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 : 46년째 연기 중이다. 그 인생의 대부분을 어머니로, 어머니 연기로 보냈다. 그리고 그 ‘어머니’로 대가의 또 다른 경지에 도달했다. 가장 성공한 여성이자 어머니 연기자의 인생.

이신우 : 디자이너. 김혜자와 경기여중-경기여고-이화여대 동문으로, 김혜자의 가장 친한 친구. 김혜자는 학창시절부터 연극에 빠져 대학 시절 KBS 공채 탤런트에 합격했다. 하지만 자신의 연기에 스스로 실망해 곧바로 연기를 관두고, 결혼 후에야 “어릴 적부터 꿨던 꿈을 어거지로 치우다시피 지워버렸기 때문에 한 번 되살아나니 너무 강렬한 것이, 속에서 소용돌이가 쳤다”며 다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미군정시절 재무부 장관급 직책에 있을 만큼 유복한 환경이었으면서도 연기를 선택한 건 오직 연기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던 것. 이신우는 김혜자에 대해 “연예계 생활을 그렇게 오래 하고서도 적당히 타협하는 법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불암 : 배우. 1966년 극단 <자유>의 창단 멤버로 김혜자를 만나 MBC <전원일기>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최불암에 따르면 “서로의 연기에 맞춰 대사톤, 억양, 감정을 바꾸고 맞춰갈 수 있는” 사이. 두 사람은 한국전쟁으로 나이든 배역을 연기할 사람이 많지 않아 젊은 배우들이 부모 역할을 하는 시기에 활동, 김혜자의 경우 1960년대의 MBC <신부일기>에서 30대 아들을 둔 배역을 연기했다. 최불암은 김혜자에 대해 “김혜자의 응결된 눈과 자태를 보면 잉크 한 방울을 똑 떨어뜨렸을 때 금방 퍼져 배어드는 백지 같은 순결을 느낄 수 있다”고 평했다. 또한 김혜자는 최불암이 주연인 MBC <수사반장>의 ‘화주’편에서 범죄자를 연기, 생애 첫 악역에 도전했었다.

김정수 : 드라마 작가. <전원일기>를 집필했다. <전원일기>는 20년 이상 방송돼 김혜자에게 ‘국민 어머니’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하지만 김정수가 “가슴에 폭발만 안 했지 화산이 하나 들어 있다”고 말하기도 했던 김혜자는 “아무리 성격이 다른 드라마에 출연해도 언제나 전원일기의 어머니로 돌아오고 말아” 이 이미지를 부담스러워 했다. 김혜자는 <전원일기>의 캐릭터에 대해 “김정수 작가가 집필한 10년 동안은 그 엄마의 공간도 만들어줬는데 바뀐 작가들에게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 만날 엄마는 들어왔니? 밥먹었니?만 했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순재 : 배우. MBC <사랑이 뭐길래>에서는 부부였고, 20여년 뒤에는 KBS <엄마가 뿔났다>에서 시아버지와 며느리로 출연했다. 이순재가 그러하듯, 김혜자 역시 한국의 여성 연기자를 대표한다. 김혜자는 1970년대에 이미 이효영 감독으로부터 “TV 매체에 가장 어울리는 연기자”라는 평을 들었고, “주인공 말고 조연 등의 캐릭터를 제대로 묘사하는 작가가 거의 없다”고 말하며 좀처럼 조연을 연기하지 않아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좋은 연기란 남들이 보기에 연기처럼 안 보이는 거라고 생각”한다는 자신의 말처럼 어느 작품이든 ‘진짜’를 보여주는 것이 김혜자의 역량. 김혜자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내 존재의 의미다. 내가 연기를 안 하고 안 보일 때는 죽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한바 있다.

