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대박 났다. 시청률 30%, CF, 드라마에서 부른 노래로 디지털 음원 차트 강타. 얼마 전까지 그를 “늦은 나이에 데뷔한”이라고 했던 기사들은 이제 ‘30대 구준표’로 수식어를 바꿨다. 구준표가 조금 오래 전 남자로 느껴질 만큼, MBC <내조의 여왕>의 태봉 씨, 혹은 허태준 사장은 재벌 2세의 새로운 브랜드가 됐다. 그리고 윤상현은 <내조의 여왕> 쫑파티에서 지금 이 순간을 한 마디로 말했다. “서른일곱, 인생 최고의 순간”

“저는 출연하고, 또 출연할 거예요.” 지금 윤상현의 앞에는 무수히 많은 CF가, 어깨에 잔뜩 힘을 줄 수 있는 시나리오들이, 기무라 타쿠야가 사는 일본에서의 <내조의 여왕> 프로모션이 기다린다. 하지만 윤상현의 활동 계획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단순하다. MBC <겨울새>와 MBC <크크섬의 비밀>에 출연하며 ‘찌질남’으로 불렸던 1년 전에도, ‘태봉 씨’인 지금도 그의 매니저는 끊임없이 시나리오를 들이민다. KBS의 편성 무산으로 출연할 수 없게 됐지만, 윤상현은 6월에 방송 예정이었던 <매거진 알로>에 출연하려 했었다. 이유? 윤상현의 카운터 펀치. “저는 생활형 연기자니까요.”

‘한국의 기무라 타쿠야’가 생활형 연기자가 되기까지

재벌 2세의 외모를 가진 생활형 연기자. 이 모순에 가까운 문장은 윤상현의 흥미로운 행보를 설명할 수 있는 열쇠다. 그가 데뷔했을 무렵, 당시 소속사는 그를 ‘한국의 기무라 타쿠야’로 포장했다. 감독들은 “촉촉이 젖어있는 눈빛”이 좋다며 그에게 스타일리시한 재벌 2세의 캐릭터를 부여했다. 하지만 또 다른 현실. 윤상현이 데뷔작인 SBS <백만장자와 결혼하기>의 프랑스 촬영을 떠나던 날, “양 손 가득 짐을 들고 나서는 것을 들켜” 그제서야 부모님에게 연기자로의 ‘취업’ 사실을 말했고, 부모님은 돈을 벌어야할 아들의 엉뚱한 선택에 한숨을 쉬었다. 인터넷 카페에 올린 단 한 장의 휴대폰 사진으로 여러 매니지먼트사로부터 명함을 받았지만, 그는 그 사진을 올리기 전까지 20대를 회사원, 옷장사, 분식집 운영 등으로 보냈다.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촬영장에만 가면 울고 싶었고, “TV에서나 보던 여배우와 연기를 하는 게 너무 떨려서” 울렁증까지 있었다. 그 와중에도 윤상현은 캐스팅 되는대로 출연하고, 출연하고 출연하면서 지난 3년 6개월 동안 7편의 드라마에서 주연급으로 출연했다.

생활형 연기자는 연기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연기를 한다. 그러나 재벌 2세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외모의 생활형 연기자는 이미지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캐릭터를 질러 버릴 수 있다. “드라마가 너무 무겁잖아요. 그나마 재미있을 수 있는 부분이 저하고 박원숙 선생님이 나오는 부분뿐이니까 캐릭터를 좀 재밌게 바꿔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윤상현은 스스로 MBC <겨울새>의 캐릭터 경우를 무거운 성격에서 무슨 일만 생기면 ‘엄마’를 찾는 ‘울보 찌질이’로 바꿨고, MBC <크크섬의 비밀>은 가끔 그 ‘촉촉한 눈빛’이 보이지 않을 만큼 주책 맞고 가벼운 회사원을 연기했다. 그 사이 <겨울새>의 실질적인 상대역이었던 박원숙은 그에게 “진심으로 연기하는 법”을 가르쳤고, 시트콤의 코미디와 드라마의 로맨스를 함께 가졌던 <크크섬의 비밀>은 그에게 일상적인 연기의 톤 안에서 코미디의 호흡을 유지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톱스타 놀이’와도 매너리즘과도 거리가 먼 이름

<내조의 여왕>의 태봉, 혹은 태준은 이 기막힌 눈빛의 생활형 연기자가 쌓아놓은 퇴적물이 층층이 굳어져 만들어낸 새로운 땅이다. <백만장자 결혼하기>와 SBS <독신천하>에서 온갖 멋진 폼을 잡아보며 만들어진 재벌 2세의 스타일이, <겨울새>와 <크크섬의 비밀>의 코미디가 <내조의 여왕>의 태준에 녹아들었다. 그는 <내조의 여왕>에서 멋진 옷차림을 하고, 회사의 경영권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어느새 비서와 말장난을 주고받는다. 그 무게를 감당할 주제도 못 되면서 ‘톱스타 놀이’에 빠진 어떤 연기자는 스스로의 이미지에 갇힌다. 반대로 배역 선택의 자유로움을 잃어버린 어떤 생활형 연기자는 반복적인 패턴의 연기자에 갇힌다. 하지만 데뷔 전에도 “똑같은 걸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윤상현은 생활을 위해 끊임없이 연기를 하는 사이 돈도 벌고, 연기도 배우고, 하나로 굳어지지 않는 이미지도 얻었다.

윤상현은 <크크섬의 비밀>의 윤대리가 당첨된 로또보다도 더 큰 대박을 맞았다. 하지만 연기를 그저 열심히 하는 것 외엔 딱히 그리는 목표도 없고, 여전히 한류스타가 되거나 하는 건 자기 관심 밖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로또 당첨 뒤에도 자기 생활을 유지하는 성실한 직장인처럼 보인다. 어쩌면 윤상현이라면 톱스타이면서도 배우 같고, 배우이면서도 눈에 힘주지 않는 유니크한 매력의 남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윤상현은 대박 났다. 하지만, 왠지 그는 앞으로 더 큰 대박이 날 것 같다. 출연하고, 출연하고, 또 출연하는 사이에.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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