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문학을 대하는 일이 어쩐지 불경스럽게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쓰여 진 글에는 반드시 거대한 비밀이 숨어 있고, 읽는 이는 때때로 고개를 조아리고 그 속에 숨은 암호들을 해독해야만 진정한 문학적 행위가 완성되는 것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술술 넘어가는 일본 장르문학을 읽고 나서도 이러한 소설이 탄생하게 된 일본 사회의 문화적 배경에 대해 생각해야만 편히 잠들 수 있는 날들 말이다. 그러나 즐거움이 빠진다면, 과연 그것이 문학일까. 나에게 의미보다는 재미에 몰두하는 책읽기의 기쁨을 알려준 것은 코니 윌리스였다. 그리고 어느 날 서점에서 코니 윌리스 옆에 꽂혀있다는 이유만으로 새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를 뽑아 든 순간, 나는 오래된 짐을 부려놓 듯 책읽기의 엄숙함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는 정말로 거두절미하고 ‘재미있다!’ 작가가 그리는 그 시대가 놀랍도록 생생하고, 신분과 젠더의 문제가 다이나믹하게 전복과 회복을 거듭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역시 러브스토리다. 핑거 스미스, 그러니까 가난한 소매치기와 젊은 상속녀의 사랑이 음모와 협잡에 휘말리는 과정은 밤을 꼴딱 새워서라도 읽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로맨틱하고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사람이 모두 여자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새라 워터스는 ‘레즈비언 역사 추리물’에 능통한 작가인데, 이러한 경향은 최근 번역 출간된 그녀의 데뷔작 <벨벳 애무하기>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평범한 아가씨가 연예장의 가수와 사랑에 빠져 런던의 어두운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이야기로 역시 흥미롭기를 이루 말할 수 없으며, 역시 연예장의 가수는 여자다. 사랑의 환희와 스릴러로서의 긴장감 모두를 만끽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두께에 지레 겁을 먹은 독자들은 너무 염려 마시라. <핑거 스미스>와 <티핑 더 벨벳(벨벳 애무하기)> 모두 BBC에서 3부작으로 제작, 방영 한 바 있다. 물론, 시청각의 자극보다 상상력의 힘이 크다는 점은 말 해 무엇 하겠나.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