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번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못 지켰잖아요. 아토스를 비롯한 총사들은 고난 끝에 왕을 지켜내는데, 우리는 우리의 왕을 못 지켰으니까 연기하면서도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뮤지컬 <삼총사>(The Three Musketeers)를 만화 같은 작품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그 순간 아차, 싶어졌다. “<삼총사>가 사실은 굉장히 허황된 이야기일수도 있는데, 요즘은 ‘어쩜 이렇게 현실과 같은가’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지금 이렇게 아무도 서로를 지켜주려 하지 않고, 의리라는 것이 사라진지 오래된 상황에서 정의나 사랑 같은 것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세 사람의 모습이 아프고,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슬픔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끝에 배우들도, 관객들도 다들 우는 거 같고. 작품 안에서 정의는 살아있다, 라는 말을 계속 외치듯 그런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배우의 몫인 것 같아요.”

그런 스스로의 감정 때문인지 유준상은 작품과 현실의 교집합을 찾아내 아토스를 연기 중이다. “맏형으로서의 책임감, 왕을 향한 충성심,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지 못한 슬픔들을 표현해야 되는 인물이라서 애드리브를 최대한 피하고 정통으로 하려고 해요.” 1998년 뮤지컬 <그리스>의 대니로 데뷔한 이후 그동안 무대에서보다 TV와 영화를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던 그는, 2007년 창작뮤지컬 <천사의 발톱>을 시작으로 다시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처음 뮤지컬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너무 열악했거든요. 그래서 내가 잘돼서 다시 돌아오리라 (웃음) 생각하고 잠깐 드라마 하고 있는 사이 뮤지컬이 급성장한거죠. 아차, 싶고 ‘뮤지컬 계속하면서 할 걸’이라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하하. 그래서 여기서 다시 시작하자라는 생각으로 요즘은 최대한 올인하고 있어요.” 오랜 기다림 끝에 돌아와서일까. 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도 마다하지 않으며, 의도치 않았지만 사랑하는 이를 사지에 몰아넣은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아토스가 더욱 절실해진다.

프랑스 소설가 뒤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체코뮤지컬 <삼총사>는 우정, 사랑, 정의, 충성 등 굵직굵직한 단어들이 주는 무게감을 털어내고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로 주제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라이선스 작품이기는 하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비해 다양한 버전으로 각색이 가능한 체코뮤지컬 특성상 많은 부분의 수정을 거쳐 한국만의 <삼총사>를 만들어 냈다. “이 작품은 우리 기술로 만든 우리의 뮤지컬이에요. 내용은 정말 거의 다 각색을 했고, 2막은 아예 창작이에요. 무대 위에 배가 떠다니고, 마차가 움직이고 이런 건 전부 연출님이 낸 아이디어거든요. 정말 이젠 외국 뮤지컬에 뒤지지 않는 그런 작품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나올 것 같고, <삼총사>를 하면서 그런 자부심이 커졌어요.”

현재 공연 중인 <삼총사>는 평일, 주말을 막론하고 공연장을 가득 매운 수많은 관객들이 기립해 열광하는 광경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 뜨거운 반응만큼이나 6월 21일 서울공연 이후에는 대구, 전주를 비롯한 총 11개 도시의 지방투어가 남아있고, 내년 앵콜 역시 예정되어 있다. “시작을 뮤지컬로 했고 관객 3명을 앞에 두고 공연한 적도 있기 때문에 정말 이런 열광적인 반응이 나오면 너무 행복해요. 그래도 흔들리지 않는 배우가 되어야 해요. 지금 이 작품에서 기립한다고 해서 다음 작품에 기립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요”라며 웃는다. “공연을 계속하는 것이 목표이고, 공연 중간 영화를 찍는 것이 제일 바라는 모습”이라 말하는 유준상은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로니를 찾아서>를 거쳐 11월 또 다른 체코뮤지컬 <살인마 잭>에 출연한다. 19세기 영국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만든 작품 <살인마 잭>은, 사체를 유기하는 등 잔인한 수법으로 창녀들만을 골라 살인을 저지른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다루며 당신의 밤을 위협한다. 어두운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기다리게 되는 또 한 가지의 이유가 생겼다. 바로 예기치 못한 곳에서 무릎을 ‘탁!’하고 치게 만드는 순간을 만드는 이 남자, 유준상 때문이다.

‘약속’
유준상은 <삼총사>의 넘버 중 아토스가 부르는 ‘약속’, 삼총사가 함께 부르는 ‘우리는 하나’, 전직 오페라가수였던 아라미스의 오페라 신을 언급했다. 특히 극중 ‘약속’은 밀라디를 그저 복수에 눈이 먼 간첩으로만 생각했던 관객들에게 아토스와 밀라디의 전사(前史)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아토스가 악마가 되어서라도 그녀가 살아있기만을 바랬던 마음을 폭발해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약속’은 사랑했던 밀라디 앞에서 그녀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부르는 곡이에요. 뮤지컬 시장이 커진 만큼 이젠 관객들의 안목도 많이 높아져서 노래 연습을 정말 많이 하고 있어요. (웃음)”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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