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하하하하!” 윤상현을 인터뷰하는 동안 그의 시원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 내내 모든 질문에 즐겁게 대답을 했고,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 얘기할 때면 때론 목소리까지 높여가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가 어떻게 MBC <내조의 여왕>에서 장난스러운 태봉 씨와 회사의 경영권을 지켜낸 재벌 2세 태준을 연기할 수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고, 진지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윤상현의 시원시원한 인터뷰.

<내조의 여왕> 뒤 당신에게 가장 변한 게 있다면?
윤상현:
일단 기분이 좋다. (웃음) 이 맛에 연기하는구나 싶고. 옛날에는 내 얼굴은 알아도 윤대리, 마마보이 이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젠 고등학생도 내 이름을 알고 불러줘서 너무 고맙다.

“현실에서도 있을 법한 남자를 보여줘서 사랑받은 것 같다”

<내조의 여왕>의 태준이, 혹은 태봉 씨는 기존의 재벌 2세와 달리 굉장히 어깨에 힘을 뺀 캐릭터다. 선택할 때 어땠나.
윤상현:
태준이는 뒤로 갈수록 재미있게 바뀐 캐릭터였다. 처음에는 차갑고 까칠한 인물이었는데, 작가님이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갈수록 인간적인 캐릭터로 바꿔 주셨다. 환상적으로 멋진 남자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있을 것 같은 남자를 보여줘서 시청자들이 그런 부분을 좋아해 주신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연기 톤을 맞추기 어렵지는 않았나. 진지함과 유머가 한 장면 안에서도 계속 섞이는 캐릭터인데.
윤상현:
준비 시간이 짧아서 어렵고 뭐고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웃음) 나는 캐릭터를 준비하려면 촬영 전 1,2개월 정도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내조의 여왕>은 2주밖에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내가 생각한 부분과 감독님 생각이 달라서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나는 태준이일 때는 살짝 옛날의 실장님들처럼 하고, 태봉이는 약간 풀어지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은 내 연기가 그런 구분이 잘 안된다고 지적하면서 중심을 잡아주셨다.

<내조의 여왕>에서는 갈수록 그 두 모습이 합쳐진다는 느낌이었다.
윤상현:
오호! 그래서 태봉이가 더 인기를 얻었던 것 같다. (웃음) 천지애 앞에서만 태봉이어야 하나, 원래 그런 성격이 있는 것 같으니까 평소에도 그걸 섞어야 하나 하는 걸로 고민이 많았다. 그렇게 태준과 태봉을 왔다갔다하다보니까 내 머릿속에 얘가 딱 들어 왔다.

어떻게?
윤상현:
하다보니까 됐다. 일단 MBC <겨울새>나 MBC <크크섬의 비밀>을 하면서 카메라 앞에서 하는 작업이 즐거워졌고, 그 때부터 캐릭터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옷깃을 세우는 것, 손동작 하나까지도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니까 태준이와 태봉이가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요리를 할 때 처음에는 물과 밀가루가 따로 나눠져 있지만 반죽을 하다보면 한 덩어리가 되지 않나. 그런 거다.

“<겨울새>에서 박원숙 선생님을 만난 사건이 결정적”

전에 연기를 하다보면 마치 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이 있다고 했다. 이번에도 그런 적이 있나.
윤상현:
그런 건 그 캐릭터에 대해 몰입하는 과정에서 경험한다. <크크섬의 비밀>의 윤대리일 때는 온갖 방정을 떨면서 놀았다. (웃음) <겨울새>의 경우를 할 때는 촬영장에서 만날 선생님들한테 가서 애교떨었고. <내조의 여왕> 할 때는 일단 멋있게 보여야하니까 멀리서 풀 샷을 찍을 때도 허리를 편 채로 앉아 있었다. 그렇게 생활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연기는 테크닉보다 캐릭터의 상황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데뷔전까지 연기를 기술적으로 배우지 않아서 가능했던 것 아닌가.
윤상현:
맞다. <겨울새>에서 박원숙 선생님을 만난 게 결정적이었다. 그 분은 나와 연기하면서 진심으로 하라고 하셨다. 대본의 지문 같은 거 상관하지 말고, 그 신을 파악하고 진심으로 연기하면 된다고 했다. 그 전까지는 솔직히 만들어서 연기를 했다. 누구 연기를 보면서 따라하고, 멋있는 척하고. 그런데 박원숙 선생님에게 배우면서 가슴에 와 닿는 연기를 배우게 된 거 같다.

하지만 당신이 데뷔하자마자 주연급에 캐스팅되면서 사람들은 당신이 소속사가 오랫동안 준비시킨 연예인이라고 생각했었다.
윤상현:
전혀. 난 그 때 회사에 힘들어 죽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한테 연기 잘 봤다고 하고. 나는 감정을 실어서 연기한 게 아닌데.

연기를 시작 했을 때 촬영장에 가는 기분이 다른 연기자들과 달랐을 것 같다.
윤상현:
보나마나지. 조명 맞추고 카메라에 서면 그 때부터 ‘우박이나 떨어져라, 전쟁이나 나라’ 이런 생각이나 했다. (웃음) 어떻게든 촬영을 미루고 싶으니까. 낯선 곳에 가서 낯선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데, 솔직히 연기가 안 나왔다. 욕 먹으면 구석에 가서 울기나 하고. 진짜 바보 같았다. 그런데 드라마 끝나면 매니저가 또 다른 작품을 잡아온다. 그러면 또 억지로 가서 하고. 처음에는 거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았다.

그런데 왜 작가나 감독들은 당신에게 기회를 줬을까.
윤상현: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눈빛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리고 마스크가 흔한 스타일은 아니어서 주인공도 되고 웃기는 역할도 되니까. 그런데 사실 눈빛은 그냥 체질적으로 몸에 열이 많아서 촉촉한 거라고 하더라. (웃음)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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