임현식 : ‘마더’ 김혜자의 진짜 아들. 김혜자는 최근 아들이 자신의 이름을 건 김치 사업을 하겠다는 말에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걱정해 반대하다 “아들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고, 내가 아들을 위해 이런 것 하나 못 해주나 싶어” 결국 허락했다. 김혜자는 “내 일을 하느라 아이들에게 전력투구하지 않았다. 내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말할 만큼 연기를 중심에 둔 인생을 살았고, 아들이 결혼 전에는 파를 골라내는 아들의 입맛을 고려해 음식을 할 만큼 살림에 신경 쓰면서도 밤 12시부터 2시까지 늘 커피를 마시며 연기 준비를 했다. 아들의 결혼 뒤에는 잠시나마 “내겐 음악과 책과 커피만 있으면 아무도 없어도 돼”라는 생각도 했다고. 이런 생활 때문인지 그의 두 아이들은 “엄마가 뭔가 하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이 엄마 주위에 둘러쳐진다. 그래서 더 이상 가까이 갈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故 최진실 : 김혜자와 여러 작품에서 어머니와 딸,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연기했던 배우. 특히 영화 <마요네즈>는 김혜자가 다소 철없는 어머니를 연기, ‘김혜자의 재발견’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김혜자는 그 전에도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 영감을 준 MBC <女>에서 유괴한 아기를 친 딸로 속여 키운 여성이었고, MBC <베스트 극장>에서는 뜻대로 되지 않는 가정사 때문에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주부이기도 했다. 또한 그의 첫 영화였던 <만추>에서는 정사 신을 연기했고, MBC <어머니>에서는 스턴트맨 없이 자신이 직접 운전을 해 교통사고를 내는 장면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혜자는 한 어린 연기자가 “어떻게 선생님 같은 분이 담배를 피우냐”고 할 만큼 전통적인 어머니의 이미지로 인식됐고, “홈드라마에 엄마는 있어야 하고 또 장성한 자식들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큰 딸을 할까 작은 딸을 할까”라며 배역에 대해 답답해했다. 김혜자에게 ‘어머니’는 영광을 가져다 줬지만, 동시에 벗어나고 싶기도 했던 캐릭터였다. 김혜자는 자신을 ‘어머니’로만 표현하는 기자들에게 “그렇게 붙일 수식어가 없는지 항상 같은 말만 쓴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김수현 : 한국 드라마의 살아있는 전설. 김혜자의 연기 인생은 곧 김수현의 필모그래피이기도 하다. MBC <여고동창생>, MBC <모래성>, MBC <사랑이 뭐길래>, KBS <엄마가 뿔났다> 등 지난 40여년 동안 김수현과 김혜자의 대표작은 교집합을 이룬다. 김혜자는 <모래성>에서는 불륜에 빠진 남편 때문에 고민하는 여자였고, <사랑이 뭐길래>는 보수적인 남편에 쥐어 살면서도 며느리에게 “나 애 안봐준다”라고 말하는 시어머니였으며,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1년 동안 가출을 시도하는 어머니였다. 김수현은 김혜자 고유의 어머니 이미지를 반영하면서 그 안에서 그 시대의 어머니상을 녹여냈다. 김혜자가 지난 40여년 동안 ‘어머니’일 수 있었던 진짜 이유.

조세현 : 사진작가. 김혜자와 함께 아프리카에 구호 활동을 하러 가서 “눈앞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본 순간 당장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구호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김혜자는 <사랑이 뭐길래> 종영 직후 월드비전으로부터 제의를 받고 아프리카에 봉사활동을 떠났고, 당시 아이들이 겪던 참상에 충격을 받아 구호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도 김혜자는 100명 이상의 아이들과 결연을 맺어 매달 지원을 하고 있고, 정기적으로 아프리카에 간다.

봉준호 : <마더>의 감독. 대학 시절 자신의 영화 동아리가 있던 오피스텔 주변에서 살던 김혜자가 슬리퍼를 끌고 나와 주변에서 진행 중이던 작품 촬영을 가볍게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모습에 반했고, 결국 <마더>를 연출했다. 봉준호는 김혜자가 “뚫을 수 없었던 벽”같았던 <마더> 때문에 울자 “불만스러워도 세상이 환호할 때는 인정하십시오”라는 문자로 김혜자의 마음을 풀기도 했다. 봉준호의 문자 내용 그대로, <마더>는 김혜자가 보여줬던 어머니의 모성을 밑바닥까지 파헤쳐 가장 김혜자 같은 어머니이면서, 김혜자가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어머니의 모습으로 세상을 환호케 했다. 그것은 김혜자의 ‘다른 연기’가 아니라 그가 지금까지 해온 연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연기 인생의 대부분을 ‘어머니’로 보냈던 연기자가 그 ‘어머니’의 모습으로 마녀와 같은 “접신의 경지”에 도달한 순간.

김중만 : 사진작가. 김혜자는 김중만에게 사진을 찍을 때마다 사진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저걸로 영정사진 해야지”라는 말을 하곤 한다. 김혜자는 “어릴 때부터 죽음이 두렵지 않았”고, 자식들에게 “아프거나 사고가 나 즉사하지 않으면 한 달 동안 병원에 넣어두고 실컷 봐라, 그러나 그 이상 인위적인 생명 연장은 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는 불효다”라는 유서를 써놓았다. 인생 전체를 열정으로 살았고, 삶에 대해 초연한 최고의 연기자가 평생토록 ‘어머니’를 연기하며 생긴 46년 동안의 위대한 아이러니. 그리고 우리는 여자이자 마녀이며 어머니인 배우를 얻었다.

Who is next
김혜자와 MBC 에 함께 출연한 고현정

글. 강명석 (two@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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