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2009년 상반기 엔터테인먼트 결산’ 포커스를 내놓은 <10 아시아>는 이번 주 ‘상반기 드라마 결산’을 준비 중입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엔 늘 한 주의 회의가 있는데, 지난 주 2009년에 방영된 드라마 한편 한편을 곱씹어 보던 끝에 우리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뱉었습니다. “<꽃보다 남자>라니, <스타의 연인>이라니 정말 옛날 같다. 요즘엔 인기를 끄는 속도보다 잊혀지는 속도가 더 빠른 것 같아.”

그러게요. MBC <돌아온 일지매>의 첫 회를 보고 가슴 두근거렸던 것도, F4의 유치찬란한 등장에 입은 비웃고 있지만 눈은 도저히 벗어나지 못하던 순간도, 심지어 애리의 이글거리는 눈빛도, 은재의 복수도, 태봉 씨의 ‘네버 엔딩 스토리’마저도 꽤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질 정도니까요. 이처럼 종영과 함께 한편의 드라마에 대한 사랑이나 관심이 빛의 속도로 사라져 가는 것만큼,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나 열광 역시 갈수록 섣부르고 조급하게 이루어집니다. 드라마는 1회만 나가면 이미 모든 기사나 여론의 분위기가 대동단결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오락프로그램은 떡잎이 나기도 전에 꽃과 열매에 대해 논합니다. 이런 호들갑 속에서 정작 6개월을, 1년을 준비하고 기다려온 프로그램들은 급히 배를 가르고 끄집어 낸 조산아가 되거나 혹은 얼마 살지도 못한 채 바로 무덤으로 향합니다.

조기종영과 긴급편성이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의 방송가. 적당한 속도와 진득한 기다림이 만들어낸 자연 숙성된 프로그램은 멸종 위기의 동물들처럼 드물게 목격 될 뿐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등장도 퇴장도 모두 무의미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만 느리게 걸을 순 없을까요? 아니, 속도의 최전선에 놓인 엔터테인먼트 월드, 그것도 인터넷 잡지의 편집장이 할 소리냐고요? 글쎄요. 오히려 빠르게 바뀌고 수시로 변하는 이 흐름 속에 있다 보니, 이 스피드 레이서들의 치열한 경주 속에도 결국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들은 그 속도전의 산물이 아님을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2년을 준비한 MBC <트리플>이 이번 주 시작됩니다. 거의 촬영을 마친 드라마 MBC <친구, 우리들의 전설>이 오는 27일 방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작품에 쏟은 정성과 시간을 시청자들이 굳이 헤아려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대신 그들이 걸어온 창작의 속도만큼 천천히 꼼꼼히 봐줄 필요는 있습니다. 당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그 세상의 속도를 늦추는 브레이크는 오직 당신만이 밟을 수 있으니까요.

글. 백은하 (o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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