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그걸로 끝인가 했다. 형광색 타이즈 말이다. 명동에서 형광색 타이즈에 헤어밴드를 한 십대들이 걸어가는 걸 보는 순간 패션계의 80년대 복고 열풍도 이걸로 끝인가 싶었다. 원래 복고 열풍은 그 시절 가장 괴상했던 아이템이 돌아오는 순간 끝물을 타기 마련이다. 오판이었다. 발맹이니 마르지엘라니 하는 유럽 디자이너 레이블이 런웨이에 등장시킨 어깨 뽕 가득한 재킷을 입은 여자들이 청담동과 홍대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남자애들은 소방차의 승마 바지를 연상시키는 배기 팬츠를 입는다. 심지어 도대체 그딴 촌티 아이템이 왜 돌아오겠냐며 마음을 놓았던 스노우진마저 유행이다. (패션으로 따지자면 역시 90년대 미니멀리즘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80년대 복고 무드가 제발이지 패션과 음악계에서만 짧게 머무르길 바랐다. 하지만 한국의 80년대 복고 열풍은 결국 정치계마저 집어삼켰다. 2009년 6월의 명동은 1987년 6월의 명동이다. 시민들은 시국선언을 하고 경찰은 시국선언하는 시민들을 개잡듯이 잡는다. 그들에 따르면 이제 명동은 “데이트하기에 위험한 장소”다. 형광색 타이즈의 아이들이 쇼핑을 하는 뒤로 경찰은 방패를 내리찍는다. 방패를 내리찍는 뒤로 형광색 타이즈의 아이들은 쇼핑을 한다. 우리는 지금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

글. 김도훈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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