해야만 자기 안에서 뭔가 나온다. 쉽게 가려고만 하면 무대 위에서 깡통 같은 모습만 보일 뿐이다. 너무 배부르면 연기에 대한 고민을 안 한다.

“김은숙 작가와는 10년 전, 연극판에서 처음 만났다”

그럼 주류 매체를 통한 연기 활동은 얼마 되지 않는 셈인데 고부실 역할은 어떻게 맡게 됐나.
염동헌
: 10년 전에 김은숙 작가와 대학로에서 <혜화동 파출소>라는 연극을 했었다. 그 때 인연을 맺었는데 이번에 연락을 준 거다. 회차가 많지 않아 미안하지만 좀 해줄 수 있겠냐고 해서 흔쾌히 출연하기로 했다.

연극판에서의 김은숙은 어떤 작가였나.
염동헌
: 방송작가 하기 전에 대학로에서 희곡작가로 굉장히 이름이 알려졌던 작가다. 서울예전 졸업한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도 <혜화동 파출소> 같은 히트 작품을 냈었으니까. 지금의 신우철 감독님과 그렇듯 연극 쪽에서도 찰떡궁합을 자랑하던 연출자가 있었는데 <혜화동 파출소> 이후 2, 3년 뒤 그가 운명을 달리했다. 만약 그 일이 아니었다면 좀 더 오래 연극 일을 하며 입지를 굳혔을 거다. 김은숙 작가는 대본 안 늦기로 유명한데 아마 공연 훨씬 전에 대본을 끝내야 하는 연극 시스템에 익숙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본인은 어떤가. 연극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는데 드라마가 어렵진 않았나. 관객이 아닌 카메라 앞에서 연기해야 하는데.
염동헌
: 연기 자체로는 다른 게 없다. 다만 연극은 관객의 피드백을 바로 느낄 수 있고, 영화에선 컷 찍고 나서 모니터를 보며 교정하는 게 가능한데 드라마는 그럴 수 없으니 내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진다. 그럴 때 주위 동료나 감독이 체크 해주는 게 정말 고마웠다. 아, 이 얘기는 꼭 적어주면 좋겠다. 배홍수 촬영감독과 박만창 조명감독이 정말 현장에서 많이 격려해주고 힘을 줬다. 덕분에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이제 사람들도 조금씩 알아보는 입장이 됐는데 주류 매체를 통한 작업을 꾸준히 할 건가.
염동헌
: 일단 칼을 뽑았으니 끝장을 봐야할 것 같다. 2, 3년 동안은 연극무대보단 이쪽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 그러다 어느 정도 업그레이드되면 그 때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무대에 복귀하고 싶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배우로서의 배고픔을 지킬 필요도 있을 텐데.
염동헌
: 배고픔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 같이 노력을 했던 동료들의 끈끈함이나 배고픔, 그리고 우리라는 개념을 잊지 않을 거다. 이미 그런 걸 경험해봤으니까. 또 언제든 비판의 칼을 던질 선후배가 있기 때문에 어떤 활동을 해도 무뎌지지 않을 자신은 있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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